“드래프트 2번 낙방했지만 포기하지 않을겁니다”
프로농구 신인드래프트는 ‘양날의 검’같은 제도다. 일단 모두에게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에서는 공정성 있는 무대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드래프트가 끝나고 나면 참석한 이들 사이에서는 극명하게 희비가 엇갈린다. 누군가는 환호하며 들뜬 마음으로 기쁨을 만끽하지만 지명되지 못한 이들은 고개를 떨군 채 눈물을 곱씹어야만 한다. 학창시절을 내내 보내온 농구공을 손에서 놓고 낯선 삶을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와중에는 포기하지 않고 도전을 계속해서 이어가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는 정말 쉽지 않다. 드래프트 지명 숫자는 정해져 있는 가운데 매년 각 학교에서 유망주가 쏟아져나온다. 첫 번째 도전 때는 학교라는 지원군이라도 있지만 재도전시에는 그런 그늘막도 기대하기 쉽지 않다. 상당수 부분을 스스로 챙기며 다시 한번 자신을 어필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서문세찬(23‧182cm)은 농구에 미친자 중 하나다. 작년에 이어 올해까지 드래프트에서 두 번이나 낙방했음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고 있다. 어려운 길이다. 함께 농구했던 이들 중 상당수가 프로 지명을 받았거나 포기한 상황에서 고독한 싸움을 이어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계속 도전한다고 해서 구단에서 감동받아(?) 지명해준다는 보장도 없다. 외려 낙방자의 이미지가 크기 때문에 어지간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지 않는 이상 선택을 받기는 더욱 쉽지 않다. 주변의 시선, 본인의 멘탈잡기 등 장애물만 늘어날 뿐이다. 하지만 정작 서문세찬은 담담하기만하다.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것이 농구인지라 드래프트에서 탈락했다고 그것을 실패로 생각하지 않는다는 마인드다.
“전국에서 최고들만 나와서 경쟁하는 무대잖아요. 거기서 한두번 떨어졌다고 크게 의미를 두고 싶지 않습니다. 공무원 시험 등 각종 국가고시도 몇 번의 재도전 끝에 합격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잖아요. 한번에 바로 안붙었다고 그들을 평가절하하지는 않습니다. 저도 그래요. 코트에서 뛰는 순간이 가장 행복한 만큼 이것저것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고 목표 하나만 보고 그냥 달릴겁니다. 제가 제일 자신 있어 하는 달리는 농구처럼!”
“드래프트 낙방? 크게 신경쓰지않습니다. 다시 또 도전할 생각이거든요”
Q.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아시다시피 제가 신인드래프트를 2번 참가했는데 모두 탈락했어요. 한양대 졸업반 시절 한번 떨어지고 이번에 다시 준비해서 도전했는데 또 한번 떨어졌죠. 첫 번째로 떨어졌을 당시에는 고민이 많았어요. 다시 재도전을 해야 될지 말아야 될지…, 한 3~4개월을 고민했어요. 하지만 지금은 그런 것 없어요. 무조건 다시 도전할거에요. 지금 호주리그에서 뛰고 있는 (이)현중이가 친구에요. 언젠가 현중이 인터뷰 기사를 보니 쓰러지고 또 쓰러져도 좀비처럼 다시 일어나서 앞으로 갈 것이다는 말을 했더라고요. 저도 마찬가지에요. 다른 생각은 일체 없어요. 제가 하고 싶은 것은 농구니까 탈락이나 그런 것에 관계없이 농구를 할 생각입니다.
Q.주변의 반응은 어떤가요?
벌써 두 번이나 드래프트에서 떨어졌으니 이제는 그만하겠구나 생각하시는 분들도 많으셨어요. 하지만 저는 그러고 싶지 않더라고요. 가까운 지인이나 친구들 같은 경우 용기내라고 응원해주는 분위기에요. 제 의지를 아니까 포기하지 말고 일본 쪽까지도 알아보라고 권유하는 이도 있고요. 많지 않은 선택지 중에서 고민을 하고 있었는데 마침 이번에 하승진, 전태풍 선배님들께서 드래프트에 낙방한 선수들이나 현역을 이어가고 싶은 의지는 있지만 어떨 수 없이 농구를 접어야 됐던 이들을 대상으로 도전을 할 수 있는 판을 깔아준다고 해서 거기서 함께 훈련하고 있습니다. 실력을 닦아서 드래프트에 다시 도전할 수 있게 도와주려고 만들어진 곳이에요. 두분 모두 KBL에서 전설같은 존재들이잖아요. 경험이 풍부한 선배님들께 이런저런 것을 배워가면서 성장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Q.일본까지 생각해봤을 정도면 코트에서 뛰고싶은 마음이 정말 간절한 듯 해요.
