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소환법 아닌 주민소환 방해법” 악마는 디테일에…

김양진 기자 2023. 10. 17. 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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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이야기]주민소환 125번 시도에 성공은 두 번뿐… 제주·경남·삼척·하남의 주역들이 말하는 ‘뜨거운 추억’
2007년 하남시장 주민소환운동의 주역들을 2023년 9월27일 오후 경기 하남시 유니온타워에서 만났다. 왼쪽부터 홍미라 당시 시의원, 조중구 당시 운동본부 대표, 이해상 당시 운동본부 한국아파트 대표. 김양진 기자

4~5년에 한 번 투표하고 넋 놓고 기다리는 것 말곤 도리가 없다. 받들겠다더니 군림하려 한다. ‘기다려라, 투표로 혼내주리라’ 다짐하지만 허전하다. 국민의 당연한 주권 행사는 이런 식으로 지연되고, 잊힌다. 천부당만부당한 일이다. 선출된 대표자(현행법은 지방정부의 단체장·의원으로 제한)를 국민이 직접 임기 도중 자리에서 끌어낼 수 있도록 하는 ‘주민소환제’는 이런 고민에서 고안됐다.

미국(1903년), 일본(1947년) 등 국외에선 일찌감치 도입됐고, 2007년 5월 드디어 우리나라에서도 주민소환법이 발효됐다. 하지만 여전히 법조문 곳곳에 ‘합법적인 역성혁명’에 대한 못마땅한 시각이 반영돼 있다. 2022년까지 125번 시도가 있었지만, 법이 쳐놓은 ‘방해공작’을 뚫고 실제 소환에 성공한 것은 두 번이 전부다. 2007년 경기 하남, 2009년 제주, 2013년 강원 삼척, 2016년 경남에서, 비록 완전히 성공하진 못했어도 가슴 뜨겁던 당시를 자랑스럽게 돌이키는 주역들을 만났다.

마이크 못 쓰고, 선관위는 교육도 안 해

2023년 9월26일 오후 경남 창원 화물연대 경남본부 사무실에서 만난 강성진 전 ‘경남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이 2015∼16년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김양진 기자

“주민소환법이 아니에요, 주민소환 방해법이지.”

2023년 9월26일 오후 경남 창원 화물연대 경남본부 사무실에서 만난 강성진 당시 ‘홍준표 경남도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 집행위원장(현 화물연대 경남본부 사무국장)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무상급식 중단, 공공의료기관인 진주의료원 폐원 등 독단적인 도정 운영을 이유로 2015년 7월16일 시작된 ‘홍준표 경남도지사 주민소환 운동’은 주민소환제 도입 이후 가장 많은 서명(중앙선거관리위원회 인정 유효표 26만2637명)을 받아냈다. 총유권자 10%(기초단체장은 15%, 지방의원은 20%)의 서명을 받아야 다음 단계인 ‘주민투표’ 단계에 이를 수 있다. 하지만 0.31%포인트(8395명) 부족했다. 아슬아슬하게 불발에 그쳤다. 경남도지사 소환운동은 주민소환제의 다양한 문제점을 적나라하게 노출했다.

“선관위는 처음에 주소를 적는 칸에 ‘도로명주소’를 적으라고 했다가, 현장에서 서명을 받아보니 다들 ‘잘 모른다’고 해서 항의했더니 나중에 ‘지번주소’도 된다고 하더라고요. 가장 고약한 게 서명용지 한 장에 같은 읍·면·동만 서명 받도록 하는 거예요. 경상남도에 314개 읍·면·동이 있습니다. 도 단위 행사를 찾아다니며 서명 받았는데, 서명용지를 그만큼 들고 다니라는 거죠. 의사 표명만 확인하면 되지 읍·면·동 구분이 왜 필요한가요? 서명용지를 찾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요. 선관위가 제때 용지를 제공하지 않았어요. 여러 번 그 문제로 싸웠어요.”

강 전 집행위원장이 한숨을 내쉬었다. ‘읍·면·동 구분’ 문제는 선관위가 ‘소환청구인 서명부는 읍·면·동을 구분해 작성해야 한다’는 주민소환법 시행령 제6조를 교조적으로 적용해 생긴 문제다. 읍·면·동이 다른 서명을 같은 서명부에 받으면 무효다. 이 때문에 주민소환의 의의에 대한 설명보다, 수임자(선관위가 인정한 서명요청자)에게 서명 요령을 교육하는 것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선관위는 따로 수임자 교육을 하지 않는다. 강 전 집행위원장은 “선관위는 아무것도 안 합니다. A4용지 한 장짜리 교육자료 하나 주고 ‘알아서 교육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라고 돌이켰다.

