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정원 확대' 발표만 남아…전문가들 "필수의료 살릴 묘책 없으면 공염불"
의대증원 외 수가인상·공공의료 지원 등 큰 그림 나와야
(서울=뉴스1) 강승지 기자 = 정부가 의과대학 입학정원을 2025학년도부터 대폭 늘리려는 것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의대정원 증원과 함께 필수의료 분야로 의사들을 유인할 실질적 대책과 현재 보건의료 체계를 개선할 큰 그림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필수 의료 분야의 수가(의료서비스 대가)를 올리고 해당 분야 의사들이 자부심을 느끼며 일할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는 제안이다. 반면 의사단체는 의사 수 자체가 늘면 의료비 증가로 이어져 국민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는 주장을 펴며 의대정원 확대에 따른 향후 갈등을 예고했다.
17일 뉴스1 취재 결과 정부는 2025학년도 입시부터 의대 입학정원을 매년 최소 1000명 이상 늘릴 전망이다. 야권과 시민단체 등에서 제기된 지역의대-공공의대 신설, 지역의사제 시행보다는 지방 국립의대나 의대 정원이 적은 의대의 입학생을 늘리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다.
붕괴 위기에 처한 지방 의료를 살리고, 교수 인력이나 인프라에 비해 입학 정원이 소규모인 곳의 교육의 질을 높인다는 취지다. 현재 국내 의대는 총 40곳으로 국립대 11곳 중 3곳은 입학 정원이 50명 미만이고 사립대 29곳 중 14곳이 입학 정원이 60명 이하다.
다만 의료계의 반발이 가장 큰 변수다. 2020년 7월 문재인 정부 당시 보건복지부는 의대 정원 확대 계획을 내놨지만, 대한의사협회 등은 집단 휴진과 의대생의 국가고시 거부 등으로 이를 무력화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이나 시민단체는 의대를 증원한다는 발표만으로는 의료계의 반발만 부를 테고, 필수의료 붕괴만 빨라진다고 진단했다. 단순히 의대 증원에 그쳐서는 지금의 비정상적인 의료시스템을 바로잡는 데 한계가 뚜렷한 만큼 미용 성형 등에 의사가 몰리는 현상을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고 봤다.
전문가들은 이미 붕괴 위기에 처한 필수의료 분야를 되살리기 위해서는 정부가 장기적인 비전을 의료계와 국민에게 제시하고, 다양한 방안을 강구할 때라면서 필수의료 분야 의사들이 자부심과 책임감 가지고 일할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윤 서울대 의대 의료관리학 교수는 "의사가 부족한 곳에서 새로 배출된 의사들이 일할 수 있게, 제도를 고치고 정부의 투자도 늘려야 한다는 점에 모두가 동의할 것"이라며 "최소 1000명 이상 늘리되 필수의료에 투입될 수 있도록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윤 교수는 현재 건강보험 체계상 수가를 올리면 그 돈은 대부분 의사가 아닌 의사가 속한 병원이 가져가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인상분의 일정분은 의사가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교수도 "필수의료의 위기는 당면한 현실"이라면서 "실손보험 문제, 필수의료 종사자 법적보호와 삶의 질 개선, 필수의료 국가책임제, 필수적이지 않은 의료영역에 대한 조정이 동시에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정원 그 자체는 가변적이어야 하며 공급과 수요에 따른 조정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며 "하지만 이제 극심한 저출산으로 전환되고, 향후 건강보험 재정 위기가 다가오는 시점에서 지금 정책이 미래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고민할 때"라고 지적했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사회정책국장은 "수가 인상과 처우 개선이 대책이라고 주장하지만, 수익 위주의 민간 의료체계에서 수십 년간 누적된 문제를 해소할 근본 대책이 될 수 없다"며 "근본적으로 필요한 것은 공공의대 신설"이라고 전했다.
그는 "전체 의료 서비스의 최소 20~30%라도 공공이 안정적으로 운영해 시장 실패를 극복할 대책을 내놔야 한다"며 "국가가 지역의료를 책임지고 책임질 의사를 선발하고 훈련시켜 지역에서 10년간 의무복무 하는 새 양성체계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주열 남서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의대 정원을 늘린다면 10년 후 미래 의료수요뿐만 아니라 향후 정부가 의료시장에 개입할 방향을 고려해야 한다. 현재 국민 1인당 의료서비스 이용량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국 평균 3배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의료시장은 왜곡돼 있다. 의사 인력 과잉 공급이 가져올 문제점도 반드시 검토하면서 핵심 배분 기준은 '지역 완결적 의료체계 구축'이 돼야 한다. 서울에 가지 않고도 지방에서 1차 진료부터 중증·응급 최종진료까지 받을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의사협회는 17일 오후 전국 시도 16개 의사회장 등 유관 단체장들이 참여하는 의사대표자회의를 열고 정부 의대 정원 확대 추진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 의협은 이번 발표 과정이 정부의 일방적인 결정이라는 입장이다.
이필수 의사협회장은 파업과 휴진, 국가고시 거부 등이 있었던 2020년을 언급하며 뉴스1에 "이보다 더 큰 파국으로 치달을 것 같다. 전공의, 의대생 사이에서도 반발이 커지고 있는 양상"이라며 강력 대응을 시사했다.
ksj@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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