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 없고 직장 멀어도 강남…재건축으로 다시 태어나는 강남[쏠림 사회 한국, 강남 리포트]

김경학 기자 2023. 10. 17. 1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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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욕망하다 : 부동산
한국 부동산 시장의 중심 강남
시세차익 욕망하는 이들 몰려
강남 3구 84㎡ 아파트 약 20억원
강남구에만 부동산 업체 1만개 넘어
실제로는 없는 것이 있는 것처럼 보이거나, 실제와 다른 것으로 보이는 모습을 ‘허상’이라고 한다. ‘강남’이라는 공간의 이면에는 ‘돈’에 관한 것이 흐른다. 좋은 교육은 좋은 벌이를 위해서, 좋은 아파트는 더 큰 부를 위해서 존재하는 식이다. ‘강남’이 표상하는 허상을 쫓아 모두가 질주하는 동안 한국 사회의 쏠림은 더욱 심화되고 있다. 지난달 21일 밤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서 강 건너 서초구 일대를 거울을 활용한 방법으로 촬영했다. 이준헌·조태형 기자

서울 구로구에 사는 40대 정영훈씨(가명)는 결혼할 생각이 없다. 직장은 강서구에 있다. 교육에 신경 쓸 자녀가 없고, 직장이 서울 반대편에 있는 정씨지만 “삶의 목표”가 강남 아파트를 사는 것이라고 말한다.

증권사를 다니다 이직한 정씨는 증권사 퇴직금과 근로소득을 지난 10년간 주식에 꾸준히 투자했다. 주식 투자는 성공적이어서 수억원을 굴리고 있다. 주식 투자를 계속하려던 정씨는 얼마 전부터 생각을 바꿨다. 집을 사기로 한 것이다. 정씨는 “지난번 부동산 가격 폭등을 보며 집을 사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해졌다”면서 “틈틈이 부동산 관련 공부를 한 결과 강남 아파트가 내 삶의 목표가 됐다”고 말했다.

지금 정씨는 70대 어머니와 구로구 신축 아파트에 월세로 산다. 지난해 11월 이사했다. 보유 자금이 충분했음에도 월세를 택했다. 전에 살던 양천구 목동 아파트에서 매매가가 전세가 이하로 떨어지는 역전세의 두려움을 체험했기 때문이다. “매매가 17억원짜리 아파트에 9억원을 주고 전세로 들어갔어요. 그런데 작년에 집값이 11억원대 중반까지 떨어지더라고요. 원래 전세 만기가 올해 3월이었는데 집주인에게 얘기해 중개료를 부담하고 중간에 나왔어요.”

정씨가 눈여겨보고 있는 아파트는 강남에서도 재건축을 마친 개포동 아파트다. 정씨는 “인구가 줄어든다고 해도 부동산 자산, 그중에서도 강남 아파트는 장기적으로 우상향한다는 믿음이 있다”고 말했다. 강남을 목표로 삼은 건 재산 증식이 가장 큰 이유라는 것이다.

반포동 등 다른 강남 지역에도 재건축을 마친 아파트가 있지만, 개포동이 상대적으로 가격이 낮고 시세차익을 가장 크게 낼 수 있다고 정씨는 보고 있다. 정씨는 “내 자산과 대출 규모 등을 생각할 때 강남 안에서도 개포동이 제일 매력적”이라면서 “나는 아이가 없지만 교육 환경이 좋고, 대형 병원도 있고, 산책로가 잘되어 있어 늘어나는 노인 인구도 살고 싶어 하는 동네”라고 말했다. “직장 동료들도 갭투자든 뭐든 해서 개포동 아파트를 사고 싶다고 이야기해요. 올해 말 준공되는 대단지에 관심을 두고 있는데 입주가 시작되면 동료들과 함께 임장(매수하려는 집이나 지역을 직접 찾아가 살펴보는 것)을 가기로 했어요.”

