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인예고’ 열어보니 “죽여야 할 건 과거의 나”…낚시일까 범죄일까

진선민 2023. 10. 17. 1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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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 예고글 작성자에게 민사상 책임까지 묻겠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8월 24일

법무부의 공언 후 첫 민사 소송의 대상이 된 건 신림역 살인 예고글 작성자, 29살 최모 씨.

지난달 국가로부터 4천만 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당했습니다.

하지만 형사재판을 받고 있는 최 씨 측은 무죄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글 제목만이 아니라 내용까지 본다면, 살인 예고를 했다고 볼 수 없다는 이유인데요.

최 씨는 이 글 때문에 구속됐고 수천만 원의 손해배상 소송까지 당했습니다. 어떤 내용이었을까요?

■"죽여야 할 건 과거의 나"…'제목 낚시'였을 뿐인데…

최 씨가 온라인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 문제의 게시글을 올린 건 지난 7월 26일. 신림역 흉기난동범 조선의 범행 닷새 뒤였습니다.

글 제목은 "지금 신림역 2번 출구에 칼 들고 서있다. 이제부터 사람 죽인다" 는 것.

최 씨의 글은 1시간여 만에 삭제됐고, 법정에서야 그 내용이 공개됐습니다. 글 전문은 이렇습니다.

"내가 죽여야 할 건 사람이라 불릴 수 없었던 지금까지의 나… 이제부터 허물을 벗고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글을 올린 사실도 잊고 있던 최 씨는, 얼마 뒤 집에 들이닥친 경찰들에게 체포됐습니다.

어제(16일)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두 번째 재판, 최 씨는 카키색 수의를 입고 법정에 나왔습니다. 최 씨는 지난 8월 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와 협박 혐의로 구속 기소됐습니다.

제137조(위계에 의한 공무집행방해) 위계로써 공무원의 직무집행을 방해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제283조(협박) ①사람을 협박한 자는 3년 이하의 징역, 500만 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에 처한다.
- 형법

최 씨의 변호인은 "피고인은 혐의를 전부 인정하고 있지만 변호인으로서 법리상 다툼 여지가 있다고 보인다"며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변호인 의견서에서 " 제목 낚시글에 해당할 뿐 내용을 보면 무의미한 내용이다"고 밝혔습니다. 협박죄는 상대방(피해자)에게 해악을 고지해야 성립하는데, 최 씨의 글은 해악 고지에 해당하지 않고 상대방도 특정할 수 없는 주장입니다.

또 "최 씨는 이 글을 보고 누군가 신고해 경찰이 출동할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며 공무집행을 방해할 고의도 없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장난삼아 올린 '살인 예고글'… 무죄 주장 잇따라

전 국민을 불안하게 한 신림역 흉기 난동 사건과 분당 서현역 흉기 난동 사건이 연달아 발생한 지난 7~8월.

그 무렵 인터넷에선 전국 각지의 살인 예고글이 우후죽순 올라왔습니다. 검거된 작성자들은 대부분 장난으로 글을 올렸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정부는 이런 글을 방치할 경우 국민들의 불안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보고 엄단 기조를 세웠습니다.

수사가 진행되면서 최 씨처럼 구속된 작성자들 사례도 잇따랐지만, 유죄가 인정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합니다.

문제의 글을 올린 피의자 대부분은 법정에서 글을 올린 사실 자체는 인정하면서도 처벌 대상은 아니라는 주장을 펴고 있기 때문입니다.

혜화역 살인 예고글 작성자 왕모 씨는 지난달 13일 첫 재판에서 "온라인에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올린 글이라 특정인을 대상으로 하는 협박죄가 성립하기 어렵다"며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대림역 살인 예고글 작성자 박모 씨도 지난 4일 "불특정 다수 대상으로 작성됐고 경찰에 신고한 사람과 일면식도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상대방이 불특정 다수라고 하면 협박죄로 처벌하기 쉽지 않습니다. 공무집행 방해죄 경우도 경찰서에 직접 장난 전화를 한 게 아니고 혼자 게시판에 올린 거라 애매한 측면이 있죠."
-황다연 KBS 자문 변호사

■한 명 잡는 데 경찰 700명 투입… 민·형사 책임질까

형사처벌 여부와 별도로, 민사소송에서 책임을 지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장난삼아 올린 글이어도 수십 수백 명의 경력이 투입되면서 인력과 시간이 든 건 사실이기 때문입니다.

법무부는 지난달 최 씨에 대한 손해배상 소송을 내면서, 최 씨 한 명을 잡기 위해 열흘간 투입된 경찰 수가 700명이 넘고 그 수당과 차량 유류비 등을 합치면 4,370만 원에 달한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최 씨의 다음 재판은 오는 30일 열립니다.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그날 재판을 마무리하고 이르면 다음 달 선고할 예정입니다.

그래픽 : 권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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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민 기자 (js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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