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도 반한 고품격 시계 끝판왕 파텍 필립
파텍 필립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시계 브랜드로 알려져 있다. 2023년 9월까지 경매에서 판매된 가장 비싼 시계 상위 10개 중 9개가 파텍 필립 제품이다. 2014년 소더비 경매에서는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기계식 시계로 평가받는 파텍 필립의 ‘헨리 그레이브스 슈퍼컴플리케이션’이 2400만 달러(한화 약 264억 원)에 거래되며 가장 비싼 경매가에 팔린 회중시계로 기록됐다. 2019년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자선 경매 행사 온리 워치(Only Watch)에서는 파텍 필립의 ‘그랜드마스터 차임’이 3100만 스위스 프랑(한화 약 360억 원)에 판매됐다. 지금까지 경매에서 이보다 높은 가격에 팔린 시계는 없다.
파텍 필립 시계는 하나를 제작하는 데 무려 1만여 개의 부품이 쓰이고 1500단계를 거쳐 완성된다. 매년 4만5000여 개만 생산돼 희소성도 있다. 파텍 필립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9세 등 유럽 왕가뿐만 아니라 교황과 달라이 라마(티베트 불교의 수장)도 사로잡았다. 저명한 사업가 록펠러,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파텍 필립을 즐겨 착용했다.
파텍은 차펙과 6년간 운영하던 '파텍, 차펙 앤 시'를 접었다. 필립은 제네바로 건너가 파텍과 계약을 체결하고 브랜드 '파텍, 필립 앤 시(Patek, Philippe & Cie)'를 론칭했다. 파텍, 필립 앤 시는 1851년 런던 만국박람회에서 가장 작은 회중시계를 선보였다. 빅토리아 여왕과 앨버트 왕자는 세계 최초의 키리스 시계에 감탄했다. 파텍, 필립 앤 시가 만든 시계는 1950년대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고, 경기침체를 겪는 미국에서도 큰 호평을 받으며 주목받았다.
이 시기 파텍, 필립 앤 시는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금메달을 받기도 했다. 1863년 파텍, 필립 앤 시 최초의 투르비용(중력에 의해 발생되는 오차를 줄이기 위해 기계식 시계에 포함되는 기계 장치) 회중시계가 공개됐다. 같은 해, 아드리앵 필립은 새로운 시계 발명품인 '슬리핑 스프링(과도한 수동 감김으로 인해 태엽의 파손을 방지하는 기술)'으로 특허를 받았다. 이 발명은 산업 전반에 걸쳐 파워 리저브 및 셀프 와인딩 칼리버(기계식 시계의 무브먼트(시계를 움직이는 부품집합체)) 설계에 영향을 미쳤다. 파텍, 필릭 앤 시는 1868년 헝가리의 코스코비츠(Koscowicz) 백작 부인을 위해 최초의 스위스 럭셔리 손목시계를 제작했다. 1876년 브랜드명이 '파텍 필립 앤 시(파텍 필립)'로 변경됐다.
기본 칼리버 20여 개 발명과 100개 넘는 특허
1877년 파텍이 6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외아들인 레옹 메이시스 빈센트 파텍은 사업에 참여하지 않고 평생 연금을 받는 조건으로 회사 운영 권한을 포기했다. 파텍의 빈자리는 장 아드리앵 필립의 사위 중 한 명인 조제프 앙투안 베나시 필립이 대신했는데, 그는 자신의 아이들이 파텍 필립의 적통임을 보여주기 위해 자신이 아닌 아내의 성인 필립을 따르게 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세기 중반부터 파텍과 필립 두 가문의 후손 중 파텍 필립에서 근무한 사람은 한 명도 없다.1881년 파텍 필립은 정밀 레귤레이터(밸런스 휠과 헤어스프링을 통해 시계의 정확한 시간을 표현해 주는 무브먼트)에 관한 특허를 받았다. 1885년 장 아드리앵 필립의 막내아들인 조제프 에밀 필립은 아버지의 회사에서 연수생으로 시작했다. 이후 파텍 필립은 사우스켄싱턴에서 열린 국제 발명 전시회에서 금메달을 받았다. 1887년 스페인의 4개 군사 기사단 중 하나인 칼라트라바(Calatrava) 기사단의 십자가는 파텍 필립의 로고가 됐다.