‘부동산 중심’ 강남, 곳곳 재건축 물결
지난달 21일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외벽에 안전 진단 단계 통과를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안전 진단 결과 재건축이 필요한 노후 건물이라는 판정을 받으면 정비구역 지정, 조합설립추진위원회 구성 등 본격적인 재건축 추진 절차에 들어갈 수 있다. 이준헌 기자

강남구·서초구·송파구 이른바 ‘강남 3구’의 부동산 가격은 전국 최고 수준이다. 국토교통부 자료를 보면 지난해 아파트 3.3㎡당 매매가(실거래가)는 서초구 7667만원, 강남구 7612만원, 송파구 6538만원이었다. 84㎡ 아파트가 약 20억원에 거래된 것이다.

강남은 우수한 교육 환경, 직장 접근성, 편리한 교통과 인프라를 갖췄지만 가장 큰 인기 비결은 다른 데 있다. 정씨처럼 자산 증식, 시세차익을 바라는 투자 수요가 가장 많이 몰리는 지역이 강남이다.

가장 큰 부동산 시장인 만큼 관련 업체와 종사자도 강남에 집중돼 있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20년 기준 전국 부동산 업체(17만7046개)의 절반 이상인 52%가 서울(4만4812개)과 경기(4만7248개)에 있다.

서울에서도 강남 지역이 단연 많다. 서울열린데이터광장 자료를 보면, 2021년 기준 서울에서 부동산 업체가 가장 많은 지역은 강남구(1만1054개), 서초구(6132개), 송파구(4736개) 순이었다. 서울 전체의 30%가 몰려 있다. 강남 3구의 부동산업 종사자는 7만2326명으로 서울 전체(20만5378명)의 35.2%에 달했다.

지난해 금리 인상 등으로 다소 주춤했던 강남 아파트 가격은 올해 들어 다시 상승하고 있다. 특례보금자리론·50년 만기 대출 등 금융상품 영향도 있지만 재건축 관련 규제 완화가 상승의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시장에서 항상 인기 있는 강남 아파트도 단점은 있다. 지은 지 오래됐다는 점이다. 준공 30년이 넘은 아파트가 많아 구매하더라도 실거주는 꺼리는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재건축을 마친 아파트가 쏟아지며 투자와 편리한 실거주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3040세대까지 ‘강남 입성’에 열을 올리고 있다.

아파트 가격 정보가 본격적으로 집계되기 시작한 1980년대 후반부터 아파트 평균 매매가는 줄곧 강남구가 서초구보다 위에 있었다. 그런데 2021년 처음으로 서초구가 강남구를 앞질렀다. 재건축 효과가 컸다. 서초구 반포동 일대에 재건축을 끝낸 단지들이 대거 등장했기 때문이었다.

1989~2004년 서울 아파트 3.3㎡당 매매가. 부동산뱅크

최근 강남구에서도 재건축 추진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압구정동 대단지뿐 아니라 대치동을 대표하는 아파트도 재건축조합이 설립돼 본격적인 절차에 돌입했다. 정씨가 목표로 하는 개포동 대형 단지는 다음달 준공 예정으로, 이 단지가 완성되면 강남구 내 저층 아파트 단지 재건축은 모두 마치게 된다.

10억 넘는 아파트에 세탁기도 못 놔
재건축을 마치고 지난 8월 준공된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가 점등식을 진행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재건축의 목적은 노후하고 불량한 주거공간을 안전하게 바꾸는 것이다. 동시에 포화에 이른 도심에 주택 공급을 늘리는 것도 재건축의 주요 목적이다. 그러나 현실에선 크게 한몫 챙길 수 있는 자산 증식의 대표 수단으로 여겨지고 있다. 재건축 가능성이 큰 개포동의 한 오래된 아파트는 매매가가 2008년 6억원대였는데 지난해 26억원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재건축 과정에서 조합원 분담금을 최소화하고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해서는 분양가를 높게 책정하고, 일반분양 가구를 늘려야 한다. 일반분양 가구를 늘리려면 용적률을 법이 정한 상한까지 최대한 올려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공공시설 등으로 기부하거나 공공임대주택을 정해진 비율만큼 지어야 한다. 재건축에서 매우 중요한 사안이지만 10% 이내 정비계획 등의 변경은 도시정비법상 ‘경미한 변경’에 해당한다. 경미한 변경은 신고만 하면 된다. 시장의 인가나 조합원 총회 같은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 이 때문에 인가를 받아놓고 이익을 극대화하려 당초 계획에 없던 가구 형태를 끼워 넣는 등 ‘꼼수’를 부리는 사례가 자주 나타난다.

