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국의 심심(心心)파적 <45>] ‘기쁨과 슬픔, 뿌듯함과 두려움이 요동친다!’ 혼주(婚主)의 심리학

김진국 2023. 10. 17. 10:1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사진 셔터스톡

나는 지난 1991년 11월, 만 26세의 나이로 초등학교 때 만난 동갑내기 아내와 결혼했다. 아마도 대학 재학 중에 사고(?)를 쳐서 결혼한 몇몇 친구를 제외하고,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서 결혼한 것으로 치면 친구 중에서 내가 제일 빨랐을 것이다. 그때 우리 부모님이나 장인·장모님은 혼주로서 어떤 기분이었을지 무척 궁금하다.

이렇게 30여 년의 세월이 흘러 1993년생인 내 아들이 지난 8월에 결혼했다. 그저 어리게만 보였던 아들이 군 복무를 마치고 대학을 졸업하고, 배필을 만나 결혼을 하기까지의 30년 세월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결혼식을 전후하여 온갖 상념이 교차했다.

김진국문화평론가, 현 고려대 민족문화연구원 교수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고인을 추모하고 애도하는 상례를 주관하는 사람을 상주(喪主)라고 한다. 마찬가지로 혼사를 주관하고 주재하는 사람은 혼주(婚主)라 한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새로 짝을 맞는 신랑·신부이지만, 정작 그 혼례의 주인은 신랑과 신부의 부모님인 것이다.

결혼식의 주인공인 아들을 여의는 혼주로서의 우리 부부의 마음은 어떠했나 차분히 복기해 본다. 신랑·신부도 여러 감정이 섞이겠지만, 새로운 배필과 백년가약을 맺는다는 기쁨이 다른 감정을 압도할 것이다. 하지만 결혼식을 앞두고 마음의 널을 뛰는 혼주의 감정의 행로(行路)는 신랑·신부의 그것과 다소 거리가 있지 싶다.

결혼식 당일 오전 10시. 우리 부부는 오후 2시에 있을 결혼식의 혼주들을 위해 화장을 해주는 분장실로 향했다. 같은 혼주라 해도 남성들의 화장은 30분 정도면 끝이 난다. 여성들의 경우에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분장사에게 연예인처럼 너무 화장을 진하게 하지 말고, 가볍게 해달라고 부탁하고 나는 눈을 감았다. 감은 눈 저 너머에서도 여러 가지 생각이 쉴 새 없이 어지러이 뒤섞였다.

결혼식 1시간 전부터 하객들을 맞이했다. 신부는 이미 그전에 신부 화장을 마치고 신부대기실에 앉아 신랑과 함께 하객들의 축하 인사를 받고 기념 촬영을 하기 바빴다. 신랑·신부는 몰려드는 하객들 때문에 안 그래도 기쁨에 들뜬 마음을 추스르기는 쉽지 않아 보였다.

혼주로서 우리 부부 역시 기뻤다. 진화심리학의 핵심 키워드는 생존과 번식이다. 동물들도 마찬가지이지만 우리 인류는 자신들의 생존이 확보된 연후에는 번식, 즉 자식을 낳고 기르는 일에 집중한다. 그렇게 낳아 기른 자식들이 결혼한다는 것은 이제 3대째로 이어지는 생존과 번식의 전략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마음속 깊이 존경하는 은사인 E 총장은 친히 내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고 이런 메시지를 남겼다. “미남 아들 결혼 축하드립니다. 며느리도 착하고 건강하게 보이더군요. 손자 많이 거느릴 것 같습니다. 재미있는 김 교수 결혼식사에선 진하게 몸에 스며있는 아내 사랑을 느꼈습니다.”

진화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버스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으로 맺어진 결혼이라는 이름의 동맹을 평생 유지하는 것이야말로 인간 짝짓기 전략의 궁극적인 승리다.” 특히나 인간이라는 종은 자신의 새끼를 낳기만 할 뿐, 공동 부양의 책임을 다하지 않고 떠나버리는 대다수 다른 종의 수컷들과는 달리, 부부가 금슬 좋게 함께 가정을 꾸리기에 결혼이 더욱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다.

어린 자식이 성장해 인생의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것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한없이 기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결혼식은 온 가족과 친지가 함께 모이는 집안의 큰잔치다. 신랑·신부도 마찬가지겠지만, 혼주가 혼인 잔치에 신경을 쓰는 것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인 것이다.

