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해설하는 노벨상] 100경분의 1초 뛰어넘는 '젭토초' 바라본다
2023년 노벨 물리학상은 아토초(100경분의 1초) 단위의 빛을 생성하고 측정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3인의 과학자 피에르 아고스티니 미국 오하이오주립대 교수, 앤 륄리에 스웨덴 룬드대 교수, 그리고 페렌츠 크라우스 독일 뮌헨공대 양자물리학과 교수에게 주어졌다.
아토초 과학 연구자들은 이 분야에서 언젠가 노벨상이 나오리라 생각하고 있었다. 더구나 2022년 작은 노벨상이라 불리는 울프상이 앤 륄리에, 페렌츠 크라우스, 폴 코컴(아토초 과학 이론 연구자) 등 세 명에게 수여됐기 때문에 올해 수상을 어느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이번 노벨상 수상자들은 아토초 과학 실험을 꽃피웠다. 초강력 레이저를 이용해 고차조화파(한 레이저를 기체 원자에 집속해 발생된 연엑스선(soft X-ray) 영역에서 레이저의 특성을 닮은 매우 짧은 펄스폭을 갖는 우수한 연엑스선 광원)를 발생시키고 이를 이용해 아토초 펄스를 생성 및 측정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했다.
그들이 만들어낸 아토초 펄스 덕분에 원자, 분자, 고체 또는 플라즈마 내의 초고속 전자 동역학을 연구할 수 있는 아토초 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 분야가 시작됐다. 또한 그동안 측정할 수 없다고 여겨졌던 광전자 이온화 현상에 수십 아토초의 지연 현상이 있음을 측정하는 과학적 성과를 거뒀다.
● 아토초 과학의 시작, 강력장 물리학 연구
아인슈타인에게 노벨상을 안겨준 광전효과 실험은 높은 주파수의 빛을 쪼이면 물질 내 원자가 이온화 되면서 광전자(photoelectron)가 발생하는 현상을 설명하는 실험이다. 레이저가 개발되기 전인 1905년 당시에는 광자를 이온화하는 데 필요한 강력한 빛이 없었기에 빛의 세기를 높여도 이온화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 1970년대 들어 강력한 레이저 펄스를 생성할 수 있게 됐고 당시 프랑스 원자력 및 대체에너지 위원회(CEA) 연구소에서 일하던 아고스티니 교수는 초강력 레이저를 사용해 광전자 현상을 연구했다.
강력한 빛을 이용하자 광자가 이온화되기 위해 필요한 주파수의 문턱값을 넘어 이온화되는 현상이 관측됐다. 1979년 발견된 이러한 ‘문턱 넘는 이온화(ATI・Above-threshold ionization)’ 현상은 강력장 물리학 연구의 기폭제가 됐다.
이런 분위기에서 아토초 펄스를 만들 수 있는 기반 연구는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아고스티니 박사와 같은 CEA 연구실에 있던 륄리에 교수와 그의 동료들은 1988년 1064 나노미터의 적외선 레이저를 이용해 고차조화파를 발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doi : 10.1088/0953-4075/21/3/001)
고차조화파는 레이저와 같이 결맞음 특성을 가지며 극자외선 또는 엑스선 영역에 해당하는 넓은 주파수 영역을 갖는 빛이다. 이 말은 곧 고차조화파를 이용하면 수십 또는 수백 아토초의 펄스폭을 갖는 아토초 펄스를 생성 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아토초 펄스를 생성하더라도 이것을 어떻게 측정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여전히 숙제로 남아 있었다.
● 인류 최초의 아토초 펄스 측정
아토초 펄스를 연구에 이용하기 위해서는 아토초 펄스의 시간폭이 얼마나 되는지 또는 몇 개의 펄스로 구성돼 있는지 등의 모양을 알아야 했다. 조화파의 각각의 차수에 대한 세기와 위상을 모두 알아야 가능한 일이다.
아고스티니 교수팀은 조화파의 위상 관계를 측정하기 위해 알츠레드 마켓 등의 연구자가 이론적으로 제안했던 ‘이광자 흡수에 의한 양자 간섭 방법’에 주목했다. 고차조화파를 이용해 광전자를 만들면 각각의 조화파에 해당하는 광전자가 생성된다.
이 때 적절한 세기의 레이저 펄스를 동시에 쪼이면 각각의 조화파 외에 새로운 주파수 성분을 가지는 광전자들이 만들어진다. 새롭게 생성된 광전자들은 주변 고차조화파의 위상 정보를 가지고 양자 간섭 현상을 일으키게 된다.
아고스티니 교수팀은 이 양자 간섭 효과를 관측해, 각각의 조화파들의 위상 관계를 측정했다. 그리고 이 방법을 ‘이광자 양자 간섭 아토초 복원 방법(RABBIT・Reconstruction of attosecond beating by interference of two-photon transitions)’이라 이름 붙였다.
아고스티니 교수팀은 고차조화파의 세기와 위상을 모두 측정했으며 250 아토초의 펄스폭을 가지는 아토초 펄스열을 얻어 2001년 ‘사이언스’에 발표했다. (doi : 10.1126/science.1059413)
인류 역사상 최초로 아토초 펄스를 측정한 순간이었다.