지난달 21일 서울 서초구의 한 아파트 단지. 이준헌 기자

비싼 분양가를 내고 일반분양으로 입주한 사람들이 이런 꼼수의 1차 피해자인 경우가 많다. 30대 맞벌이인 최정민씨(가명) 부부는 자녀 둘을 키우고 있다. 결혼하고 수도권 아파트에서 전세로 지내온 최씨는 2019년 초 집을 사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최씨는 “아이들도 점점 크고 집값이 오르는 걸 보니 더는 전월세로 지낼 수는 없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리저리 알아보다 괜찮은 집이 있어 부동산에 연락했어요. 남편과 상의해 사기로 하고 다음날 바로 연락하니 그건 이미 팔렸다고 하더군요. 부동산에서 다른 물건이 있다고 했는데 더 낮은 층이었는데도 전날 봤던 집에 비해 3000만원이나 더 비싸졌더라고요.”

그때부터였다. 최씨는 유튜브 등을 통해 아파트 청약 공부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이듬해부터 분양가상한제가 해제된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최씨는 대치동·반포동 등 강남 지역 아파트 청약이 나오는 대로 모두 신청했다. 그러나 가점이 부족해 계속 떨어졌다. 인기 있는 타입에 당첨되기에 점수가 약간 모자랐다.

최씨는 강북에도 청약을 넣어볼까 생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썩어도 준치”라는 생각에 강남을 고집하던 최씨는 경쟁률이 낮을 것 같은 49㎡ 타입을 택했고 마침내 당첨됐다. 4인 가족이 지내기에는 작은 편이지만, 당첨 소식이 더없이 반가웠다. “59㎡는 우리 가점보다 10점가량 높았어요. 그때 살고 있던 집 전세도 계속 오르고 있어 일단 뭐라도 하나 사고 보자는 생각이 앞섰죠. 이제 집값이 오르든 내리든 내 집 하나는 확보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주 편했어요.”

분양가는 3.3㎡당 5000만원. 부담스러운 가격이었다. 최씨는 받을 수 있는 대출을 최대로 받아서 계약금과 중도금을 꼬박꼬박 넣었다. 그는 “최근 몇년 동안 분양가가 워낙 많이 올라 지금 봐서는 싸게 보일 수도 있지만 입주예정자 카페 같은 데서 보면 나처럼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말했다.

‘내 집’ 게다가 ‘강남 아파트’를 갖게 됐다는 기쁨에 들떴던 최씨는 입주할 집의 최종 도면을 보고 좌절했다. 분양가 10억원이 넘는 집이지만, 4인 가족이 많이 사용하는 용량 20ℓ짜리 세탁기를 놓을 공간조차 없었다. 최씨는 “다용도실이 따로 없이 발코니만 있는 구조였는데 발코니에는 상하수도 배관이 없어 세탁기를 둘 수 없었다”고 말했다. 1·2인 가구가 많이 사는 원룸에서 주로 사용하는 소형 세탁기를 싱크대 아래에 넣도록 설계된 것이었다. 최씨와 같은 타입을 분양받은 이들은 재건축조합과 시공사에 항의하고, 공공기관에 민원을 넣은 다음에야 20ℓ 세탁기를 배치할 공간을 마련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추가 금액을 지불해야 했다.