고사리 같은 손을 가진 어린아이였던 아들딸이 성인이 되어 자신의 파트너를 만나 새로운 생을 시작하는 것을 바라보는 부모의 뿌듯한 마음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잘 모를 것이다. 가수 최백호는 자작곡 ‘애비’에서 이렇게 노래한다. “아장아장 걸음마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새 자라 내 곁을 떠난다니/ 강처럼 흘러버린 그 세월들이/ 이 애비 가슴속에 남아있구나”

그러나 그뿐일까? 아니다. 이런 뿌듯함 뒤에는 뭔가 설명하기 힘든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다. 아닌 말로 신랑·신부는 사랑에 눈이 멀어 결혼하는 것이지만, 혼주의 마음은 좀 다르다. 아직 인생의 경험도 적고, 세상의 풍파를 겪어보지 못한 어린 자식들이 일생의 반려자가 될 파트너를 제대로 판단하고 결정한 것인지 충분한 확신을 갖지는 못한다. 확고한 신뢰가 뒷받침되지 않는 것에 비례해서 막연한 두려움이 생길 수밖에 없다.

혼주의 마음에는 슬픔도 있다. 이제껏 수십 년을 함께해온 세월을 뒤로하고 이제는 내 집을 나가 독립된 가정을 꾸리면서 자주 볼 수 없다는 안타까움은 아쉬움을 넘어 슬픔으로 이어진다. 아마도 이런 감정의 이면에는 인류학적으로 족외혼(族外婚)의 풍습에 대한 기억이 인류의 유전자 속에 새겨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족외혼은 고대사회에서 같은 씨족이나 부족에서 결혼하는 것을 금하고, 서로 다른 집단의 사람들끼리만 혼인하게 하는 풍습을 말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동성동본의 결혼을 근친상간에 준해 강하게 금지했던 것도 이러한 족외혼 풍습을 대표한다. 이렇게 족외혼을 통해 결혼하게 되면 여성은 다른 씨족이나 부족, 가문으로 시집을 가버리고 문자 그대로 출가외인(出嫁外人)이 되어버린다.

결혼을 하여 이방인이나 다름없게 된 딸은 친정으로 다니러 오는 일조차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므로 딸을 시집보내는 부모는 다시는 못 볼지도 모르는 영원한 이별이라도 하는 심정이었을 것이다. 신부의 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고, 유교적 가부장제 사회에서 남성다움을 강요당해야 했던 아버지들조차도 딸을 시집보낼 때는 눈물을 감추기 어려웠던 것이다.

이런 감정의 유전자는 끈질기게 인류의 정신 속에 각인되어 있다. 아들은 결혼하고 나면 처가의 자식이 되고, 딸은 결혼하면 아들을 하나 더 데리고 들어온다는 우스갯소리가 보편화된 지금도 딸을 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더 애달픈 것은 바로 이런 연유에서다. 비슷한 상황이라면 아들도 마찬가지다.

나의 멘토이기도 한 미국의 K 목사는 6척 장신에 우람한 체격을 가진 분이다. 그의 아들은 20세인가에 대학생 신분으로 백인 여성과 결혼했다. 어린 아들이 서부 워싱턴주에서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집이 있는 미주리주로 떠나던 날이었다. 공항에서 마지막 포옹을 하던 K 목사는 끝내 울음을 참지 못하고 체면 불고하고, 공항이 떠나가도록 대성통곡을 했다고 한다. 인류학적으로 보면 K 목사는 확실한 족외혼에 만 리 길 떨어진 곳으로 장가가는 아들에 대한 기약 없는 이별의 슬픔을 극적으로 표출한 것이다. 지금은 아들 내외와 같이 살고 있는데, 만일 그때 아들과 같이 이렇게 매일 얼굴을 맞대고 살 줄 알았더라면, 그렇게 목 놓아 울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렇듯 아들딸을 결혼시킨 혼주의 마음속에서는 기쁨과 슬픔이 널을 뛰고, 뿌듯함과 두려움이 격렬하게 요동친다. 그럼에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신랑·신부는 더 이상의 누군가의 아들딸이 아니라 자신들 둘만의 이름으로 독립한 새로운 성(城)의 주인이라는 것이다. 이 새로운 성주(城主)들을 옛 성주가 부모라는 이름으로 속박해서는 안 되고, 어엿한 젊은 성주로 대접해야 한다. 아쉬움과 두려움은 잠시 제쳐 두시라. 특히 요즘처럼 쿨한 세상에서는 부모와 결혼한 자식 간의 관계도 쿨해야 하지 않을까 해서 하는 말이다.

Copyright © 이코노미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타임톡beta

해당 기사의 타임톡 서비스는
언론사 정책에 따라 제공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