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형 은행 신한 ‘디지로그 브랜치’] 공항 비즈니스 라운지 온 줄…디지털 기술 체험, 재미는 덤
최근 서울 중구 서소문동에 있는 신한은행 ‘디지로그 브랜치’를 찾았다. 외관을 둘러보니 점포 전면이 통유리로 시공돼 은행 내부가 훤히 들여다보였다. 안으로 들어가니 원통의 대리석 벽 앞에는 둥그런 탁자와 원형의 대기 소파가 있어 전체적으로 부드러운 분위기를 자아냈다. 은행이라기보다 공항 비즈니스 라운지에 온 듯했다. 콘크리트 건물 외벽에 네모난 의자가 일렬로 놓인 일반 은행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디지로그 브랜치는 지난 2021년 7월 문을 연 미래형 점포로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은행 업무를 처리하는 특화 점포다. 신한은행은 디지로그 브랜치를 개점하기 전 표면집단면접법을 통해 고객이 생각하는 이상향 점포에 대해 몇 차례에 걸쳐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 그 결과 신한은행은 고객이 은행을 찾는 이유를 ‘재미’와 ‘정보’로 결론을 내렸다. 이를 바탕으로 ‘은행 같지 않은 은행’을 목표로 디지로그 브랜치를 개점했다. 은행의 변화를 통해 고객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하고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직원의 업무 효율성을 높이고자 했다.
CX테이블·포토존·벤딩머신 등 ‘재미’ 제공
디지로그 브랜치는 고객에게 재미와 정보를 제공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 공간을 구성했다. 고객은 점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고객경험(CX)테이블을 마주한다. CX테이블을 통해 고객은 디지털 스크린을 터치하면서 여러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그 앞 한쪽 벽면에는 세계 각국 휴양지를 비추는 대형 스크린을 통해 ‘인생샷’을 찍을 수 있다. 뽑기 기계인 벤딩머신도 있다. 고객은 CX테이블에서 간단한 참여로 받은 티켓 QR코드를 벤딩머신에 찍으면 에코백, 키링 등 사은품을 받을 수 있다. 통상 은행 창구에서 주던 사은품을 재밌게 제공하고 있다.
CX테이블 콘텐츠는 20~30대 취향을 저격했다. 성격유형검사 MBTI를 활용한 ‘SFTI
(Shinhan Financial Type Indicator)’가 대표적이다. 가령 적극적인 투자자인 ENFP는 주식을 추천하고, 소극적인 투자자인 INFP는 예·적금을 추천하는 식이다. 고객의 연령대에 따라 평균 금융자산을 보여주는 콘텐츠도 있다. 신한은행이 그동안 거래해 온 고객 정보를 분석해 통계를 낸 자료다. 20대 신입사원부터 60대 은퇴자까지 고객 유형은 다양하다. 이들의 평균 소득과 저축 비율에 따른 상품을 추천한다. 고객은 추천받은 금융 상품을 QR코드로 가입할 수 있다.
AI컨시어지, 디지털 데스크로 효율화
미래형 점포답게 은행 업무 처리는 디지털 기술이 활용됐다. 통상 점포에 들어서면 고객은 청원경찰의 안내에 따라 번호표를 뽑고 자신의 순번이 올 때까지 대기하다가 창구에서 업무를 처리한다. 하지만 디지로그 브랜치는 이런 시스템이 아니다. 대형 스크린 속 성인 남성 모양의 인공지능(AI)컨시어지가 고객에게 원하는 업무를 묻는다. AI컨시어지에 출금을 하고 싶다고 말하면 대기 번호를 알려준다. 고객은 대기하는 동안 소파 앞에 놓인 태블릿 PC를 활용해 미리 업무 관련 정보를 작성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창구 상담 시 빠르게 업무 처리를 할 수 있다.