맞아요. 현재 저는 정말 농구를 계속하고싶다는 것외에 다른 생각은 일절 없는 상태에요. 현재 일본 센다이 에이티나이너스에서 뛰고 있는 (양)재민이형과는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친분이 있어서 전화통화로 길게 의견을 나누기도했어요. 이런저런 조언도 받았고요. 코트를 밟을 수 있는 길이라면 무엇이든지 다하고 싶어요. 다만 제 첫 번째 선택지는 KBL인지라 되도록 이곳에서 뛰고 싶어요. 물론 이번에도 떨어지면서 현실의 벽이 만만치 않다는 것은 다시 한번 느꼈지만요.
Q.드래프트에 연달아 도전을 한 케이스가 매우 적은 것으로 알고있어요.
그렇죠. 보통은 한번 떨어지면 이 길이 아닌가보다 하고 접어버리거든요. 해마다 유망주는 쏟아져 나오고 구단에서도 특별한 변화가 없다면 재수생들을 높게 치지는 않으니까요. 그래도 3번까지 나간 경우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김준성 선수가 있어요. 드래프트 낙방 이후 2년간 다른 일을 하면서 생계를 이어왔고 다시 명지대에서 7개월간 코치 생활을 하다가 프로의 꿈을 이루기 위해 동호회 농구팀을 전전했다고 하더라고요. 신생 실업팀 놀레벤트 이글스의 선수 트라이아웃에 참가해 다시 코트로 돌아왔고 이후 각종 국제대회 및 전국체전에서 인상적인 활약을 펼쳐서 주목을 받았데요. 이후 드래프트에 재도전했는데 당시 반응은 부정적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이전에 2번이나 탈락한 관계로 3번째 도전인데다가 공백기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열정과 성장을 높게 인정받아서 2라운드 9순위로 SK의 지명을 받았습니다.
“자존심요? 꿈보다 크지않습니다”
Q.2017년 6월 중국 항저우에서 있었던 ‘나이키와 함께 하는 제4회 아시아 태평양 팀 캠프’에 이현중, 여준석, 이두원, 차민석 등과 함께 참가했을 정도로 알아주는 유망주였습니다. 때문에 연달아 드래프트에서 낙방했다는 것에 놀라는 팬들도 많아요.
고등학교때까지는 연령별 대표팀에도 꼬박꼬박 뽑히는 등 순탄대로를 걸은 것이 사실이에요. 하지만 대학교에 와서는 상황에 달라지더라고요. 1, 2학년 시절에는 쟁쟁한 선배님들이 계셔서 파고들기가 쉽지 않았어요. 이근휘, 오재현 선배님들과는 포지션도 겹쳐서 출장 기회가 많지 않았죠. 그러다가 형들이 얼리드래프트를 나가면서 3학년 때 기회가 오기는 했어요. 동기부여도 됐고 더 악착같이 뛰어야겠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고요. 하지만 첫 번째 대회 뛰고 곧바로 십자인대가 나가는 부상을 당하고 말았어요. 수술후 재활까지 시간이 많이 필요했던지라 가장 중요했던 3학년 시절을 통으로 쉴 수밖에 없었습니다. 몸보다도 마음이 너무 아프더라고요. 하필이면 기회를 받아 제대로 뛰려고 하니까 그런 일이 생겨서, 정말이지 왜 이렇게 안풀리나 싶었어요. 그래도 악착같이 마음을 다잡고 4학년 때 복귀했는데 감독, 코치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이 1년 휴학을 권하시더라고요.
Q.잉? 1년 휴학요?
아무래도 큰 부상 이후 돌아온 상태인지라 몸 상태, 경기 감각 등 정비해야 되는 부분이 적지않다고 판단하셨던거죠.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틀린 말도 아니에요. 1, 2학년 때는 선배님들에게 밀려서 경기를 거의 뛰지 못했고요. 3학년은 부상으로 쉬게 됐어요. 말만 대학 농구부이지 실질적으로 저란 선수를 보여준게 거의 없는 상황이잖아요. 그렇다면 4학년 때 활약으로 승부수를 걸어야 하는데 쉽지 않을 것이다고 보신 듯 해요. 하지만 제 입장에서는 그러기가 싫더라고요. 죽이되든 밥이되든 바로 부딪혀보고 싶었어요. 결과적으로 악수가 됐습니다. 몸 상태는 꽤 올라왔지만 경기 감각이 워낙 떨어져 있던 터인지라 의욕은 충만한데 코트에서 발현이 잘 되지 않더라고요. 흔히 하는 말로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았던 거죠.
