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퍼에서 성우로... 제이슬로우의 성공 비결 [인터뷰]

유수경 2023. 10. 17. 11: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제이슬로우가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본인 제공

제이슬로우는 지난 2012년 첫번째 싱글을 내고 래퍼로 데뷔했다. 당시 랩 발음이 워낙 좋아 우연히 노트북 광고 CM송을 맡게 됐는데, 그게 그가 끼운 첫 단추였다. 몇 년 후 유명 카드사의 광고 섭외가 왔다. 그런데 예상과 다르게 랩이 아닌 더빙 요청이었다. 걱정이 앞섰지만 결과는 성공적. 광고가 온에어되자 각종 광고 대행사들이 "이 성우는 누구냐"며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렇게 제이슬로우는 광고계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사실 그는 대학에서 연기를 전공했다. 연극은 물론 발성 수업과 성우 수업을 받았다. 당시 제이슬로우를 눈여겨보던 교수의 추천으로 성우 학원에서 일을 했고, KBS 공채를 목표로 열심히 노력했다. 하지만 2년 연속 1차에서 낙방했다. 다시 음악에 매진하게 된 계기다. 제이슬로우는 "그 당시엔 실패라 생각했던 게 계속 하니까 밑거름이 됐다. 어떤 일이 있을 때 부정적으로 생각하기보다 '시간이 지나면 되겠지'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며 긍정적인 매력을 드러냈다.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정작 그는 성우 시험에 떨어졌지만 오히려 따라갔던 친구들이 합격했던 것. 한 친구는 시험 삼아 동행했다가 최종 오디션까지 올라갔으나 스스로 포기했다. 당시 연기자를 지망했던 제이슬로우의 대학 동기이자 룸메이트였다. 그가 바로 '더 글로리'에서 전재준 역을 맡은 배우 박성훈이다. 두 사람은 여전히 절친한 사이다. 제이슬로우는 "성훈이와는 새우과자에 소주를 함께 먹던 사이"라며 웃었다.

그렇게 다시 음악으로 눈을 돌렸지만 래퍼로서의 삶은 쉽지 않았다. 힙합 장르가 대중적 인기를 얻던 때가 아니었고 래퍼들이 돈을 잘 벌던 시절도 아니었다. 제이슬로우 역시 음악을 하면서 돈을 벌어야겠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는 "랩을 처음 시작한 건 고등학생 때인데 데뷔를 29살에 했으니 그 사이에 고생을 많이 했다. 음악은 실력과 운이 있어야 한다. 회사도 잘 만나야 하고 포기할까 생각도 많이 했다"고 털어놨다.

제이슬로우가 본지와 인터뷰를 진행했다. 본인 제공

하지만 제이슬로우는 '하면 된다'는 말을 믿었다. 일단 해보자는 마음으로 버텼다. 드렁큰타이거나 CB Mass와 같은 가수들과 한 무대에 오르고 싶었고 래퍼들 사이에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컸다. 물론 내면 깊은 곳엔 부와 명예를 갖고 유명해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현실의 벽에 부딪혔고, 새로운 재능을 발견하면서 삶의 전환점을 맞게 된 셈이다.

그의 또 다른 장기는 성대모사다. 과거 올렸던 영상이 온라인에서 뒤늦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선생님을 흉내내고 친구들을 즐겁게 해주던 아이였다. 사람을 관찰하는 걸 좋아했기에 자연스럽게 성대모사로 이어졌다. 장혁이나 양동근 신구 최민식 등 배우들의 성대모사도 잘한다. 제이슬로우는 "어느 날 아버지 친구분들이 우리 집에 와서 약주를 한잔 하셨는데 아버지가 성대모사를 하고 계시더라. '내 피가 저기 있었구나' 싶었다"고 말하며 웃었다.

자신의 삶에 대해 들려주던 제이슬로우는 "성우로 일하는 것도 쉽지만은 않았다"며 "사전에 유출될까봐 대본을 미리 주지 않고 현장에 가서 받는다"고 설명했다. 즉석에서 요청에 따라 톤을 잡고 광고 분위기에 맞는 더빙을 해내야 한다. 그 역시 처음 할 때는 손과 목소리가 덜덜 떨릴 정도였다. 이제는 익숙해져서 자유자재로 변주하며 프로 성우다운 기량을 뽐내고 있다. 그가 참여한 광고 속 목소리는 '같은 사람이 맞나' 싶을 정도로 다채롭다.

시간을 자유롭게 쓰기 어려운 것도 단점 중 하나다. 촬영이 하루 전날 결정되는 경우가 많고 긴급한 건 아침에 전화해서 부르기도 한다. 그러다 보니 음악은 자연스럽게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제이슬로우는 아침에 일어나서 버릇처럼 입 근육을 풀고 발성 호흡을 한다며 "어떤 날은 하루에 녹음이 7~8개가 들어오기도 한다. 아침에 나가서 밤까지 녹음만 해야 한다. 녹초가 되어서 들어오는데 몸은 힘들지만 뿌듯하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일이 없을 때는 불안하기도 하다. 언제 스케줄이 잡힐지 모르니 인생이 대기의 연속이다. 일이 몰릴 때도 있고 아예 없을 때도 있다 보니 불안감은 떨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숙명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였다"고 담담하게 말한 그는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라는 말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수많은 광고에 참여한 만큼 더 큰 욕심도 낼 법하지만 제이슬로우가 원하는 건 '꾸준함'이다. "설령 스트레스를 받더라도 제가 하고 싶은 일로 스트레스 받는 게 나을 거 같아요. 가능하다면 애니메이션 더빙도 해보고 싶고 게임에 나오는 캐릭터의 목소리 연기도 해보고 싶습니다. 이 일을 좋아하고, 오래 쭉 하고 싶은 마음입니다."

유수경 기자 uu84@hankookilbo.com

Copyright © 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