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DT인] MZ·재벌 입맛 홀린 외식사업가… "정용진 부회장도 추천하는 맛집이죠"
을지로 8평서 색다른 음식 입소문 유명식당 간편식 출시 제안도
매일 가락시장 돌며 재료챙겨… "미식 큐레이션 플랫폼 만들고파"
을지로보석·남영동경주 오너셰프 조서형 대표
인스타그램(인스타), MZ세대, 웨이팅, 레트로 무드, 한식, 가오픈…. 최근 외식 시장의 성공 공식을 떠올려보면 몇 가지 키워드가 추려진다. 이 시대 가장 중요한 소비층이 된 MZ세대(밀레니얼 세대+Z 세대) 젊은이들에게 인스타는 피드를 통해 자신의 일상을 공유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아니라 가장 선호하는 검색과 소통의 창구다.
정밀해진 스마트폰의 지도 앱으로 기동력을 갖춘 이들은 인스타에서 맛집을 찾고, 다이렉트메시지(DM)로 예약을 하거나 문 앞 웨이팅(대기)도 불사한다.
의외겠지만 이들이 좋아하는 분위기는 레트로, 음식은 한식이란다. 그래서 할머니의 방언인 '할매'와 '밀레니얼 세대'를 합친 신조어 '할매니얼'이란 말이 나오기도 했고 강북의 한옥마을이나 낡은 인쇄골목이 핫하게 떠오르기도 했던 것이다. MZ세대는 신선하고 재밌지만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그 맛에 홀렸다.
MZ세대와 재벌3세까지 열광하는 '을지로보석'과 '남영동경주'의 오너셰프 조서형 대표(28·사진)를 남영동 매장에서 만났다. 영업 준비로 분주했던 현장에서도 조 대표는 능수능란하게 직원들을 지휘하고 있었다. 여느 이십대 같은 해맑은 얼굴이 성공한 외식 사업가처럼도, 손맛으로 유명한 사람처럼도 보이지 않았다.
중학교 1학년 여름방학부터 요리 강좌를 다녔다. "삼남매 중 둘째인데, 저희 어머니가 음식을 못하셔서(웃음) 요리에 관심을 더 가졌어요. 배워온 요리를 해보고 가족들과 나눠 먹으면서 이 일이 즐겁다는 걸 느꼈어요." 학창 시절 내내 요리 관련 자격증과 요리 대회를 준비했다. 당찬 여고생은 전국 향토 음식대회를 휩쓸며 상금으로만 1000만원을 모았다. 그 돈으로 대학 전통조리과에 진학했고 동대문에서 의류 도매사업도 시작했다. 사업은 잘 됐지만 특기를 살려 식당을 열어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2019년 4월 을지로 구석에 8평짜리 오뎅 바 '을지로보석'을 시작했다. 들기름 낙지젓 카펠리니나 보리새우 미나리전을 먹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고 예약은 오픈과 동시에 마감됐다.
'을지로보석'이 입소문을 타기 시작할 때 쯤 삼원가든의 막내아들이자 미식가로 유명한 박영식 SG다인힐 대표도 찾아왔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과 함께였다. 정 부회장은 자신의 인스타 계정에 "술을 부르는 안주"라는 메시지와 함께 '을지로보석'의 메뉴들을 줄줄이 올리며 만족해했다. 이후에는 다른 대기업 '높은 분'들도 찾아왔다.
재벌의 단골집이 되자 자연스럽게 사업 확장으로도 이어졌다. SG다인힐의 레스토랑 간편식(RMR) 플랫폼 캐비아에서 보리새우 미나리전을 출시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다른 메뉴인 보석김밥은 GS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으로도 출시됐다. 좋은 것을 많이 먹고 살 부자들이 왜 조 대표의 업장을 찾는 것 같냐는 농 섞인 물음에 " 줄서는 식당, 그 공간은 돈으로 사올 수 없으니까요" 하고 답한다. 짧지만 내공이 단단한 답변이었다.
'인사가 만사'라고 하는 게 사업이다. 음식은 자신있다고 해도 어린 나이에 사람을 다루는 것이 어려울 것 같다고 기자가 말했다. "저희 회사가 외식업계에서는 근속연수가 긴 편입니다. 을지로 보석 오픈 당시 직원이 지금도 일할 정도로요. 고생하는 만큼 보상하는 게 비결이라면 비결일까요. 인센티브 등 대표보다 훨씬 돈을 많이 받는 직원도 있어요." 천생 요리사인 줄 알았더니 타고난 사업가다.
실패를 한적이 있냐는 질문에는 차분해졌다. "사실 큰 실패를 한 적은 없어요. 손 대는 사업마다 잘되었거든요. 지금은 문을 닫은 '청담동보석' 매장은 오픈한지 한 달은 아주 잘됐는데 코로나19가 터지고 대형 매장의 리스크를 체험할 수 있었고, '을지로 보너스' 라는 퓨전음식점도 냈었는데 퓨전 음식보다는 한식 베이스 식당이 맞는 상권 같아 정리했어요. 최근엔 한식이 해외에서도 붐이라고 해서 방콕과 호치민 등 사업진출을 타진하고 있어요."
남영동경주의 메뉴는 거의 매일 바뀌기 때문에 조 대표가 직접 장을 본다. 영감의 원천이다. "저는 식자재 물류 업체를 쓰지 않기 때문에 매일 오전 8~9시에는 가락시장을 돌아요. 시장에 가면 사계절 다른 제철 음식이 나오는 걸 바로바로 알 수 있고 시장 아주머니들에게 식자재 요리법을 배우기도 해요. '이 건 간장을 넣어서 살짝 볶아라' '아니야 살짝 데쳐서 된장에 버무려 먹어야 해' 같은 얘기들을 들으면 갖고 와서 다 해보는 식이에요."
그렇게 직접 만나며 쌓아온 거래처들이 전국 각지에 있다. 그의 목표는 미식 큐레이션 플랫폼을 만드는 것이다. 유통망을 찾지 못한 산지의 제철 식자재를 꾸러미로 만들어 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해 정기 구독 배송 서비스 등 판매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현재는 반찬 공장 설립과 플랫폼 개발에 착수했다. 조서형 대표는 내일도 김치를 담고, 명아주 나물을 무치고, 깻순을 지지고, 깨송이를 튀길 것이라고 한다. 그렇게 우리의 잊혀진 맛을, 잊혀진 계절을 식탁에 전하고 싶다.
이윤희기자 stel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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