Q.농구에 대한 열정은 충분히 대단한 것 같은데 한때 잘나갔던 유망주로서 주변이 의식되고 그런 것은 없나요?
솔직히 말해서 그런게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죠. 앞서도 언급했다시피 첫 번째 드래프트 떨어졌을 때 농구를 그만두려고 마음먹었던 시절이 있었다고 했잖아요. 4개월 정도였지만 가슴속 열정을 꾹꾹 눌러가면서 농구는 내길이 아니다고 이성적으로 생각하려 했죠. 그러면서 농구교실에 취업해서 3개월 정도 일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건 아니다싶더라고요. 하루하루가 고통스럽더라고요. 친했던 친구들은 프로에 진출해서 선수가 됐는데 뭔가 저만 동떨어진 느낌? 넓은 운동장에 혼자 서있는 것 같더라고요. 처음에는 그냥 공허한 줄만 알았어요. 하지만 농구교실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확실히 알겠더라고요. 처음에 아이들이 저에게 선생님이라고 부르는데 기분이 이상했어요. 더불어 아이들을 데리고 시합을 나가면 지면 울고 이기면 웃으면서 기뻐하는데 그것을 보면서 예전 일들이 막 떠오르고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게 했습니다. 아! 나는 지금도 코트에서 뛰고싶어하는구나. 더 이상 스스로를 속이고 싶지않았어요.
Q.안타깝지만 그런 마음으로 다시 도전했는데 또 떨어졌어요.
그렇죠.(웃음) 하지만 작년보다 올해가 덜 힘들었습니다. 한번은 그렇다 치더라도 두 번이나 떨어졌으면 의욕도 빠지고 힘들어야 되는데 그렇지않더라고요. 탈락이 확정된 순간, ‘그래 다시 해보자. 끝까지 한번 가보는 거야’라는 생각이 머릿속을 맴돌았어요. 아이들을 가르치면서 제가 얼마나 농구에 목말랐는지를 깨달았던지라 드래프트 탈락으로 낙담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Q.자존심 그런 것도 내려놓은 듯 싶어요.
지금 제 상황에서 누구 눈치를 본다거나 자존심 상해하고 그런 감정들은 사치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프로에서 뛰고 있는 선수중 유망주 소리 한번 안들어본 이가 누가 있겠습니까. 한때 잠깐 그런 평가 들었던 것을 자신감의 원천으로 삼으면 모를까 쓸데없이 자존심 세우는 이유로 작용한다면 그것은 족쇄가 될 뿐이죠. 그냥 저는 농구를 하고 싶을 뿐이고, 어떻게하면 그 목표를 이룰 수 있을까만 생각해도 바쁜 상황이에요. 벌써 드래프트를 두 번이나 떨어졌는데 거기다 대고 나 그래도 한때는 잘나갔던 유망주야라고 한다면 너무 우습잖아요. 현재의 저에게 자신감은 필요하지만 자존심은 불필요합니다.
“단점을 보강하고 장점을 극대화하는 농구를 하고 싶습니다”
Q.포지션이 슈팅가드로 알고 있는데 신장대비 경쟁력에서 불리할 듯 싶어요.
솔직히 그렇죠. 182cm정도 사이즈면 포인트가드 외에 포지션은 어려운 것이 사실이잖아요.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같이 전체적인 사이즈가 더 커진 시대에는 더더욱 그렇고요. 제가 어릴 때 키가 컸던 편인지라 처음에는 센터로 농구를 시작했어요. 초등학교 때 키가 174cm였거든요. 그러다가 키가 자라지 않아서 포워드로 전향하고 이후 가드까지 내려오게 된거에요. 그러다보니 플레이 스타일도 가드보다는 스윙맨에 가깝게 만들어졌어요. 리딩가드를 봐야 된다는 충고도 주변에서 있었지만 몸에 배인 플레이스타일을 하루아침에 바꾸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입니다. 코트에 나서면 이렇게 해야지라고 생각하고 경기를 뛰다가도 어느새 예전에 익숙했던 방식으로 자꾸 돌아가더라고요.
Q.리딩가드로 포지션을 바꾸는 것은 여전히 힘들까요?