그러면서도 소환운동 방식은 옴짝달싹 못하게 꽁꽁 묶어놓았다. 소환운동을 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할 텐데, 마이크를 써도 안 되고, 온라인에 글을 올려도 안 된다는 것이 법전에 버젓이 적혀 있다. 오직 ‘소환청구인 서명부’를 통해 육성으로만(주민소환법 제10조) 설명할 수 있다. 법 시행 뒤 이런 문제가 제기됐지만, 국회는 법령 개정에 소극적이다.

주민소환 서명에 대한 선관위 심사 기간도 따로 정해져 있지 않다. 선관위가 원하면 얼마든지 늘릴 수 있다. ‘서명→ 투표운동→ 투표’로 이어지면서 여론이 모인다는 점을 고려하면 주민 처지에선 김빠지는 일이다. 실제 경남도지사 주민소환 청구에서 주민들은 서명을 끝내고 서명부를 2015년 11월30일 선관위에 제출했다. 하지만 심사를 마치고 ‘각하’ 결정을 한 것은 10개월가량 지난 2016년 9월26일이다. 이에 대해 선관위 관계자는 “2016년 국회의원선거가 있어 불가피하게 심사가 길어졌다”고 설명했다.

“찬성하는 젊은이는 생각이 짧은 사람”

그러면서도 기재 오류 등의 이유로 무효가 된 서명을 고칠 수 있는 ‘보정 기간’은 15일로 묶어뒀다. 완전 엉터리(원천무효)도 3만5400건 있었지만, 선관위는 경남도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가 받은 전체 35만7801건 가운데, 보정 대상이 8만1028건이라고 판단했다. 주소 기재 오류 등 단순 실수로, 보정하면 ‘유효’로 인정되는 서명이었다.

“이미 10개월이 지났고, 8만여 명이 경남 지역 전역에 흩어져 있잖아요. 일일이 분류하는 데만 열흘이 걸렸어요. △‘서명’에 이름을 정자로 안 쓰고 흘려쓴 경우 △주소를 끝까지 안 쓴 경우 △호적 나이를 안 쓰고 실제 나이를 쓴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닷새를 정말 밤낮으로 뛰어다녔는데, 많이 재인정받았지만 결과적으로 8천 명이 부족했어요. 홍준표 지사 쪽은 맞불로 경남교육감을 주민소환한다고 하며 별일을 다 벌였지만, 분위기는 정말 좋았어요. 무상급식으로 이미 앞에 1년 넘게 싸워와서, 서로 서명하겠다는 분위기였죠. 주민소환 일을 거들겠다고 생업을 제쳐두고 찾아오는 학부모가 많았어요. 그런 열기를 생각하면 투표까지 못 가보고 각하된 게 참…. 만약 지금 다시 한다면 제대로 잘할 수 있을 거 같은데….”(강성진 전 집행위원장)

“예측을 못했죠, 이렇게 주도면밀하게 방해공작을 할 줄은. 그게 가장 큰 실수였죠.”

2023년 9월25일 서울 용산구 인권연대 사무실에서 만난 고유기 전 ‘김태환 제주도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 집행위원장(현 인권연대 정책실장)이 말했다. 김태환 지사 주민소환운동은 독단적인 제주 해군기지 유치 발표를 계기로 2009년 5월13일 시작됐다. 서명에만 7만7367명(총유권자의 18.6%)이 참여했다. 청구 요건인 유권자 10%의 서명을 훌쩍 넘게 받아 관심을 끌었고, 서명 요건이 충족돼 김 지사의 직무는 정지됐다. 하지만 같은 해 8월26일 실제 투표소를 찾은 주민은 4만6076명(11.0%)에 불과했다. ‘서명이 곧 주민소환 찬성 의사’로 받아들여지는 상황에서 무슨 일이 있었을까.

당시 주민소환운동본부 자료를 보면 주민소환투표와 관련해 행정조직이 동원된 노골적인 투표 방해 압력이 있었다. 당시 김태환 지사가 임명한 강택상 제주시장은 “주민소환에 찬성하는 제주 젊은이는 생각이 짧은 사람”(2009년 5월16일)이라고 공개 석상에서 발언했다. 제주도는 ‘소환투표를 하면 19억여원이 소요된다’(5월19일)는 보도자료를 배포됐다. ‘주민소환은 돈 낭비’라는 인식을 자극하려는 의도로 지적됐다. 제주 지역 재향군인회, 상이군경회 등 관변단체들은 ‘소환 반대’ 기자회견(6월4일)을 열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은 “국책사업 추진하는 도지사를 주민소환 하는 건 부적절하다”고 지원사격(6월2일)을 했다. <조선일보> 등 보수언론도 “걸핏하면 단체장 직무가 정지돼선 안 된다”(6월1일 사설)고 가세했다.