고객은 직원을 마주하지 않고도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다. 지점에 마련된 디지털 데스크를 통해서다. 고객은 디지털 데스크를 통해 거래 내역 확인, 인터넷뱅킹, 예·적금 등 기본 업무를 처리할 수 있다. 화면 속 본점 직원과의 화상 상담을 통해서다. 비대면이지만 위조나 사기 걱정은 없다. 디지털 데스크에는 신분증, 인감, 손바닥 정맥 스캐너가 있다. 화상상담 직원은 고객의 얼굴과 스캔한 신분증을 대조해 신분증 진위를 확인한다. 은행 애플리케이션(앱)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은행 업무를 디지털 데스크를 통해 비대면으로 해결할 수 있다.
기본 은행 업무를 보지 않는 고객은 컨설팅 라운지로 안내받는다. 이곳은 앞서 체험존과 구분돼 독립된 방으로 구성돼 고객 프라이버시를 보호한다. 2층에는 기업 대출 등을 하는 프리미엄 컨설팅 라운지가 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엔 신진 예술가의 작품을 전시해 보는 재미를 더했다. 컨설팅 라운지는 디지털 명패를 통해 단순 창구 직원 이름뿐만 아니라 상세한 정보를 제공했다. 또 스마트 글라스를 설치해 통유리를 불투명하게 가릴 수 있게 해 고객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는 세심한 기술이 돋보였다.
디지로그 브랜치는 고객뿐만 아니라 직원의 업무에도 혁신을 더했다. 이곳에는 현금과 골드바 등 현물을 자동화로 관리하는 디지털 금고가 있다. 통상 은행은 현금과 현물을 영업점 내 금고에 보관하고 직원이 매일 정산하는 방식으로 관리해 왔다. 디지털 금고는 일일 자동 정산, 상시 이상 감지 시스템, 자동 무게 측정 등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횡령·분실 등 사고를 방지해 내부 통제를 강화한다. 직원들은 시재(은행에 수납된 돈) 맞추기 등 아침·마감 업무를 하지 않아도 되는 편의를 본다. 이런 디지털 금고는 신한은행이 유일하다.
또 다른 눈에 띄는 점은 점포 내 있는 촬영장이다. 촬영장 안에 들어가면 크로마키 배경지 앞 스탠드 조명, 카메라 등 촬영 장비가 줄지어 있다. 여기서 신한은행 유튜브 채널인 ‘디지로그TV’가 만들어진다. 직원들이 직접 금융 콘텐츠를 제작, 촬영, 편집한다. 영상제작은 신한은행의 새로운 영업 방식이다. 과거에는 은행이 전화로 고객에게 상품을 설명했지만, 이 방법은 비효율적이었다. 영상 한 편을 제작하면 고객도 이해가 쉽고 은행도 효율적으로 영업을 할 수 있다. 각 영업점은 디지로그에서 촬영한 영상을 고객에게 링크(url)로 보내고 있다.
인근 상권과 상생도
서소문동에 디지로그 브랜치가 위치한 점은 미래형 점포를 운영하기 적절하다고 평가된다. 서소문동은 대기업 등이 밀집한 도심이면서도 덕수궁, 서울시립미술관이 위치해 관광객도 많다. 또 역사가 오래된 동네인 만큼 고령층의 비율도 높은 편이다. 신한은행은 최대한 다양한 고객에게 미래형 점포를 보여주길 원했는데, 목표 달성에 가장 적합한 장소였다. 그 덕에 디지로그 브랜치는 하루 150~200명가량 남녀노소 고객이 찾고 있다. 나아가 디지로그 브랜치는 서소문동 오래된 가게를 홍보하고 할인 쿠폰을 제공하는 등 인근 상권과 상생도 꾀하고 있다.
최근 은행권에서는 디지털 전환으로 내점고객이 감소하면서 고객 모집을 위한 이색 점포를 만들고자 한다. 단순히 은행 업무를 넘어 고객에게 색다른 경험을 제공해 점포 경쟁력을 강화하는 것이다. 신한은행도 이런 고민 끝에 미래형 점포인 디지로그 브랜치를 출범했다. 디지로그 브랜치에는 신한은행 로고가 없다. 일반 점포에서 하위 브랜드명만 노출한 최초의 사례다. 이는 신한은행이 갖는 시중은행 타이틀을 떼고 디지털 특화 점포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시중은행만 제공할 수 있는 대면 채널 경쟁력을 극대화하려는 신한은행의 전략인 것이다.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