슈팅가드로 뛰면서 적극적으로 득점에 개입하는 경기를 할 때가 제일 신바람 나는 것이 사실이에요. 하지만 현실을 알기에 리딩가드로의 포지션 변경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죠. 저도 제 단점을 알아요. 기본적으로 시야가 넓지 못해서 코트를 넓게 보면서 동료들을 살려주는 플레이가 부족합니다. 볼 핸들링은 자신있는데 다른 단점이 두드러져서 시너지가 안나는 것 같아요. 당장 어떻게 뜯어고칠 수 있는 부분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1~2번에서 모두 최고의 기량을 선보였던 전태풍 선배님에게 단점을 최대한 커버하면서 장점을 살릴 수 있는 부분들을 배우고 싶어요. 좀 더 전천후로 활용 가능한 선수가 될 수 있도록 열심히 노력해보겠습니다.
Q.몸은 건강한 상태인거죠?
그럼요. 정말 건강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제 무릎에 대해 의문부호를 가지고 계신 분들도 있더라고요. 그래서 전태풍, 하승진 선배님들도 소문을 듣고 걱정스러운 마음에 함께 수원에 있는 센터에 가서 체크를 했습니다. 저는 좋았어요. 그렇게 확실하게 검증을 받으면 불확실한 얘기들도 지워질 수 있잖아요. 저 스스로가 느끼는 무릎 상태는 ‘수술을 했었나?’싶을 정도로 완벽해요. 힘껏 오래 뛰어도 전혀 문제없어요. 병원에서도 무릎 상태도 좋고 근육도 잘 만들어져서 더 이상 손볼데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Q.고등학교때도 무릎이 안좋다는 얘기가 많이 나왔던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해도 희한해요. 실제로 이상할 정도로 무릎이 많이 아팠어요. 병원에 가봐도 큰 문제는 없고 염증 정도라던데 제가 느끼는 고통의 강도는 상당했거든요. 그래서 제 실력을 발휘해야 되는 중요한 자리에서도 제대로 못 뛰고 그랬던 기억이 나요. 어찌보면 제가 지나치게 무릎에 신경을 썼나 싶기도 해요. 고등학교 졸업할 때 쯤 되니까 자연스럽게 통증이 사라지더라고요.
Q.현재 전태풍, 하승진의 지도하에 훈련을 하고 있는 중이죠?
그렇죠. 하지만 가드외 다른 포지션이 제대로 구축이 안되어서 일단 합류한 선수들 위주로 훈련하고 있어요. 몸이 안좋은 선수도 있고 개인적인 사정으로 합류하는데 시간이 걸리고 있는 선수도 있거든요. 한명한명 추가되다 보면 서로에게 동기부여도 되고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저는 현재 상태로도 어느 정도 만족해요. 자칫하면 혼자 훈련하다시피해야 했는데 이렇게 같이 하는게 어디에요. 더욱이 레전드들의 가르침도 받고요.
Q.본인의 장점을 말해줄 수 있을까요?
힘이 세고 스피드가 좋으며 슈팅력도 갖추고 있습니다. 힘은 저보다 큰 선수들과 몸싸움을 벌여도 쉽게 밀리지 않아요. 상대가 아무리 빨라도 충분히 따라붙을 수 있어요. 슈팅 또한 릴레이와 슛타이밍이 빠르다는 평가를 받았어요. 이렇게 말하니까 전형적인 슈팅가드의 특성을 다 가지고 있는 듯 싶네요. 훈련 또한 스스로 단점으로 여기고 있는 시야나 패싱능력을 보강하고 거기에 장점을 더욱 극대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정해서 하고 있어요. 어설픈 올라운드 플레이어가 되느니 확실한 저만의 무기를 가지고 있는 쪽이 낫다는 생각입니다.
Q.그러한 장점이 있으니 에전부터 유망주 소리를 들었던 것 같아요.
솔직히 이제는 그런 시절이 있었나싶기도해요. 한때 연령별 대표팀도 순서대로 다해보고 빼어난 선수들과 자웅을 겨루기도 했어요. 어떤 분들은 그 정도 했으니 미련은 없지 않냐고 하시기도 하지만 저는 반대로 그래서 더 아쉬워요. 유망주 소리만 들었지 거기에 걸맞는 열매를 맺지 못했잖아요. 가능성에서 끝내지 않고 제 스스로도 납득할 수 있는 작은 결과라도 내고 싶습니다. 아직 농구를 놓을 준비를 되지 않아서 끝까지 한번 해보려고요.