최씨는 그나마 다행이었다. 최씨 집보다 작은 35㎡는 결국 싱크대 아래 세탁기만 사용 가능한 상태다. 이 아파트가 최초 고시한 건축 시설계획에는 35㎡ 가구가 없었지만, 계획을 변경해 추가했다. 최씨는 원래 계획에 없던 타입이 새로 생기면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 같다고 했다.

“더 높게, 더 쪼개서, 더 비싸게”
재건축을 추진하고 있는 서울시 강남구의 한 아파트 단지. 조태형 기자

올 초 서울시는 35층 높이 규제를 전면 폐지하는 내용의 ‘2040 서울 도시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기존에 35층으로 재건축 계획을 인가받은 조합들도 49층 이상으로 층수를 높이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서초구의 한 대형 재건축 단지 역시 35층으로 인가를 받았지만, 단지 내 최고층을 49층으로 높이는 설계 변경을 추진 중이다. 층수 상향은 재건축조합뿐 아니라 설계·시공 측이 적극적으로 주도하기도 한다. 강남 아파트에 대한 수요가 워낙 높다 보니 일반분양 물량을 더 잘게 쪼개고, 더 비싸게 지을수록 남는다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심상정 의원실이 서울시에서 제출받은 강남 지역 재건축조합 회의록 자료를 보면, 감정평가 관계자는 올해 열린 한 회의에서 “개발이익은 일반분양 수입에서 발생한다”며 일반분양 분양가 인상을 종용했다. 그는 “당연히 일반분양가는 어떻게든 제대로 가산비 이런 거 (적용)해서 높게 받아내는 게 중요하다”면서 “일반분양가가 올라간다고 해서 조합원 분양가가 같이 끌어올려지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층수 상향에 있어 걸림돌은 비용 증가와 심의로 인한 재건축 기간 연장이다. 또 다른 단지의 조합 회의록 자료를 보면, 층수 상향에 부정적인 한 조합원이 ‘(설계 변경으로 인한) 인허가 지연으로 공사 기간이 늘어나고 이에 따른 비용 증가, 그리고 미분양이 발생했을 때 누가 책임지는 것인가’라고 묻기도 했다. 이에 시공사 측은 “미분양되면 계약대로 저희가 대물로 다 인수하기로 되어 있다”며 “(공급면적 3.3㎡당) 1억원쯤 받죠. 우리가 1억원쯤 받아가지고 나중에 사업비 다 쓰고 공사비 다 쓰고 한 몇천만원씩 환급받아 다시 입주하시는 게 낫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강남이기 때문에 당장 미분양이 나더라도 충분히 이익을 볼 수 있다는 취지였다.

서울의 강남 3구와 용산구는 전국에서 유이하게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는 지역이지만, 분양가를 높게 책정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었다. 정부에서 정해놓은 기본형 건축비 외 물막이벽 건설비 등 가산할 수 있는 요소를 극대화하면 되기 때문이다. 특히 분양가 산정에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택지비의 경우 인근 단지에서 산출한 가격을 대부분 그대로 적용하기 때문에 지속해서 오르는 분양가가 낮아질 가능성도 희박하다.

가장 큰 걸림돌이던 당국의 심의도 과거에는 까다로웠지만, 오세훈 시장 취임 이후 기류가 급격히 바뀌었다. 강남의 한 재건축조합 회의록을 보면, 한 건축사무소 대표는 층수 상향 등 설계 변경 추진으로 인한 사업 지연을 우려하는 조합원 질의에 “크게 고민할 게 없다. (오 시장 오고 나서) 1년 동안 기조가 완전히 바뀌었다”고 장담했다. 그는 “오세훈 시장님이 오고 나서는 재심, 반려가 없다. 필요하면 조건을 부여해서 통과시켜준다”면서 “지난번 우리 35층도 조건을 부여해서 통과해준 것”이라고 말했다.

김경학 기자 gomgo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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