‘마을 공화국’ 제주서 이장이 서서 말려

주민소환투표 당일 주민소환운동에 접수된 부정투표 신고만 41건에 이른다.

‘귀덕1리 노인회장은 투표 참관인을 하면서 유권자를 돌려보냈다. 서귀포시 한 투표소에 나온 한 부녀회장은 “투표율이 (높게) 나오면 동장님이 불이익 받는다”며 불참을 종용했다. 신례리 투표소에서 마을 수석개발위원 등이 나무 그늘에 서서 투표 참여자에게 불참을 강요했다. 한원리 이장 등 마을 임원진이 투표소 앞에서 투표하러 온 주민들에게 면박을 줬다. 이도2동에 투표소를 문의하자 투표하지 말라고 했다. 농협 직원들이 투표에 참여하자 제주시장이 농협 본부장에게 전화로 ‘심각한 유감이다’라고 말했다.(제주도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 자료집 부정투표 신고 내용 중)

고유기 전 집행위원장은 당시를 떠올렸다. “너무 노골적으로 투표를 방해하니까 내부적으로 투표 중단을 선언하자는 얘기도 나왔어요. 거의 모든 투표소 앞에 도지사 영향권 아래 있는 이장 등이 서 있었다고 보면 됩니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지만 당시 제주는 ‘마을 공화국’이라고 할 정도로 이장의 영향력이 막강했습니다. 이장이 앞에 서 있다? 정말 굉장한 신념이 있는 사람만 투표할 수 있는 상황이었어요.”

“투표율이 33.3%가 안 되면 개표도 안 하니까 피청구인(단체장·의원)은 투표율만 낮추면 된다고 보는 거예요. 득표율 10%대로 당선되는 사람도 많은데 말이 안 되죠. 지금처럼 33.3% 기준을 유지하면 앞으로도 주민소환제도는 주민소환을 요구하고 이를 방어하면서 토론하는 식이 아니라, 투표 참여냐 불참이냐는 왜곡된 방식으로 운영될 수밖에 없어요.”(고유기 전 집행위원장)
2009년 8월24일 직무가 정지된 당시 김태환 제주도지사가 <한라일보> 1면에 낸 광고. 얼핏 김대중 대통령을 추모하는 내용 같지만 아랫부분에 주민소환 투표 불참을 호소하는 ‘진짜 메시지’를 담았다.

김태환 지사는 공개연설과 대담, 언론사 초청 토론회, 선관위 주최 토론회를 모두 거부했다. 유일한 메시지는 ‘투표 불참’이었는데,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2009년 8월18일)도 소재로 삼았다. 김 전 대통령 얼굴을 앞세워 지역 신문 1면에 ‘투표 불참도 유권자의 권리로 보장된 것이 주민소환제도입니다’라는 광고를 내보내(8월24일) 논란이 됐다. 2006년 선거에서 김 전 지사는 전체 유권자 대비 득표율은 28.5%(11만7244표)로 ‘개표 기준 33.3%’에 못 미친다.

“서명과 투표 참여 공무원 색출해 한직 보내”

선관위도 이런 상황을 잘 안다. 2009년 제주선관위는 주민소환투표 이후 ‘문제점 및 개선방안’ 문건에서 “소환투표 대상자가 소속 직원을 이용해 소환투표 대상자의 업적을 홍보하는 행위를 직간접적으로 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를 제한하는 규정·벌칙 조항이 없다. 투표는 곧 소환 찬성으로 간주하는 분위기가 형성돼 투표의 비밀 참여 문제와 주민투표 참여 제약의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투표율이 소환투표 개표 여부 결정에 결정적인 요인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는 공직자를 소환하려면 직전 선거 투표 수의 12%만 있으면 된다. 투표 불참 운동은 위험부담이 크다. ‘투표 참여 후 반대’를 호소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2016년 6월 중앙선관위는 국회에 의견서를 냈다.

