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종연 PD, 김태호 품에 안긴 이유 “탑티어 신뢰, 외로움 많이 타” [DA:인터뷰①]
정 PD는 최근 서울 종로구 안국동의 한 카페에서 동아닷컴과 함께한 ‘데블스 플랜’ 인터뷰에서 “확실히 넷플릭스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구독자가 많은 OTT고 해외 시청자들과도 만날 수 있는 플랫폼이라 되게 좋았다. 접촉면이 넓어져 만족스러웠다”며 “매니악한 장르고 룰을 설명하는데 소요되는 시간도 길어서 허들이 많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견뎌내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게 놀라운 경험이었다”고 밝혔다.
앞서 ‘더 지니어스’와 ‘소사이어티 게임’ 시리즈 등 두뇌 게임에 심리전을 결합한 예능들을 성공시킨 정종연 PD. 이밖에 ‘대탈출’과 ‘여고추리반’ 등 다양한 예능을 시리즈화한 그는 지난해 8월, 20년간 몸담았던 CJ ENM을 퇴사했다. 이후 김태호 PD가 이끄는 콘텐츠 제작사 TEO에 합류했고 첫 프로그램으로 ‘데블스 플랜’을 선보였다.
‘데블스 플랜’은 변호사, 의사, 과학 유튜버, 프로 게이머, 배우 등 다양한 직업군이 모인 12인의 플레이어가 7일간 합숙하며 최고의 브레인을 가리는 두뇌 서바이벌 게임 예능. 올해 1월 촬영을 마치고 후반 작업을 거쳐 지난달 26일(화)부터 10월 10일(화)까지 3주에 걸쳐 공개됐다.
‘데블스 플랜’은 두뇌 서바이벌 전문가 정종연 PD가 연출한 프로그램답게 화려한 스케일과 고퀄리티 게임으로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서바이벌 취지에 어긋나는 일부 플레이어의 공리주의적 태도에 대해 일부 혹평도 존재했다. 엇갈리는 반응 속에서 ‘데블스 플랜’은 빛나는 두뇌 플레이를 보여준 배우 하석진의 승리로 끝이 났다.
정종연 PD는 이같은 시청자들의 반응에 자신의 생각을 전하며 좀 더 보완한 ‘데블스 플랜’ 시즌2를 선보이고 싶다고 바람을 전했다. 이하 정종연 PD와의 일문일답.
Q. 언제부터 ‘데블스 플랜’을 기획했나.
A. 2년 가까이 주변에 이야기해온 포맷인데 사람을 모아서 시작한 건 지난해 8월인 것 같다. CJ 퇴사 직전에도 회사에서 아무 일도 안 하고 퇴사 단계를 밟고 있었다. TEO 입사 직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Q. TEO에 합류한 이유는 무엇인가. 자신의 회사를 세울 수도 있었을 텐데.
A. 외로움을 많이 타는 사람이라(웃음). 나는 위에서 누가 봐주지 않으면 실수할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당시 나에게 주어진 선택은 혼자 회사를 차리거나 TEO에 들어가는 것이었는데 나 스스로를 안 믿었다. 탑티어 프로듀서라 더욱 믿음이 갔고 고민을 이야기할 사람이 많아서 만족스럽다. 만족스럽고 잘 판단했다고 생각한다.
Q. ‘데블스 플랜’은 올해 1월 설날 즈음에 촬영해 9월 추석 즈음에 선보이게 됐다. 촬영까지의 시기보다 후반 작업이 더 오래 걸린 것 같은데.
A. 녹화 후에 편집은 거의 일반 프로그램처럼 1주일에 1회씩 진행해서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후에는 넷플릭스 가이드라인에 따라 픽셀이 망가졌거나 조명이 잘못 들어가는 등 화면상 문제점을 잡아내는 작업을 했다. 자막과 더빙 작업이 가장 오래 걸린 것 같다. 아무래도 전 세계 동시 공개를 해야 하니까.
Q. 넷플릭스와 협업한 이유는.
A. 언젠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다시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기왕이면 못 만난 시청자들도 만날 수 있게끔 접촉면이 넓은 플랫폼에서 해보고 싶었다.
A. 배제됐다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시청자 입장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 왔을 때의 익숙함이 캐릭터에서 필요하니까 당연히 고려했다. 저마다의 강점이 있는 사람으로 구성하려고 노력했다.
Q. ‘데블스 플랜’이 아니라 ‘엔젤스 플랜’이었다. 캐스팅과 관련해 아쉽다는 반응도 있는데.
A. 다양성의 측면에서 결과적으로는 한쪽으로 밸런스가 쏠린 경향이 있다. 출연자들이 게임을 해보지 않으면 모르는 부분이 있어서 중간에 변화하는 지점까지 파악해서 가야 하는데 어쨌든 반면교사 할 지점은 있다 싶다.
Q. 공리주의를 추구하던 궤도도 게임을 거듭할수록 혼란스러워했는데. 서바이벌에서 보기 드문 출연자의 형태였다.
A. 제작진도 예상 못한 부분이다. 공격적이거나 경쟁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은 알았는데 이런 판에 들어오면 사람이 변하는 부분이 있지 않나. 하지만 궤도는 자신만의 계획이 너무나 있었다. 그 영향으로 프로그램이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양상으로 흘렀다.
하지만 막상 보면 궤도의 공리주의적 플레이가 실제적으로 게임에 영향을 준 건 네 번째 게임 동물원 게임 밖에 없다. 그 회차에서 되게 많은 사람들이 각성했다. 궤도는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완전히 새로운 캐릭터였고 새로운 스토리를 썼다. 게임적으로도 너무 훌륭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었지만 서바이벌에 잘 적용이 안 되는 세계관을 가진 사람이었다고 본다.
Q. 궤도를 중심으로 한 다수 연합의 강세로 인해 소수가 힘을 못 쓰는 부분도 아쉬웠다. ‘더 지니어스’처럼 ‘데스 매치’를 통한 반전이 있었어야 하지 않냐는 의견도 많았다.
A. ‘데블스 플랜’은 내가 해놓은 구조가 반, 출연자들의 욕망이 이끄는 반으로 방향이 이끌어지는 프로그램이었다. ‘데스 매치’는 ‘더 지니어스’의 핵심 아이템이어서 그 선을 넘지 말자고 생각했다. ‘데스 매치’를 제대로 작동하려면 ‘데스 매치’가 이뤄지는 방식이나 생명의 징표라든지 끌고 와야 할 게 너무 많았다. ‘더 지니어스’에서 건드려선 안 되는 중요한 특징이고 그걸 만든 사람으로서 내가 스스로 지키고 싶었다.
분명히 다른 방법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시청자들이 아쉬워하는 부분을 어떻게 채워줄까 고민했다. 강자가 보호받는 시스템 중 하나가 상금 매치였다. 잘하는 사람이 남아야 상금 매치에서 유리하니까. 그런데 다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급했고, 의도치 않게 떨어지는 부분도 있었다. 연합 내에서도 의견이 부딪치곤 했는데 진짜 공리주의 방향으로 가고자 하는 건 궤도뿐이었다.
Q. 제작진의 예상과 가장 다른 플레이를 보여준 출연자는 누구였나.
A. 궤도(웃음). 다들 소극적인 모습이 된 부분도 있는 것 같고 조금 더 균형이 잘 잡히게 하는 방향이 좋았겠다 싶다. 누가 못했다 잘했다의 문제가 아니다.
[DA:인터뷰②로 이어집니다.]
동아닷컴 정희연 기자 shine2562@donga.com 사진|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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