1889년 파텍 필립은 회중시계용 퍼페추얼 캘린더(일·월·요일·연도 등을 자동으로 설정하는 기능)로 특허를 받았다. 1891년 장 아드리앵 필립은 막내아들인 조제프 에밀 필립에게 사업을 물려줬고 1894년 79세에 사망했다. 파텍 필립의 크로노미터는 프랑스예술협회가 제네바에서 연 타임 키핑 시험에서 가장 높은 누적 점수를 얻었다. 1895년에서 1897년 사이 파텍 필립은 까다롭고 섬세한 시계 기능이 많이 포함된 '슈퍼컴플리케이션(여러 개의 기능이 구현되는 시계)' 회중시계를 선보였다. 1902년 파텍 필립은 최초의 '더블 크로노그래프(키리스 시스템을 사용해 한 쌍의 메인 스프링 배럴을 동시에 감는 독립적인 초가 있는 무브먼트)'에 대한 특허도 받았다. 1910년 파텍 필립은 레글라 공작의 '웨스트민스터 차임' 회중시계를 제작했고, 1915년 아인슈타인은 파텍 필립에 금색 회중시계를 주문했다.
1916년 파텍 필립은 소리로 시각을 알리는 리피터 기능을 갖춘 최초의 여성용 컴플리케이션 손목시계를 선보였다. 1923년에는 세계 최초로 두 개의 시간 격차를 측정할 수 있는 '스플릿 세컨드 크로노그래프' 손목시계를 출시하고, 1925년엔 퍼페추얼 캘린더를 탑재한 최초의 손목시계를 선보였다. 미국 자동차 기술자이자 재력가였던 제임스 워드 패커드도 1927년 테이블 시계와 회중시계를 파텍 필립에 주문했다.
다이얼 공급업체가 인수, 4대째 가족 경영
1929년 미국 대공황의 여파가 전 세계에 퍼지자 기존 거래처들이 구매 대금 지급 의무를 지키지 못했다. 파텍 필립은 이로 인해 큰 타격을 받았지만 경쟁사에 인수돼 브랜드의 고유한 정체성을 잃는 상황만은 막고 싶었다. 1932년 파텍 필립에 오랜 기간 시계의 다이얼을 만들어 공급하던 샤를과 장 슈테른(Charles & Jean Stern) 형제는 세계적 명성을 가진 시계 브랜드가 사라지는 것을 차마 볼 수 없어 파텍 필립을 인수했다.1935년 샤를 슈테른은 파텍 필립의 이사회장으로 취임 후 파텍 필립에 당시 존경받는 시계 장인이자 제네바의 시계 회사 타바네스시계 대표이던 장 피스터(Jean Pfister)를 경영자로 영입했다. 또한 샤를 슈테른은 독특하고 희귀한 시계에 관심이 많았는데 그의 수집품들은 이후 제네바에 위치한 파텍 필립 박물관의 기반이 됐다. 파텍 필립은 1932년 샤를과 장 슈테른 형제가 인수한 이래로 앙리 슈테른, 필립 슈테른, 그리고 필립의 아들 티에리 슈테른까지 철저한 브랜드 관리로 4대째 가족 경영으로 이어지고 있다.
1925년 미국 뉴욕의 은행가이던 헨리 그레이브스 주니어가 파텍 필립에 직접 주문해 1933년 완성된 회중시계가 '헨리 그레이브스 슈퍼컴플리케이션'이다. 당시 헨리 그레이브스 주니어가 지불한 시계값은 6만 스위스 프랑(한화 약 1500만 원)으로 현재 물가를 감안하면 한화 약 2억 원에 이른다.
제작 기간만 5년이 걸리고 부품 900여 개가 들어간 이 시계는 요일, 일, 월, 4년마다 한 번씩 다가오는 윤년까지 자동으로 맞추는 퍼페추얼 캘린더와 문 페이즈(음력), 스플릿 세컨드 크로노그래프 기능이 장착돼 있다. 외관은 24K 금으로 감쌌다. 무게는 0.5kg. 이 시계는 헨리 그레이브스 주니어가 사망한 후 그의 딸을 거쳐 헨리의 외손자 레지날드 피터 플러튼에게 넘어갔다.
1968년 그는 시계를 일리노이 록포드에 위치한 시계박물관에 매각했다. 이후 록포드 박물관이 1999년 3월 문을 닫으며 이 시계를 소더비 경매에 내놨고 익명의 입찰자(차후에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족 사우드 빈 모하메드 알 타니로 밝혀짐)가 1000만 달러에 구입했다. 이 액수는 당시 시계 역사상 가장 높은 판매 금액이었다. 사우드 빈 모하메드 알 타니가 다시 매각을 원해 이 시계는 2014년 11월 11일 제네바에서 열린 소더비 경매에서 2400만 달러(한화 약 264억 원)에 팔렸다. 현재까지 경매에서 팔린 가장 비싼 회중시계가 됐다.