“‘투표율 33.3% 이상 개표 규정’을 25%로 완화할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합의제 기관의 의결정족수가 의결권자 과반수 출석에 과반수 찬성이므로 25% 찬성 의사만으로도 해당 기관 의사를 결정할 수 있다. 주민소환투표의 경우 투표 참여자는 곧 소환 찬성자로 추정할 수 있는 만큼 25% 완화해도 문제가 없다.”

이를 포함해, 주민소환투표권자 연령을 19살에서 18살로 낮추고 전자서명으로 받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주민소환법 개정안’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다만 제21대 국회 임기 내(2024년 5월)에 처리될지는 미지수다. 하승수 변호사는 “국회의원들이 주민소환법 완화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고 소극적이다. 제21대 국회가 끝나가는데, 법 통과 움직임이 안 보인다”고 말했다.

주민소환 대상이 된 단체장이 서명한 주민을 대상으로 ‘복수혈전’을 벌이기도 한다. 주민소환 서명인 명부를 공개해 열람할 수 있도록 한 법 규정 때문이다. 지난 16년간 ‘실전’을 통해 ‘주민소환 서명은 투표 요구일 뿐’이라는 ‘이론’이 깨졌지만, 서명부 공개를 고집해 헌법상 ‘비밀선거 원칙’을 훼손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광우 전 ‘김대수 삼척시장 주민소환운동’ 기획홍보실장(현 삼척시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정말 심각했죠. 수임인들이 서명운동을 하러 다니면 인맥을 이용해 압력을 가해 사퇴하도록 하고요. 서명부를 일일이 적어가서 명부에 이름 올린 사람들 이름 빼라고 압력 넣고요. 그렇게 적어간 사람들이 전부 공무원이었어요. 이게 김대수 시장과 관련 없는 일이었을까요? 행정조직을 동원한 거죠. 그리고 주민소환투표가 끝났으면 찬성했든 반대했든 그걸로 끝이어야 하는데, 돌아온 시장 권력은 이제 서명에 참여한 공무원, 투표장에 간 공무원을 색출해서 한직에 보내 불이익을 주더라고요. 무서워서 공무원들이 어떻게 주민투표에 참여하겠습니까?”

김대수 시장 주민소환운동은 독단적인 핵발전소 유치 추진으로 2012년 6월28일 시작됐다. 결국 ‘서명’ 문턱은 넘긴 했지만 이 과정에서 ‘주민소환반대대책위’는 사실확인서 2637건, 서명철회요구서 1603건을 받아와 제출하는 등 공개된 서명부를 이용해 주민소환을 방해했다. 이런 방해에도 그해 10월31일 투표율은 25.9%(부결)였다. 선관위가 제안한 새 기준보다 높다.

“주민소환법은 직접민주주의를 보장하는 중요한 법이잖아요. 근데 이 법이 잘못 만들어져서 엉망으로 돌아간다는 것을 국회의원들도 알아요. 근데 안 고칩니다. 어차피 피청구인들도 자기가 공천해줘서 시킨 사람이니까 소환되면 (국회의원) 자신이 정치적으로 타격을 입는다고 생각하는 거예요.”(이광우 전 기획홍보실장)
조중구 전 하남시장주민소환운동본부 공동대표. 김양진 기자
이해상 전 하남시장주민소환운동본부 한국아파트 대표. 김양진 기자
홍미라 기후위기하남공동행동 상임대표. 2007년 주민소환운동 당시 시의원이었던 홍 대표는 “화장장 추진이 문제가 아니었어요. 권위적이고 독단적인 방식으로 정책을 추진하는 게 문제였어요. 그때 시의원 7명 중 4명이 한나라당이었거든요. 다른 당 의원들도 모르게, 아무런 사전 설득 없이 화장장 유치를 추진한다면서 의회에 던진 거예요. 의사결정이 일방적이고 주민 의견을 무시하는 게 핵심이죠”라고 설명했다.김양진 기자

첫 주민소환, 김황식 하남시장이 만든 FM

난장판이 돼버린 주민소환 현장은 이미 첫 사례인 2007년 김황식 하남시장 주민소환청구 때부터 예견됐다. 당시 김 시장의 대응은 이후 FM(필드매뉴얼)으로 자리잡았다. 2006년 10월 취임 4개월 된 김 시장이 경기 지역 광역화장장을 유치하겠다는 계획을 느닷없이 발표하면서 주민소환운동이 촉발됐다. 2007년 5월25일 주민소환법이 발효되고 곧바로 주민들은 김 시장과 같은 당인 한나라당(현 국민의힘) 시의원 3명에 대한 서명에 돌입해, 두 달 만에 3만5018명(전체 유권자의 33.3%)의 동의를 이끌어냈다. 결국 시의원 2명의 소환에 성공했다. 현재까지도 유일한 성공 사례다. 다만 김 시장과 또 다른 시의원 1명은 투표율 2.2%포인트 부족(31.1%)으로 간신히 소환을 면했다.

