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재 통화' 된 킹달러…한국에 어떻게 타격 입혔나 [김리안의 에네르기파W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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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달러화 가치가 최근 국제 유가와 동반 상승하는 '양의 상관관계'를 보이고 있다. 셰일혁명 이후 미국이 에너지 순수출국으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6일(현지시간) 칼럼을 통해 "달러화가 '원자재 통화'로 변모하고 있다"고 전했다. '원자재 통화'는 주요 원자재의 국제 가격과 연동해 가치가 변하는 통화를 의미한다. 석유, 천연가스 등 자원 가격의 상승세는 해당 수출국의 무역 조건을 개선하고 통화 가치를 상승시킨다는 점에서다. 주로 원자재 자원 수출에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개발도상국 통화에 쓰이는 말이지만, 노르웨이 크로네나 캐나다 달러처럼 원자재 수출 비중이 큰 선진국의 통화도 종종 해당한다.
그동안 달러화와 유가는 역의 상관관계를 보인다는 게 일반적인 상식이었다. 달러화로 표시 및 거래되는 원유 가격은 달러화 강세 국면에서 상대적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이다. 또한 달러화 강세는 미국 외 원유 수요처의 구매력 약화로 이어져 원유 수요를 위축시키고, 이는 유가에 하방 압력을 가한다는 점도 달러화와 유가의 관계를 '역(逆)'으로 만든다.
그러나 지난 6월 말을 저점으로 반등세를 이어오고 있는 유가는 달러화 강세가 시작된 이후에도 상승세를 지속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7월 중순 이후 현재까지 유가가 20% 가량 오르는 동안 주요국 통화 대비 달러화 지수(DXY)도 6% 이상 상승했다.
이는 미국과 글로벌 원유 수급 상황이 초과 수요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란 분석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자발적 감산 연장 등으로 인해 당분간 글로벌 원유 공급량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FT는 여기에 더해 "미국이 2000년대 '셰일혁명'에 의해 에너지 순수출국이 된 덕분에 달러화가 '원자재 통화'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미국은 프래킹과 수평 굴착 등 에너지업계의 신(新)기술로 인해 셰일 원유와 셰일 가스를 대량 생산하게 됐다. 2017년을 기점으로 천연가스 순수출국으로 전환했고, 2019년부터는 전체 에너지 순수출국이 됐다. 작년에는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에너지 위기를 겪은 유럽이 액화천연가스(LNG)를 대량 수입하면서 미국을 세계 최대 LNG 수출국으로 등극하게 했다.
FT는 "물론 통화는 여러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고 무역 조건 추세 등은 그중 하나에 불과하다"며 "최근 달러화 강세는 유가 상승으로 인해 물가상승세 둔화가 더뎌지면 미 중앙은행(Fed)이 고금리를 더 오래 유지할 것이란 전망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도 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하지만 미국 달러화의 위상이 다른 '원자재 통화'들과 차원이 다르다는 점에서 파장이 우려된다"고 강조했다.
달러화가 유가를 따라 상승하는 '원자재 통화'로서의 입지를 굳히면 신흥경제국에 더 큰 타격을 입힐 수 있다. 대부분 신흥국들은 에너지 순수입국이라는 점에서다. 달러 강세는 신흥국 통화를 약화시켜 수입 물가 상승 등 인플레이션과 금융 불안정성 위험을 증가시키고 있다. 에너지 가격 상승과 미국 금리 인상, 달러 강세라는 '삼중고'에다 중국의 성장 둔화까지 더해짐에 따라 특히 아시아 신흥국들을 중심으로 더 큰 고통을 겪을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FT는 "세계 최대 석유 순수입국 중 하나인 한국이 가장 비근한 사례"라고 짚었다. 한국은행은 Fed 등 주요국 중앙은행들의 긴축(금리 인상) 기조에 발맞춰 작년부터 기준금리 인상에 나섰고, 올해 들어서는 기준금리를 연 3.50%으로 안정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 통계청이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는 112.99(2020년=100)로 전년 동월 대비 3.7% 올랐다. 이는 5개월만에 가장 큰 상승폭이다.
FT는 "한국은행은 원화 약세와 수입 물가 상승 등을 막기 위해 외환시장에도 개입해왔지만 역부족이었다"고 진단했다. 블룸버그 자료에 따르면 지난달 한국은행은 전체 외환보유액의 1%에 해당하는 40억달러 이상을 시중에 공급했지만, 달러화 대비 원화 가치는 오히려 2% 가량 하락했다.
김리안 기자 kn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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