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한 소망은 끝내…생과 사 잇는, 故 박서보 화백의 생애 마지막 개인전
후기 연필 묘법 국내 최초 소개…박 화백 손자 제작 디지털 작품도
(서울=뉴스1) 김일창 기자 = 박서보 화백의 생(生)과 사(死), 그 경계에 놓인 전시가 부산 조현화랑에서 열리고 있다. 박 화백은 지난 14일 오전 향년 9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
조현화랑은 지난 8월31일부터 해운대점과 달맞이점 두 곳에서 박 화백의 개인전을 개최해 오는 11월12일까지 이어간다.
박 화백은 지난달 21일부터 23일까지 부산을 방문해 전시장을 둘러봤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계정에 남은 그의 생전 마지막 활동 모습이다. 박 화백은 부산 방문 소감에 대해 SNS에 "하루 사이 바람의 결이 바뀌었다. 가을인가. 바닷바위에 파도가 부딪치는 소리도 사뭇 차가워지고. 내년에도 이 바람에 귀 기울일 수 있으면 좋으련만"이라고 적었다. 그의 소박한 소망은 이뤄지지 않았지만 그가 남긴 작품은 대규모로 관람객을 기다리고 있다.
조현화랑은 박 화백과 인연이 깊다. 지난 1991년 개인전으로 연을 맺은 후 총 14번의 전시가 이곳에서 이뤄졌다. 이번 전시에서는 2020년대를 기점으로 제작되기 시작한 후기 연필 묘법을 국내 최초로 소개한다. 또 박 화백의 묘법을 디지털로 재해석한 비디오 작품이 1000호에 달하는 연보라 묘법과 더불어 관객 참여형으로 전시된다.
조현화랑 달맞이의 돌계단을 올라 커다란 철문을 열면 평소 전시실과는 사뭇 다른 어두운 공간이 나타난다. 넓이 5.5m, 높이 2.5m의 대형 스크린에 비치는 화면은 묘법의 강렬한 색감과 입체감 있는 질감을 초고해상도로 확대해 움직임을 부여한 디지털 작품이다. 박 화백의 손자 지환군이 제작한 것으로, 아날로그 방식에 익숙하던 작가가 디지털 문명을 대면하며 느낀 공포심에 대한 돌파구로 사용하기 시작했던 색채가 다음 세대를 통해 디지털 화면으로 재해석된 의미가 큰 작품이다.
박 화백은 부산 방문과 관련한 SNS 글에 손자와 작품을 함께 올리며 "소자 녀석이 만든 영상. 이 값 비싸게 구는 놈과 같이 내려오니 좋다"며 애정을 드러냈다.
디지털 작품의 원형은 1000호에 달하는 연보라 묘법으로 2010년에 제작된 것이다. 캔버스 표면에 올려져 일정한 간격으로 그어내는 과정에서 늘리고 밀리면서 선과 색을 안으로 흡수하는 한지의 물성이 연보라색과 어우러져 비움을 통한 채움의 정신을 묵묵히 발현한다. 손의 흔적을 덮는 규칙적인 선이 만들어 내는 절제에 담긴 색감이 자연의 자기 치유 능력을 발휘하듯 소멸하고 소생하길 반복하며 기운을 흡수하고 또 발산한다.
2층에서는 박 화백이 1986년 중단했다가 최근 재개한 신작 연필 묘법 12점이 나란히 전시되어 있다. 밝은 파스텔 톤의 색감 위로 반복과 평행의 리듬감 있는 신체성을 드러내는 연필묘법에 대해 박 화백은 "무목적성으로 무한반복하며 나를 비우는 작업"이라고 말했다. 연필 묘법은 3살 난 아들이 글씨 연습을 하면서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다가 결국 연필로 빗금을 치는 모습을 보고 체념이 떠올라 시작한 작품이다.
손에 한지가 닿을 때 그 방향을 바꿔서 진행하는 과정은 묘법을 매일 그려오며 신체와 같이 익숙해졌기에 비로소 가능한 작업이다. 자연의 빛을 정신화한 파스텔 톤의 작품에는 알 수 없는 위로와 안정감이 깃든다.
유화물감이 밀리고 한지가 찢기는 물성에 세밀하게 반응하는 거장의 자유로운 손길이 경직된 모든 것을 극복한 온화하고 따스한 파스텔 톤의 색채와 더불어 존재 이전의 무한으로 뻗어나간다.
전쟁을 겪고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모든 것을 스스로 해내야 했던 젊은 시절의 좌절을 돌파해 낸 의지로, 불규칙하고 거친 자연에서 광활한 시야로 자정 능력을 길어낸 박 화백에게 자연과 화폭은 물리적인 대상인 동시에 은유이다.
오랜 시간의 수련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화폭에 담아 조율하는 그의 묘법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확장되는 힘을 느끼게 한다.
한편, 이날 오전 박 화백의 발인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서 엄수됐다. 박 화백은 분당 메모리얼파크에서 영면에 든다.
ick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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