“고소·고발에 소송 건 게 어마어마했어요. 투표 당일엔 투표소 앞에 관변단체 사람들 다 서 있게 하고요. 그런 식으로 (피청구인이) 주민소환투표를 하지 말라는 지금의 홍보 전략도 그때 시작됐어요.” 2023년 9월27일 하남시 유니온타워에서 만난 조중구 당시 김황식 하남시장 주민소환운동본부 공동대표가 말했다. 같이 자리한 이해상 당시 운동본부 한국아파트 대표가 말했다.

“제가 998명 서명을 받았습니다. 호응이 대단했어요. 출퇴근 시간 때 아파트 입구에 자리잡고 있으면 서명을 한꺼번에 수십 명씩 받았어요. 그런데 김황식 시장 쪽은 한 사람이 1천 명 가까이 받는 게 말이 되냐며 필적이 동일하다 어찌한다 하면서 고발했어요. 경찰·선관위·검찰, 여섯 번 조사받으러 다녔어요. 전부 무혐의 받았죠. 그렇게 괴롭혔어요. 투표가 부결되고 복귀하자마자 복수도 시작됐어요. 투표율이 높았던 지역에 행정 단속을 강화해서 과태료를 무더기로 부과하는 식이었어요.”

“생업을 포기하다시피 하고 트집 잡는 공무원과 실랑이를 벌”(이해상 전 대표)였는데 법원 가처분 결정까지 내려졌다. “서명부에 주민소환 청구 사유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김 시장이 법원에 가처분 결정을 걸기도 했어요. 법원이 받아들여서 투표가 한 차례 연장됐어요. 그래도 금세 다시 2만7천여 명에게 서명 받아 결국 주민투표를 다시 만들어냈어요. 원래 투표일이 (2007년) 9월20일이었는데 12월12일이 된 거예요. 대통령선거 불과 닷새 전이었지요. 그것만 아니면 그때 김 시장도 틀림없이 소환됐을 겁니다.”(조중구 전 공동대표)

서명 단계부터 김 시장은 반격을 퍼부었다. 먼저 △법원에 서명활동금지 가처분신청 소송을 제기했다. “님비현상(혐오시설이 자기 지역에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현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불순한 의도”라고 했다. △“서명부에 하자 있다”며 주민소환투표 무효 가처분신청 소송도 제기했다. △소환청구인 대표 7명을 공무집행방해죄로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을 직무유기죄로 고발했다. “주민소환투표가 정치적으로 오남용되는데, 중앙선관위가 공정하게 관리하지 못한다”고 했다. 아울러 △헌법재판소에 주민소환법 헌법소원도 청구했다. “선거 패배 상대방이 주민소환제를 악용해 사회 혼란과 경제적 낭비를 초래하고 자치단체장의 소신 있는 행정계획을 막는다”고 했다. 그 뒤 주민소환 때마다 ‘불순한 의도’ ‘정치적 악용’ ‘경제적 낭비’ ‘소신 행정 차단’ 등의 구호가 되풀이되고 있다.

“정치인들 소환당할 수 있다 조심하게 돼”

결국 김황식 시장 등은 복귀했다. 소환운동은 실패했다? 그래도 얻은 게 많단다. 시의원 2명 축출로 ‘시장 동조파’가 시의회 소수로 전락하자 김황식 시장은 화장장을 재추진할 동력을 잃었고, 2010년 선거에서 공천받지 못했다. 2013년 김태환 지사는 제주도지사 불출마를 선언했다. 2014년 김대수 삼척시장은 낙선했고, 새로 당선된 김양수 시장은 중앙정부의 반대에도 주민투표를 했다. ‘원전 설치 반대 84.9%’라는 주민 의견을 모았고, 2019년 6월 ‘삼척 원전’은 백지화됐다. 다만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이후 자유한국당 대통령 후보로 선출(2017년)됐고, 2022년 대구시장에 당선됐다.

“주민소환운동을 한 사람들이 있어서 전국에 주민소환이 알려졌겠죠. 정치인들은 ‘주민소환을 당할 수 있겠구나’ 하면서 조심하는 면도 있을 겁니다. 이 제도의 문제점도 우리가 시도했으니까 발견한 거고요.”(이해상 전 대표)

하남(경기)·창원(경남)=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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