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칼럼] 부채 많은 국가들 채무 구조조정 간소화 프로세스 구축 시급

앤 크루거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 2023. 10. 17.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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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빈곤 국가들 사이에서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가 확산하고 있는 가운데, 이들 국가에 대한 채무 경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에 따르면 9월 5일(이하 현지시각)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은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아프리카 기후 정상회의(ACS23)’에서 글로벌 부채 탕감 협정 체결을 촉구했다. 세계 기후 위기에 대응해야 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이를 위한 아프리카 국가들의 재정이 부족하다는 이유에서다. 루토 대통령이 제시한 방안은 채무국의 이자 상환에 10년간의 ‘유예 기간’을 부여하고, 부채 상환에 할당된 자금을 재생에너지 투자로 전환하는 것이었다. 루토 대통령은 “부채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기후 문제도 해결할 수 없다”며 “국가 채무불이행이 발생하기 전에 이를 예방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앞서 세계은행(WB)은 지난해 12월 6일 발간한 국제부채보고서에서 “금리 인상과 세계 성장 둔화로 여러 국가가 부채 위기에 빠질 위험이 있다”며 “가장 가난한 국가의 60%가 이미 채무를 불이행하거나 그럴 위험이 크다”고 경고한 바 있다. 하지만 디폴트 위기 국가들의 부채 재조정과 관련한 합의는 난항을 겪고 있다. 서방 국가들은 그 배경에 개발도상국 대상 세계 최대 채권국인 중국이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7월 18일 이뤄진 G20(주요 20개국) 개발도상국 부채 경감 문제 관련 회의에서는 중국이 채무국에 대해 같은 재조정 방식을 두루 적용하는 데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AP통신은 지난 5월 중국이 ① 일대일로(一带一路, 육·해상 실크로드)를 앞세워 파키스탄, 케냐, 잠비아, 라오스 등 12개 빈곤국에 막대한 자금을 지원하며 ‘부채의 함정’에 빠트리고 있다고 진단하기도 했다.이에 대해 필자는 “개발도상국의 지속적인 경제 혼란을 막기 위해 부채 구조조정 프로세스를 간소화하는 프레임워크를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러 국가의 디폴트 위기가 현실화한다면, 잠재적으로 글로벌 부채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윌리엄 루토 케냐 대통령이 9월 6일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아프리카 기후 정상회의(ACS23)’에서 연설하고 있다. 루토 대통령은 전날 회의에서 아프리카 빈곤 국가에 대한 글로벌 채무 경감을 요구했다. 사진 블룸버그

부채 형태의 국제 자본 흐름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 것은 지난 50년 동안 개발 분야에서 이룬 가장 큰 성과 중 하나였다. 국제 자본은 개발도상국 경제에 중추적인 역할을 해왔지만, 부채는 양날의 검이다. 신중하게 사용하면 높은 수익을 창출하고 국내총생산(GDP) 성장을 촉진하며 채무국의 복지를 개선할 수 있다. 그러나 상환 능력이 함께 증가하지 않는 상황에서 부채가 누적되고 채무 상환 부담이 증가하면 그 결과는 재앙적일 수 있다.

앤 크루거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교수현 스탠퍼드대 국제개발센터 선임연구원, 전 IMF 수석 부총재

예를 들어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 기간에 많은 국가는 공중보건 지출 증가, 경제활동 위축으로 인한 세수 감소 등으로 재정 수요가 급격히 증가하는 어려움을 겪었다. 부채가 많은 국가들은 디폴트 위기에 가까워졌고, 이전까지 공공 재정이 안정적이었던 국가들조차 부채 부담이 급증하는 위험한 상황을 경험했다.

부채가 많고, 계속 증가한다면 예측하지 못한 위기가 나타날 수 있다. 많은 국가의 정부가 부채를 줄이는 조치를 취하는 등 위기를 막기 위해 개혁에 나서지만, 일부 국가는 이러한 조정이 의미 없을 정도로 부채 상환 비용이 크다. 통상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회의적인 민간 채권자들은 국채를 헐값에 매각하고 신용 연장을 거부한다. 이를 타개하지 못하고 정부가 채무를 불이행하면 해당 국가는 자본시장에서 퇴출된다. 일반적으로 해당 국가가 부채를 재조정하고 신용도를 회복할 때까지 경제 위기는 지속된다.

