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완의 사이언스카페 | [Interview] 글로리아 최 MIT 교수 | “뇌는 면역계와 소통, 자폐도 면역 단백질로 치료 가능”
TV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처럼 다른 사람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의사소통이 힘든 자폐증을 앓는 환자가 늘고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법적으로 등록된 국내 ‘자폐 스펙트럼 장애(ASD)’ 환자는 2022년 기준 3만7603명으로 2018년 2만6703명과 비교해 70% 증가했다. 실제 환자는 등록 환자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영국은 1998~2018년 20년 동안 ASD 발병률이 787%나 늘었다.
글로리아 최(Gloria Choi·46·한국명 최보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뇌인지과학부 교수는 최근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한국뇌신경과학회에서 “면역계가 뇌에 영향을 미쳐 자폐가 발생할 수 있음을 동물 실험으로 확인했다”며 “면역 단백질을 통해 실험동물의 자폐 증상을 완화하는 데도 성공했다”고 밝혔다. 과학계는 최 교수가 자폐아 출산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전기를 마련했다고 평가했다.
뇌신경과학자인 최 교수는 면역학자인 남편 허준렬(50) 하버드대 의대 교수와 함께 신경면역학이란 새로운 접근을 통해 자폐의 새로운 원인을 찾아냈다고 했다. 두 사람은 캘리포니아공대(칼텍)에서 함께 박사학위 과정을 밟으면서 공동 연구를 시작했다. 최 교수는 컬럼비아대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냈으며, 2013년 MIT 교수로 부임했다. 2014년 생명과학 최고 권위지인 ‘셀(Cell)’이 40주년을 맞아 선정한 ‘40세 이하 주요 생물학자 40인’에 들어갔다.
장내 세균과 바이러스 감염이 자폐 유발
2017년 ‘네이처’ 논문에서 장내 세균이 자폐아 출산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밝혔다.
“생쥐가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자폐 증상이 있는 새끼를 낳는데, 장내 세균이 유발한 면역 단백질이 원인임을 밝힌 것이다.”
그렇다면 자폐 원인이 엄마에게 있나.
“전혀 그렇지 않다. 우리는 자폐의 원인 중 하나를 밝혔을 뿐이다. 유전자 분석 연구에서 아버지 나이가 많으면 자폐아 출산 확률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면역 단백질이 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가.
“면역 신호를 전달하는 인터류킨17이란 단백질이 뇌의 체성감각영역(S1DZ)에 영향을 미쳤다. 이곳은 몸의 위치나 자세를 관장하는 곳이다.”
그러면 생쥐의 행동이 어떻게 변하나.
“생쥐는 늘 동료와 어울린다. 그런데 인터류킨17이 뇌에 작용하면 동료보다 장난감을 더 찾았다. 사람으로 치면 사회성이 떨어지는 자폐 증상을 보인 것이다.”
당시 논문에서 자폐 치료 방법도 제시했다.
“항생제로 문제가 된 장내 세균을 없애자 임신 중에 바이러스에 감염돼도 정상 새끼를 낳았다. 면역 단백질이 공략하는 뇌 영역의 신호를 조절해도 생쥐의 자폐 행동이 크게 줄었다.”
부부의 융합 연구 덕분에 새로운 접근 가능
이번 한국뇌신경과학회에서 신경면역학 연구가 큰 주목을 받았다. 어떻게 연구를 시작했나.
“남편과 칼텍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밟을 때 지도 교수로부터 임신 중에 어미 쥐가 아프면 태어난 쥐가 자폐 증상을 보인다는 말을 들었다. 그때부터 연구를 시작했다.”
생쥐에게 나타난 현상이 사람에게도 적용되나.
“덴마크에서 1980~2005년 출산 아동을 조사했더니 임신 3개월 안에 특정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자폐아 출산 위험이 세 배 높다고 나타났다. 뇌 문제인 자폐가 감염이란 면역 문제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 있다는 말이다.”
장내 세균을 바꾸면 자폐아 출산 위험을 줄일 수 있겠다.
“남편과 함께 자폐아를 출산한 여성과 다른 여성의 장내 세균이 어떻게 다른지 추적하고 있다. 시료를 받아 분석하느라 시간이 걸린다. 유익한 장내 세균이 무엇인지 알면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몸에 좋은 세균)로 자폐아 출산을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학회에서 인터류킨17이 자폐 치료제가 될 수 있다는 상반된 결과를 발표했다.
“자폐 아동이 아파서 열이 나면 갑자기 부모와 눈을 맞추고 말을 하는 등 자폐 증상이 완화되는 모습을 보인다. 생쥐에게 세균 감염으로 열이 나는 상황을 구현했더니 이번에는 인터류킨17이 자폐 증상을 완화하는 것을 확인했다. 같은 면역 단백질이 시기에 따라 다른 역할을 하는 것이다.”
면역 단백질이 뇌와 대화해 사회적 행동을 변화시킨다고 했다.
“감기에 걸리면 밖에 나가기 싫어진다. 피로해서 그렇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면역계가 뇌와 대화하는 적극적인 과정이라고 본다. 아프면 면역계가 사회적 행동을 줄여 추가 감염을 막는 셈이다. 수컷 쥐가 세균에 감염된 암컷을 만나면 뇌에서 짝짓기를 억제하는 호르몬 수용체가 작동한다. 수컷 쥐가 건강하지 못한 자손을 낳는 상황을 회피하는 것이다. 역시 면역계가 사회적 행동을 변화시킨 예다.”
내성적 소녀에서 세계적 과학자로 성장
남편과 다른 대학에서 연구하고 있다. 아예 연구실을 합치면 좋지 않나.
“남편은 늘 나와 점심을 같이하고 싶다고 한다. 나는 아니다(웃음). 남편은 부부가 같이 연구해도 자신은 면역학자로, 나는 뇌신경과학자로 정체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사고의 다양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중학교 때 미국으로 갔다고 들었다. 적응하기 힘들었겠다.
“이민했을 때가 딱 사춘기였던 것 같다. 성격도 내성적이고 언어도 통하지 않아 힘들었다. 그래서 혼자서 확실한 답을 얻을 수 있는 과학과 수학에 집중했다. 물론 지금은 성격이 많이 바뀌었다. 실험실은 혼자 운영하지 못하기 때문에 계속 사람들을 만나고 대화하고 발표해야 한다. ”
한국 뇌신경과학 수준은 어떤가.
“이번에 학회에서 만난 미국 과학자들이 한국 뇌과학자들을 높게 평가했다. 내 실험실에도 한국에서 온 박사들이 있는데 모두 뛰어나다.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한국 과학이 더 발전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에선 어릴 때부터 의사가 되려고 공부하는 학생이 많다고 들었다. 훌륭한 인재가 의사가 되는 것도 좋지만 그만큼 기초과학 하는 사람도 많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기초과학을 해도 멋지고 돈도 잘 번다는 인식을 심어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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