스포츠 시계 '노틸러스'와 '월드타임' 컴플리케이션
파텍 필립은 1949년 시간의 빠르고 느림을 조정하는 '자이로맥스(Gyromax) 밸런스 휠'에 대한 특허를 받았다. 파텍 필립의 시계는 자이로맥스 밸런스 휠이 적용돼 시간의 오차범위를 최소화했다. 1953년에는 최초의 셀프 와인딩 메커니즘인 칼리버에 대한 특허를 받았다. 1956년엔 최초의 전자시계를 만들었다. 1958년 장 피스터가 은퇴하고 앙리 슈테른이 파텍 필립의 대표로 취임했다. 이 브랜드는 1959년 런던, 뉴욕, 모스크바 등 24개 주요 도시가 있는 월드 타이머의 타임존(time-zone)으로 특허를 받았다. 1968년에는 최초의 타원형 디자인이 특징인 '골든 엘립스(Golden Ellipse)' 시계를 출시했다.
1970년대 앙리 슈테른의 아들인 필립 슈테른은 자신과 같은 젊은 세대를 위한 프로젝트를 맡았다. 스포츠광이던 그는 파텍 필립 시계에 스포티함을 더했다. 1976년 스위스의 시계 제조업자이자 디자이너인 제럴드 젠타(Gerald Genta)에 의해 스틸 소재의 대표적 스포츠 시계 '노틸러스(Nautilus)'가 탄생했다. 노틸러스는 스포츠 시계임에도 문 페이즈, 퍼페추얼 캘린더, 듀얼타임, 크로노그래프 등 다양한 컴플리케이션 기능을 탑재한 것이 특징이다.
1997년 최고위급 군장교가 파텍 필립에 의뢰해 제작된 최초의 '아쿠아넛(Aquanaut)'이 출시됐는데, 이 시계는 다이버 시계 라인이라지만 스포츠 시계 중에서는 착용감이 편안해 스포츠를 즐기는 패셔니스타들에게 인기가 많다. 아쿠아넛은 노틸러스와 마찬가지로 120m 방수 기능이 탑재돼 있으며 비틀스의 폴 매카트니와 링고 스타, 전설적인 금융인 조지 소로스가 애용하는 시계로도 유명하다.
자체 인증 도입, 제네바 인증으로부터 독립
필립 슈테른의 아들 티에리 슈테른은 1994년 파텍 필립에 합류한 후 시계 제조업의 기초부터 배우기 시작해 모든 부서에서 경험을 쌓았다. 이후 그는 벨기에·네덜란드·룩셈부르크 시장을 담당했고, 파텍 필립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를 맡으며 장기 전략을 세우는 데 기여했다. 2009년 티에리 슈테른이 파텍 필립의 회장으로 취임했다.티에리 슈테른은 파텍 필립을 제네바 인증(Geneva Seal)으로부터 독립시켰다. 제네바 인증은 제네바에 기반을 둔 시계 제조사들이 만든 시계의 공식적 품질을 보증한다. 당시 시계 제조사들이 제네바를 떠나 시계 제조에 필요한 전문 기술과 지식을 외부로 유출하는 것을 막고자 제네바 주 정부에 의해 1886년 법으로 제정됐다. 파텍 필립은 120년 역사를 자랑하는 제네바 인증조차 자사의 오랜 전통과 혁신적 기술력을 보증하기 어렵다고 판단해 '파텍 필립 자체 인증(Patek Philippe Seal)'을 도입했다.
2014년 세계에서 가장 복잡한 손목시계 중 하나인 파텍 필립의 그랜드마스터 차임에는 컴플리케이션 20개가 사용됐다. 파텍 필립은 2018년 '월드 타임 미닛 리피터'를 출시했다. 월드타임 시계는 거의 80년 동안 파텍 필립 제품 중에서도 가장 인기 높은 컴플리케이션 손목시계라는 명성을 지키고 있다. 컬렉터들 사이에서 '세계의 시간'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다.
어쩌면 올해 안에 파텍 필립의 새로운 시계를 만날 수도 있다. 티에리 슈테른은 "현재 새 모델의 디자인뿐만 아니라 프로토타입(시제품)까지 준비돼 있고 빠르면 올해 말, 늦어도 내년에는 공개할 것"이라고 언급했다. 파텍 필립이 새로운 모델 라인을 선보이는 것은 25~26년 만의 일이어서 마니아들의 기대치가 높아지고 있다.
시계 이상의 가치를 인정받고 새로운 유행을 선도하는 파텍 필립은 영국 빅토리아 여왕, 덴마크 왕 크리스티안 9세,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 등 유럽 왕가뿐만 아니라 교황 비오 9세·레오 13세·베네딕토 16세와 달라이 라마(티베트 불교의 수장)도 사로잡았다. 저명한 사업가 록펠러, 작곡가 표트르 차이콥스키·리하르트 바그너,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도 파텍 필립을 애용했다.
이지현 서울디지털대 패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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