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하되 복원하진 않는다’...나치 유적 3000억 들여 재정비

2023. 10. 17. 11:29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독일 뉘른베르크· 베를린을 가다
수치스러운 역사현장 미완 상태 남겨
“유적 남겨야 나치시대 다룰 수 있어”
지난달 19일 독일 바이에른주 뉘른베르크에 있는 ‘나치 전당대회장’. 2027년까지 복원이 예정된 대회장은 로마 콜로세움보다 1.5배 큰 건물이었으나 2차 세계대전으로 미완의 건물이 됐다. 뉘른베르크=김빛나 기자

역사는 때에 따라 지워지거나 다시 해석되기도 하고 추앙받기도 한다. 그런데 어떤 역사든 지키겠다는 나라가 있다. 바로 독일이다. 헤럴드경제는 한국 언론 최초로 뉘른베르크시의 협조를 받아 2027년 재정비 완료 예정인 나치 전당대회장을 취재했다. 독일은 어떤 원칙을 두고 ‘인류역사의 수치’인 나치의 유적도 수천억원을 들여 보존하는 것일까. 〈편집자 주〉

1934년 9월 독일 나치당 6차 전당대회 날, 독일 바이에른주 뉘른베르크의 한 비행장에 ‘D-2600’가 적힌 비행기 한 대가 착륙했다. 한 남자가 비행기에서 내렸다. 독일 나치 독재자인 아돌프 히틀러(1889~1945년)다. 시민의 환호를 받으며 히틀러는 무대 단상 위로 올라갔다. 뉘른베르크는 나치당의 정치적 텃밭이었다. 히틀러는 무모한 꿈을 꾸기 시작했다. ‘자칭’ 로마제국을 계승한 그는 콜로세움보다 더 거대하고 더 화려한 곳에서 전당대회를 열고자 했다.

▶콜로세움보다 1.5배 큰 나치 유적=“이곳은 히틀러가 연설하는 단 1시간을 위해 365일 존재했던 장소예요. 1년에 한 번 열리는 전당대회 날, 자신의 연설시간에 사용하려 했죠.”

그로부터 딱 89년이 흐른 2023년 9월의 전당대회장. 독일 뉘른베르크시 소속 문화부 리모델링책임특별사무실 직원인 필릭스 흐랏 씨가 먼지가 가득한 이곳 내부로 취재진을 안내했다. 건물 전체가 말발굽 모양인 전당대회장은 콜로세움보다 1.5배 정도 크다. 천장 높이가 무려 9.4m로, 180㎝인 성인 남성 5명의 키를 합쳐도 닿지 않을 만큼 높다. 뉘른베르크시에 따르면 건물 전체 무게는 100t이 넘는 것으로 예상된다.

전당대회장은 미완성의 건물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해 건물을 지을 돈이 전쟁에 쓰이면서 공사가 중단됐다. 흐랏 씨는 “히틀러는 이 장소의 바닥부터 천장까지 모두 대리석으로 꾸미고 싶어했다. 건물이 완공되지 않아 실천은 못했다. 지금은 낡았다. 벽돌 페인트칠도 벗겨졌다. 하지만 다시 칠하진 않을 것이고 꾸미지도 않을 것”이라며 “낡아가는 그 모습 그대로 복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창대하게 시작됐으나 미완으로 끝난 건물인 나치 전당대회장은 한때 도시의 흉물이 될 정도로 방치됐다. 그러다 최근 복원 논의가 진행돼 총 2억1100만유로(약 3100억원)를 투입해 2027년 완공을 목표로 재정비작업에 들어갔다. 흐랏 씨는 “재건축을 하지만 이 장소를 (나치의) 계획대로 완성하겠다는 건 아니다. 그냥 미완의 상태로 남기고 복원만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히틀러 ‘허황된 꿈’ 보여주려 미완 상태로=“내부는 허름한 상태로 둘 겁니다. 초라하게 부서지고 낡은 모습을 봐야 사람들이 알 수 있으니까요. 나치가 실패했다는 걸 말이죠. 시에서는 유대인 단체에 건물 활용방안을 논의하기도 했습니다.”

한국 돈으로는 3100억원이 들어가는 대규모 새 단장이지만 딱히 건물을 꾸미거나 과거의 모습으로 되돌리지 않는다. 한때 물류창고로 활용하면서 생긴 바닥의 페인트칠도 지우지 않는다. 건물 벽에 있는 낙서도 남긴다. 보존 외에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 것이다.

흐랏 씨는 “나치가 예상을 했던 모습을 재현을 하는 것이 아니라 1970, 80년대에는 다른 용도로 사용됐던 역사까지 그대로 보여주는 장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건물 재정비가 완료된 후 나치 전당대회장 절반은 예술가들의 창작공간으로, 절반은 오페라하우스로 사용될 예정이다.

천문학적 돈을 들여 보존만 할 것이라면 차라리 건물을 없애는 편이 낫지 않을까. 실제 뉘른베르크에서도 비슷한 의견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종료 직후에는 나치 흔적을 지우기 위해 일부 건물을 파괴하기도 했다. 그래도 뉘른베르크는 결국 보존을 택했다. 현재 대표적인 나치 유적인 ‘나치 전당대회장’과 ‘채플린광장’, 그리고 나치 역사를 모은 ‘나치기록보관소’ 3곳을 재정비하고 있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서 나치 유적을 보존하는 이유를 묻자 흐랏 씨는 “뉘른베르크는 유대인 수용소가 남아 있는 지역도 아니고, 역사적 증인이 있는 곳도 아니다. 유적을 남겨야 나치 시대를 다루고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뉘른베르크=김빛나·박혜원 기자

헤럴드경제 기획 시리즈‘지워진 역사, 잊힌 유적’은 정부 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binna@heraldcorp.com

Copyright © 헤럴드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