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보이그룹의 완성형 NCT 127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자신감과 저돌적 에너지가 넘친다.
다급하고 저돌적인 공기나 구체적인 증명 따위는 불필요하다는 자신감을 강화하기도 한다.
영화나 미술 등이 K팝 가사에 등장할 때가 있다.
K팝의 위상이나 음악 산업에서 K팝이 이뤄온 몇 가지 급진적이라고까지 할 만한 성취들을 생각하면 자신감을 표현하는 방법 역시 이제는 조금 달라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랩의 존재감이다. 곡은 '아이돌 래퍼'라는 흔한 편견을 거뜬히 넘어서는 기량을 입증해온 마크와 태용, 두 걸출한 래퍼가 선두에 서서 몰고 나간다. 이들은 거만과 멋이라는 2개 의자가 설치된 시소 위에서 거창한 언어를 동원하는 자신감의 표현을 빡빡하고도 탄력 있게 풀어낸다. 두 멤버의 연결부에서 플로를 비교적 간결하게 덜어낼 때면 마치 손을 마주치고 교대하는 장면을 연상하게 되기도 한다. 후렴의 외침들 사이로 삽입된 짤막한 멜로디들도 심플하다. 래핑이 워낙 강렬해서 더 그렇지만, 전개부의 보컬 멜로디는 대체로 분명하게 치고 나오기보다 매끈하게 흘러가는 인상을 남긴다.
그렇다고 적잖은 분량의 멜로디가 곁다리 역할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멜로디는 적절한 안정감과 굴곡을 통해 효과적으로 들어오고 빠지면서 곡의 뼈대를 견인한다. 특히 멤버에 따른 파트 배분은 절묘하다. 1절만 해도 살짝 일그러진 재현에서 야리야리한 해찬으로, 다시 풍성한 깊이감의 도영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실로 감탄스럽다. 해찬의 음색은 2절에서도 날카로운 래핑 끝에 살짝 끼어들며 흐름을 뒤흔든다. 이처럼 보컬 운용이 만들어내는 짜릿한 역동이 이 곡에서 멤버들의 매력적인 면면을 만끽하게 한다.
탄탄함 가득한 곡의 매력
가사는 전체적으로 '팩트를 체크하라, 나는 자신 있다'고 말하는데, 구체적 근거는 전혀 제시하지 않는다. 그것은 작사상의 허점이라기보다 선택이다. 비현실적으로 아찔하게 질주하는 발밑이 허공인 것 같은 감각을 더하기 때문이다. 다급하고 저돌적인 공기나 구체적인 증명 따위는 불필요하다는 자신감을 강화하기도 한다.그런데 그 탓이라고나 할까. 가사 속 몇 안 되는 고유명사가 더 귀에 박힌다. 루브르, 모나리자, 고흐 같은 이름들이다. 영화나 미술 등이 K팝 가사에 등장할 때가 있다. '영화 같다'나 '한 폭의 그림' 같은, 일상에서도 널리 쓰이는 표현들이다. 그런데 이런 표현들은 해당 분야가 비유 대상보다 일반적으로 우월하거나 더 예술적이라는 인식에 기대곤 한다. 특히 그것이 압도적으로 클래식한 이름들이라면 말이다. K팝의 위상이나 음악 산업에서 K팝이 이뤄온 몇 가지 급진적이라고까지 할 만한 성취들을 생각하면 자신감을 표현하는 방법 역시 이제는 조금 달라졌으면 하는 아쉬움이 없지 않다. 물론 이는 수사에 관한 언급으로, NCT 127이 고흐보다 훌륭하다는 주장이 아니다. 다만 아주 가까이 이 곡의 뮤직비디오에 경복궁 근정전이나 올림픽대교가 등장하는 것은 훨씬 과감하고 충격적이며 날카로운 선택이다.
그러나 그것이 곡의 탄탄함을 해치지는 않는다. 멤버들의 배치와 운용, 그리고 이를 소화하는 멤버들의 목소리가 마치 올림픽대교를 봉쇄한 뮤직비디오 장면처럼 물 샐 틈 없는 위압감을 주기 때문이다. 숨 가쁜 비트 속에서 9명의 단단한 벽이 거세게 몰아치는 경험은 K팝, 특히 보이그룹 산업이 꾸준히 지향해온 어떤 완성형을 보여준다.
미묘 대중음악평론가
Copyright © 주간동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