Q.지금까지는 개인훈련 위주로 준비를 했었나요?
아무래도 그런 부분도 있죠. 그래도 모교인 한양대에서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개인훈련 위주로 준비를 하다가 마지막에 한양대에서 최종점검을 했거든요. 더불어 3X3 대회도 뛰었는데 그 과정에서 얻은 것도 많고요. 말씀드렸다시피 현재는 전태풍, 하승진 선배님 팀에서 준비중인데 아무래도 현재 인원의 대부분이 가드인지라 좀 색다른 느낌으로 훈련하고 있어요. 완전체로 팀이 모이면 팀훈련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 같아요.
Q.부모님은 어떤 의견이실지 굼금해요.
모든 부모님이 마찬가지겠지만 저희 부모님 역시도 항상 저의 편이세요. 부모님도 분명 아쉬운 부분이 있으실텐데 제가 워낙 농구에 대한 의지가 강하니까 하고 싶을 때까지 한번 마음껏 해보라고 응원해주셔서 너무 감사할 뿐입니다. 그렇게 믿음으로 지켜봐 주시는 부모님을 생각해서라도 더 힘을 내려고 해요. 한양대 시절에는 학생이라는 핑계라도 있었지만 이제는 저도 사회인이잖아요. 농구를 이어간다는 이유로 마냥 도움만 받고 있을 수는 없을 듯 해서 이런저런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최소한의 경비는 스스로 벌려고 하고 있습니다. 작년같은 경우는 농구교실도 다니면서 어느 정도 수입을 올렸지만 현재는 스케줄적인 부분에서 정하지 못한 것이 많아요. 스케줄이 정해지고 생활 패턴이 고정화 되면 아르바이트와 함께 병행하려고요. 정말 고마운 것은 전태풍, 하승진 선배님께서 지원도 어느 정도 들어올 예정이니까 너무 돈벌고 그런 쪽에 신경쓰지 말고 농구에 더 집중하라고 말씀해주세요. 너무 든든합니다.
“저는 발전하고 있습니다. 기대해도 좋아요”
Q.3X3농구도 언급했는데 다양한 방식으로 실전감각을 쌓아가고 있는 듯 해요.
코트에서 뛸 수만 있다면 뭐든지 다하고 싶은 심정이에요. 일반 농구하고는 다르다고 해도 3X3농구 특유의 색깔이 있을 것이란 말이에요. 그런 것을 경험해보는 것도 실전 감각을 쌓아가는데 도움이 될듯해서 한솔레미콘에 들어가서 시합도 뛰고 그랬습니다. 제가 엄청 유명한 선수도 아니고 그냥 조용히 있다가 드래프트에 참가하는 것보다 3X3대회같은 곳에서 뛰면서 중간중간 기사도 나오고 그러는 쪽이 훨씬 나을 것 같았어요. 포기하지 않고 준비하는 모습을 계속해서 알리고 싶어요. 픽업게임도 일반인 분들이랑 많이 했고요.
Q.3X3농구가 결과적으로 많은 도움이 됐나요?
저는 됐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크게 다른 점이 3X3농구는 반코트고 공격제한 시간도 12초에요. 일반 농구의 딱 절반이죠. 그러다보니 처음에는 정신이 하나도 없었어요. 반코트라는 사실을 깜빡 잊고 반대편 코트로 뛰어갈 뻔 하던 상황도 있었고 수비 리바운드를 잡은 후 움직여야 되는 방향도 반대인지라 여러모로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코트도 좁고 시간도 짧은지라 공을 잡자마자 공격 준비를 들어가야 했고요. 머뭇거리거나 여유를 부릴 틈 자체가 허용되지 않아요. 하지만 좋은 점은 그만큼 공을 많이 만져볼 수 있고 공격기회도 많다는 점이에요. 집중력있게 몰두하고 경기 감각 올리는데 큰 도움이 됐어요.
