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 끝’ 저축은행, 매물 쏟아져도 M&A 찬바람만

진상훈 기자 2023. 10. 17.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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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어 상상인도 매물로…애큐온도 매각 예정
지주사 인수 목표서 후순위…PEF도 ‘시큰둥’
일각선 “지역 간 규제 풀어 판 키워야” 주장도
최근 M&A 시장에 저축은행이 잇따라 매물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실적 부진과 부동산 PF 부실 등으로 인해 지주사 등으로부터 별다른 관심을 받지 못하는 상황이다. 사진은 서울 을지로의 저축은행이 밀집해 있는 건물을 시민이 지나가는 모습. /연합뉴스

최근 인수합병(M&A) 시장에 매물로 나오는 저축은행의 매각이 순조롭게 이뤄지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늘고 있다. 최근 저축은행업계 전체가 실적 부진을 겪고 있어 다른 저축은행이 인수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인 데다, 대형 금융지주사와 사모펀드(PEF) 등도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위원회는 올해 들어 재무 구조가 악화된 저축은행이 늘자, 지난 7월 수도권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 한해 저축은행 간 M&A를 허용하도록 규제를 완화했다. 업계에서는 M&A를 통한 금융 시장의 자율적인 구조조정이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수도권 저축은행 인수 규제를 추가로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 한화·상상인 매물로… ‘6위’ 애큐온도 매각 시작될 듯

17일 투자은행(IB)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한화그룹은 지난 7월부터 계열사인 한화저축은행 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한화는 인수 후보자에 대한 수요 조사를 거쳐 일부 PEF를 접촉해 매각 의사를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상상인저축은행도 조만간 매물로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 금융위는 지난 4일 상상인저축은행과 상상인플러스저축은행에 대한 대주주 지분 매각 명령을 의결했기 때문이다.

상상인 계열 저축은행 2곳은 신용공여 의무비율을 거짓으로 보고하고, 대주주가 전환사채를 저가로 취득할 수 있도록 형식적인 공매를 진행했다는 점이 문제가 돼 지난 2019년 금융위의 중징계를 받았다. 금융위는 두 은행이 지난 8월 내린 대주주 적격성 충족 명령을 이행하지 못하자, 매각 명령을 내린 것이다.

자산 규모 기준 업계 6위인 애큐온저축은행도 조만간 M&A 시장에 매물로 나올 것으로 전망된다. 애큐온저축은행은 국내 10위권 저축은행 가운데 유일하게 PEF가 경영권을 갖고 있다. 지난 2019년 애큐온을 인수한 홍콩계 펀드인 베어링PEA가 올해로 인수 5년째를 맞고 있어 내년부터 매각 작업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 금융지주·사모펀드, 저축은행 인수 외면

시장에 매물은 계속 늘고 있지만, 이렇다 할 인수 후보자들은 눈에 띄지 않는 상황이다. IB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한화저축은행의 경우 이미 매각 작업이 시작된 지 3개월이 지난 상태지만, 접촉한 PEF 등으로부터 별다른 인수 의사는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지주사는 M&A 시장에서 저축은행 인수에 그나마 관심을 보일 만한 곳으로 꼽힌다. 특히 우리금융지주의 경우 신한과 KB, 하나 등 경쟁 지주사와 달리 서울과 수도권에서 영업을 하는 저축은행이 없어 유력한 인수 후보군 중 하나로 거론돼 왔다.

저축은행은 올해 들어 부동산 PF 부실이 심화되고 있다. 재무 구조 부실은 M&A 시장에서 인수 후보자들이 외면하는 이유로 꼽힌다. /그래픽=손민균

그러나 우리금융은 저축은행 인수에 대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임종룡 우리금융 회장은 최근 한 행사에서 “증권사 인수는 추진하겠지만, 다른 비은행 회사는 인수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우리금융의 경우 증권사 외에 보험사 역시 계열사로 두고 있지 않아, 자산 규모가 훨씬 작고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부실 등 여러 재무 위험에도 노출돼 있는 저축은행은 후순위로 밀릴 가능성이 크다.

금융권 관계자는 “대다수 저축은행은 부동산 PF 부실 위험을 겪고 있는데, 최근 시중은행들이 예금 금리 경쟁을 벌이면서 영업에서도 고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인수 후 5년 안에 승부를 봐야 하는 PEF 역시 성장성이 떨어지고 부실 위험이 큰 저축은행보다 보험사 인수로 눈을 돌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 “서울·수도권 은행 인수 장벽 낮춰야” 주장도

금융 시장에서는 지난 2010년대 초반 저축은행의 대규모 파산 사태를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M&A를 활성화해 시장 내 자율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지도록 숨통을 터줘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를 위해선 동일 대주주가 지방뿐 아니라 수도권 저축은행도 소유할 수 있도록 추가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저축은행 영업권은 수도권 2곳(서울, 인천·경기)과 비수도권 4곳(부산·울산·경남, 대구·경북·강원, 광주·전라·제주, 대전·세종·충청) 등 총 6곳으로 나뉜다. 동일 대주주는 저축은행을 3곳까지만 소유하고, 영업권이 다른 은행들의 합병은 금지됐다. 금융 당국은 지난 7월 동일 대주주가 최대 4곳까지 소유를 할 수 있도록 규제를 풀었지만, 대상 지역은 비수도권으로 한정됐었다.

한화저축은행과 상상인저축은행의 영업권은 인천·경기 지역이다. 이르면 내년부터 매각 작업이 시작될 것으로 보이는 애큐온은 서울을 영업권으로 두고 있다.

저축은행업계 관계자는 “지역 간 M&A 규제를 풀 경우 금융지주사뿐 아니라 영업망 확대와 대형화를 노리는 타 저축은행도 인수전에 뛰어들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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