● 단일 아토초 펄스를 만들다
다음 단계는 하나의 아토초 펄스를 생성하는 것이었다. 단일 아토초 펄스를 이용하면 초고속 현상, 예를 들면 원자나 분자 내부에서 일어나는 전이현상 등을 연구할 수 있다. 단일 아토초 펄스를 생성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극초단 펨토초(1000조분의 1초) 기술이 필요했다.
높은 에너지를 가지면서도 펄스폭이 수 펨토초에 불과한 펄스 압축 기술은 마우로 니솔리 교수와 페렌츠 크라우스 교수(당시에는 오스트리아 빈 공대 소속)팀의 공동연구로 개발됐다.
펨토초 레이저의 펄스폭이 줄어들자 레이저의 절대위상 안정화가 중요한 이슈가 됐다. 절대위상 안정화는 사인과 코사인 형태가 반복되는 파장에서 아주 작은 부분만 확인할 때 이 모양을 하나로 고정시키는 과정을 뜻한다. 이는 단일 아토초 펄스 생성을 위해서 꼭 필요한 기술이었다.
당시에 이러한 실험을 성공시키기 위해 많은 연구팀이 도전했으나, 크라우스 연구팀이 펄스 압축 기술과 절대위상 안정화 기술을 모두 접목시켜 최초로 단일 아토초 펄스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이 결과는 아토초 펄스열 생성 발표와 같은 해인 2001년 ‘네이처’에 발표됐다. (doi : 10.1038/35107000)
● 광전자 이온화의 지연 현상 측정
아토초 펄스를 생성하고 또 측정하는 데 성공하자 과학계는 흥분했다. 비록 아토초 펄스의 파장이 극자외선 또는 엑스선 영역으로 제한돼 있고 세기가 약하다는 문제가 있기는 했지만 아토초의 시간 분해능으로 그 동안 보지 못했던 물리현상을 관측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특히 광전자 이온화 현상과 같은 초고속 현상을 연구할 수 있게 됐다.
크라우스 연구팀은 단일 아토초 펄스를 이용해 네온에서 일어나는 광전자 현상을 연구했다. 네온에서는 2s와 2p의 해당하는 양자상태로부터 광전자가 생성되는데 이 두 양자상태로부터 생성되는 광전자들의 지연 시간에 약 25 아토초 정도의 미세한 차이가 있음을 확인했다. 이러한 지연 현상은 이론적인 연구에서 제시한 값 보다 두 배 정도 큰 것이어서 해석에 어려움이 있었다.
이 문제의 정답은 륄리에 교수가 해결했다. 륄리에 교수의 실험에서는 원자 내부의 전이현상에 대해 관측할 수 있었기 때문에, 광전자 현상에서 나타나는 지연 현상에 대해 더욱 자세한 해석이 가능했다. 그 결과 크라우스 연구원팀의 측정값이 원자 내부의 전이현상에 영향을 받아 실제보다는 두 배 큰 지연 현상이 관측된 것이라는 설명을 가능하게 했다.
● 기초과학에 당장의 쓸모는 접어두길
아토초 과학은 현재 많은 연구 분야로 확장되고 있다. 원자에서의 초고속 현상 연구뿐만 아니라 고체 또는 액체의 초고속 이온화 및 전이현상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또한 의료 분야에도 쓰일 것으로 기대된다.
아토초 펄스를 활용하면 X선에 의해 DNA가 손상되는 아주 짧은 순간까지 관찰할 수 있다. 그 밖에 반도체와 같은 전자공학 분야에서도 아토초 펄스를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매년 반복되는 일이지만 노벨상이 발표될 때면 대한민국의 현실을 되돌아 보게 된다. 아고스티니 교수가 ‘문턱 넘는 이온화’ 실험을 수행하고 륄리에 교수가 ‘고차조화파’를 발견했을 당시에는 이것들이 노벨상을 받게 되리라고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이다.
그저 과학자들은 눈앞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묵묵히 연구해왔을 뿐이다. 기초과학의 발전에 당장의 쓸모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대한민국의 현실과는 많이 다르다.
오늘날의 과학자들은 아토초 그 다음을 논의하고 있다. 이제는 젭토초(10-21 초)를 이용해서 원자 내부의 초고속 동역학을 연구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초강력 레이저과학 연구단에서는 페타와트(1000조W)급 레이저를 이용해 상대론적인 영역에서 아토초, 젭토초 펄스를 생성하고자 한다.
포항 4세대 방사광가속기(PAL-XFEL)를 이용한 아토초 연구 또한 유망해 보인다. 필자는 한국의 아토초 과학도 높은 수준에 올라와 있다고 믿는다. 인류의 한계에 도전하는 초고속 현상 연구에서 대한민국의 기초과학이 빛을 발할 수 있기를 바라며 글을 마친다.
※필자 소개
김경택 GIST 물리광과학과 교수 KAIST 물리학과에서 ‘아토초 펄스의 생성과 측정’에 대한 연구를 수행해 석사 및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후 GIST 고등광기술 연구소 선임연구원, 캐나다 국립연구회(NRC) 및 오타와대 연구위원을 거쳐 현재는 기초과학연구원(IBS) 초강력 레이저과학 연구단과 GIST 물리광과학과의 아토초 과학 연구실에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김경택 GIST 물리광과학과 교수,김미래 기자 kyungtaec@gist.ac.kr,futurekim9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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