Q.농구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재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농구부가 있었는데 사실 저는 농구부가 있는 줄도 몰랐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어쩜 그리 무심했을 수가 있나 싶기도 하지만요. 그러다가 교내에서 농구대회가 열렸는데 저도 참가하게 됐어요. 키도 크고 운동신경도 좋은 편이었거든요. 제가 경기하는 것을 유심히 지켜본 선생님이 농구할 생각 없냐고 물어오셨고 그러게 농구공을 잡게 됐죠. 어릴 때부터 워낙 뛰어노는 것을 좋아했어요. 축구를 했으면 어땠을까 후회되지 않냐고 물어오시는 분들도 간혹 계세요. 뛰는 것은 잘하는데 키가 문제가 되기 때문이겠죠. 농구선수로서는 작은 키지만 축구선수로서는 그것도 아니고요. 하지만 일단 저는 제가 이렇게 안클줄 몰랐어요. 초등학교 때부터 큰 신장을 메리트로 가져가다 보니 ‘신장=유리함’ 이런 생각을 가지고 한참을 지냈으니까요. 더불어 키가 아니더라도 적성이라는게 있잖아요. 발로 무엇인가를 컨트롤하고 그런 쪽은 재능이 별반 없어보여요. 무엇보다 일단 흥미가 없어요. 저는 손으로 하는 것이 좋거든요.(웃음)
Q.자 그럼 정리를 해볼까요. 프로팀 관계자들의 생각을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서문 세찬이라는 선수가 드래프트에서 지명되지 않은 이유에 대해 스스로가 한번 객관적으로 말씀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저는 희망보다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스스로를 파악할 필요가 있으니까요. 일단 부상에 대한 우려가 완전히 씻기지 않았던 듯 싶어요. 그만큼 대학 3학년 시절을 통으로 날린 부상이 임팩트가 컸나 싶기도 하고요. 하지만 인터뷰에서도 몇차례 밝혔다시피 병원에서도 문제없다고 진단이 내려진 만큼 이 부분은 이제 믿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더불어 포지션 대비 신장문제도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했겠죠. 현재 제 키로는 1번 외의 포지션은 쉽지 않은데 슈팅가드에 특화된 플레이를 하고 있으니까요. 이 부분은 저도 고쳐나가고 있습니다. 전태풍 선배님과 상의하에 적지 않은 변화가 있을 수도 있겠다 싶은데, 1번을 보든 2번을 보든 시야와 패싱능력에 대한 부족한 점을 최대한 채워보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더불어 대학시절에 보여준 것이 너무 없다는 점도 저를 주목받지 못하게 했겠고요. 어쩌면 부상과 연계가 되어있는 대목이겠네요.
Q.현재 본인의 상황을 타인이 분석하듯 잘 풀어 낸 듯 해요. 아는 만큼 수정되는 부분도 많을것이다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선수 평가에서 키가 중요한게 공격도 공격이지만 수비적인 부분이 크잖아요.
맞습니다. 아무래도 매치업 상대보다 키가 작으면 집중공략 대상이 될 수 있고 그렇게 구멍이 나버리게 되면 팀 수비까지도 흔들리는 경우가 있죠. 입장을 바꿔서 제가 지도자라고해도 이왕이면 키큰 선수를 더 선호할 것 같기는 해요. 하지만 저같은 경우 가드 포지션에서 만큼은 이른바 수비펑크를 안낼 자신이 있습니다. 신장은 크지 않지만 힘과 스피드에서는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지라 끈질기게 따라다니고 몸으로 막아서며 괴롭히는 수비에 능하거든요. 손질도 쉬지 않고 부지런한 편입니다.(웃음) 과거 김승현 선배님께서도 신장은 크지 않지만 힘과 스피드를 앞세워 만만치 않은 수비를 보여주셨잖아요. 저와는 감히 비교도 안될 분이지만 제 수비를 설명하기 위해 언급을 해봤습니다. 워낙 큰 선수들과 많이 부딪혀봤던지라 저보다 10cm위 까지는 자신 있어요.
Q.오늘 감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서문세찬에게 도전의 대상인 농구는 어떤 의미일지 궁금합니다.
함께 뛰고싶은 존재요.(웃음) 아무래도 제가 선수로서 코트에서 뛰고 싶은 마음이 커서겠죠. 예전 학창시절 때 그랬던 것처럼 옆에서 같이 땀 흘리면서 달리고, 있는 힘껏 림을 향해 뛰어오르고 그러고 싶어요. 같이. 정말 제가 몸이 안 따라줘서 못하기 전까지는 꼭 붙잡고 안 놓아줄 생각입니다. 그때가 되어도 다른 식으로 붙잡고 있지 않을까 생각은 되지만요. 현재 저에게 자존심, 고독 모두 사치입니다. 그냥 농구만 바라보고 농구만 생각하고 농구로 웃고 싶어요. 열심히 할께요. 이상 서문 세찬이었습니다.
#글_김종수 칼럼니스트
#사진_유용우 기자, 박상혁 기자, 본인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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