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으로 배우는 것과 직접 보는 건 다르다”
게슈타포 본부 리모델링 계획 시민 반발
허름한 전시장엔 어두운 역사 그대로
“네덜란드도 독일에 점령이 됐었어요. 지금은 우크라이나가 침공을 당했는데, 독일은 지금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해서 왔습니다.”
독일 베를린에 위치한 나치역사기록관 ‘테러의 지형학(Topographie des Terrors)’에서 만난 네덜란드 출신의 군인 스피토벤(59) 씨는 이같이 말했다.
지난달 21일, 베를린 최대 번화가이자 옛 베를린장벽 아래 테러의 지형학에 오전 10시부터 관광객 30여명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언뜻 임시 구조물처럼 보여 지나치기 쉽지만 독일에서 가장 유명한 나치 유적 중 하나다. 과거 나치 정권의 히틀러 직속부대 ‘친위대’, 비밀경찰 ‘게슈타포’, ‘중앙안보국’ 세 기관이 사용하던 건물이 있던 자리이기 때문이다.
1970년대 독일 청년들은 게슈타포 본부 철거 후 빈터로 남아 있던 이곳을 먼저 발견했다. 나치에 대한 독일 정부의 반성을 이끈 중요한 전환점이었던 1968년 서구권에서 일어난 68운동의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남아 있던 때였다. 이후 베를린시는 발굴 과정에서 드러난 지하 벽면 약 200m를 보존해 현재의 전시장 모습을 갖췄다.
허름해 보이는 전시장 모습은 어두운 역사를 날것으로 보여주려는 독일 사회의 노력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증거인 셈이다. 벽면 뒤쪽으로 철거되다 만 건물 철근이 보여 오래된 흔적이 역력했다. 스피토벤 씨는 “새로운 세대가 잊어버릴 수도 있는 예전 모습을 보여주고, 미래에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 좋은 것 같다”고 했다.
전시장 한복판엔 게슈타포 동쪽 출입문 잔해가 그대로 남아 있다. 과거 경찰들이 인질을 데려와 감옥으로 수송하는 데에 쓰던 통로였다. 본부 철거 과정에서 떨어져 나온 잔해 일부를 남겨놓은 것이다. 이를 포함해 전시장은 1차 세계대전 후 바이에른공화국 시절부터 나치당이 지지를 얻어온 과정, 이후의 유대인 탄압과 학살 등 나치의 역사와 만행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었다.
나치가 선전에 썼던 자료들 역시 보존돼 있었다. 나치는 수단을 가리지 않고 언론과 교육 등을 선전도구로 전락시켰다. 일례로 당시 교과서에는 ‘낮은 등급’의 인간인 유대인을 방치하면 ‘높은 등급’인 독일인 인구를 압도해 결국 독일인이 사회적으로 소외될 것이라는 내용의 삽화가 실렸다. 아돌프 히틀러가 매입해 나치당 활동 홍보에 썼던 신문 ‘민족의 관찰자’가 1933년 히틀러의 총리 임명 소식을 1면으로 보도한 자료도 전시됐다.
전시장은 청소년들을 위한 역사교육장소가 됐다. 이날도 베를린으로부터 350여㎞ 떨어진 북부지역의 슐러크리스토프학교에서 14세 학생 60여명이 체험학습을 위해 이곳을 찾았다. 코스틴 카이젤하트 교사는 “책만 보며 설명할 수도 있지만 직접 보는 건 다르다”며 “베를린장벽에 대해 공부만 하는 것과, 장벽 너머에 우리 가족 중 누군가가 있을 수 있다고 말하는 건 다른 차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관심을 가지는 학생도, 관심이 없는 학생도 있겠지만 현장을 직접 보고 느낄 수 기회를 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부끄러운 역사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현재 독일의 기조엔 시민사회도 크게 일조했다. 과거의 모습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자는 것도 시민의 요구였다. 1970년대 독일 청년들은 빈터로 남아 있던 게슈타포 본부 철거부지를 조사해 이곳을 보존·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베를린 시의회도 여기에 반응했지만 애초 계획은 인근에 있던 프린츠알브레히트궁전 터와 병합해 옛 궁전의 모습을 살리는 방향이었다. 시민 반발로 이 계획은 무산됐다. 이후 진행된 발굴로 본부 지하 벽면이 드러났다.
독일은 베를린장벽이 무너진 1987년을 거치면서 유적 원형을 보존해야 한다는 사회적 합의가 마련됐다. 1997년에도 한 차례 기념물을 세우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유적이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에 재차 공사가 취소됐다. 이후 전시장 바로 옆에 2010년 신축 기록관을 마련해 별도 전시를 진행하고 있다. 베를린=박혜원·김빛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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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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