민간 기업은 채무를 불이행할 경우 파산 절차에 따라 부채 상각 범위와 기업의 잔여 자산 배분이 결정되지만, 국채는 구조조정과 관련해 보편적으로 알려진 법적 해결 방안이 없다. 모든 것이 채무국 정부와 채권자 간의 자발적인 합의에 달려 있다.

지난 몇 년 동안 수십 개의 저소득 및 중산층 국가가 디폴트 위기에 직면하면서 부채 탕감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예를 들어, 케냐 나이로비에서 열린 제1회 아프리카 기후 정상회의에서 루토 케냐 대통령은 개발도상국들이 부채 상환에 할당된 자금을 재생에너지 투자로 전환하도록 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이런 제안에는 심각한 오류가 있다. 그것은 일부 국가의 부채가 본질적으로 지속 불가능하다는 사실이다. 부채가 갑자기 탕감되더라도 이들 정부는 환경 사업에 자금을 조달하는 데 필요한 자원이 부족할 것이다. 게다가 합의된 구조조정 계획이 없다면, 생산과 소비에 필요한 상품 수입도 심각하게 제한될 것이다. 이는 생산 능력의 활용 감소, 경기 침체로 이어질 것이다.

역사적으로 채무 재조정 협상은 오래 걸리는 임시 방편적인 과정이었다. 일반적으로 국제통화기금(IMF)은 채무국과 협력해 정책 변경과 채무 조정 등을 평가한다. ② 파리클럽을 통해 협력하는 채권자들의 경우 민간 대출 기관과 협의해 적절한 구조조정 전략을 결정한다.

하지만 오늘날의 부채 환경은 훨씬 더 큰 과제를 떠안고 있다. 구조조정 합의에 도달하려면 모든 채권자가 동일한 삭감률을 적용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일부 채권자는 전액 상환을 받지만, 다른 채권자는 상당한 상각을 감내해야 한다. 채권자들은 분명 이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지난 20년 동안 주요 채권국으로 부상한 중국은 파리클럽 가입을 거부했다. 중국 정부는 다른 채권국들과 같은 삭감 대신 전액 상환을 주장하고 있으며, 이는 중국이 부당한 특혜를 받고 개발도상국의 채무 상환 어려움이 악화되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관련국들이 합의에 실패하면서 구조조정 절차가 지연되고 있다. 특히 스리랑카와 잠비아 같은 국가는 IMF와 자국 정책 개혁에 합의한 후에도 부채 위기 해결에 있어 불필요한 지연을 겪었다.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고통을 방지하기 위해 국제사회는 채권자들 간에 적시에 공정한 부담 분담을 보장하는 절차를 수립해야 한다.

개발도상국의 이러한 지속적인 경제 혼란은 새로운 부채 구조조정 프레임워크를 하루빨리 구축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세계은행은 “최근 저소득 국가의 60% 이상이 막대한 부채를 지고 있으며 채무불이행 위험이 높다”고 추정했다. 또한 이집트, 요르단, 레바논, 파키스탄, 튀니지 등 많은 중간 소득 국가들도 심각한 재정 및 부채 문제에 직면해 있다.

여러 국가가 부채 상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면 국제 채권자들은 부채가 많은 다른 국가에 대한 자금 지원을 꺼리게 되고, 이는 잠재적으로 글로벌 부채 위기를 촉발할 수 있다. 이러한 시나리오는 저소득 및 중간 소득 국가뿐 아니라 세계경제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구조조정 프로세스를 간소화하고 신속하게 진행하는 것이 나쁜 상황을 더욱 악화시키는 것을 막을 수 있다.

ⓒ프로젝트신디케이트

Tip

① 중국 주도의 ‘신(新)실크로드 전략 구상’으로, 중국과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까지 이어지는 경제 벨트를 지칭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취임 첫해인 2013년 9월 처음 제시해 시 주석의 트레이드 마크 프로젝트로 통한다. 중국은 전 세계 일대일로 참여국들과 경제, 무역 협력을 확대해 지정학적 영향력을 키우겠다는 목적이 있다.

② 1956년 설립된 세계 22개 채권국의 비공식 그룹이다.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개발도상국을 지원하는 것이 목적으로, 채무국이 공적 채무를 정상적으로 상환할 수 없는 경우 재조정을 논의한다. 미국·프랑스·영국 등 선진국이 참여하고 있으며 아시아권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회원국이다. 파리클럽 회원국은 해외에 빌려준 자금 규모와 채무 조건 등을 의무적으로 공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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