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부와 간호사 파독, 경제발전의 기획자"…백영훈 박사 별세

박양수 2023. 10. 17.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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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독에서 차관을 받아오기 위해 광부와 간호사를 보내는 방안을 기획한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KID) 원장이 16일 오후 7시36분 서울 중앙대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고인은 유학 시절 지도교수를 만나 서독 경제장관을 만나게 해달라고 눈물로 애원한 끝에 경제차관을 만나 3000만 달러 상업 차관 약속을 이끌어냈다.

1965년에 설립된 국내 최초 경제연구소인 한국산업개발연구소(KID·현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소장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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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부 파독 경제발전의 기획자'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원장. [유족 제공]

서독에서 차관을 받아오기 위해 광부와 간호사를 보내는 방안을 기획한 백영훈 한국산업개발연구원(KID) 원장이 16일 오후 7시36분 서울 중앙대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3세.

1930년 전북 김제군 월촌면에서 태어난 고인은 고려대 상대, 서울대 대학원을 졸업한 뒤 국비장학생으로 뽑혀 1956년 서독으로 유학을 떠났다. 쾰른대 대학원에서 공부했고, 1962년 독일 뉘른베르크 에를랑겐-뉘른베르크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58년 귀국 후 1959년부터 중앙대 상대 교수로 강단에 섰다.

당시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은 5·16 쿠데타에 부정적이었던 미국이 경제협력을 거절하자 서독에서 차관을 받으려고 했다. "독일어를 할 수 있는 전문가를 찾으라"는 박 의장의 지시로 고인이 지목됐고, 1961년 말 정래혁 상공부 장관을 단장으로 하는 서독 경제 협력단에 장관 특별보좌관 자격으로 포함됐다. 고인은 유학 시절 지도교수를 만나 서독 경제장관을 만나게 해달라고 눈물로 애원한 끝에 경제차관을 만나 3000만 달러 상업 차관 약속을 이끌어냈다.

문제는 지급을 보증해줄 서독 은행이 없었다. 고민하던 고인에게 유학 시절 지인인 서독 노동부 과장이 "너희 나라 5000명을 독일 탄광에 보내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이를 계기로 광부 3000명과 간호사 2000명을 보내는 대신 이들의 월급을 담보로 서독이 차관을 제공한다는 방안이 성사됐다.

1963년 12월 광부 300명이 간 것을 시작으로 광부·간호사 파견이 늘어났고, 박정희 대통령은 1964년 11월 서독 정부의 초청으로 독일을 방문했다. 이때 통역관으로 동행한 고인은 당시 박 대통령이 "우리 국민 절반이 굶어죽고 있다"며 울먹이자 에르하르트 서독 총리가 그의 손을 잡으며 "도와드리겠다"고 말했다는 일화를 후일 전하기도 했다.

박 대통령 경제고문을 맡은 고인은 당시 유럽에서 가발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전국적으로 가발 생산을 유도하고, 전자산업 육성을 제안하는 등 여러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1965년에 설립된 국내 최초 경제연구소인 한국산업개발연구소(KID·현 한국산업개발연구원) 소장에 취임했다. KID는 경부고속도로 등 물류 인프라와 구미공단, 여천공단 등 산업공단 개발에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또한 중소기업중앙회 설립을 돕고, 중소기업 전담 은행인 기업은행을 만드는 것도 제안했다. 고인은 '군수산업 10개년 계획'도 입안했다.

고인은 경제개발계획 자문위원회 위원장, 유엔 아시아극동경제위원회(ECAFE)의 AIDC 상임고문, 중화학공업추진위원장, 제9·10대 국회의원,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의원을 역임했다. 1970년 중소기업 육성 공로로 대통령 포상을 받았다. 이어 1972년 은탑산업훈장, 1977년 대통령 유공기념비, 2001년 독일 민간외교 훈장, 2002년 국민훈장 모란장, 2003년 독일연방공화국 대십자훈장을 받았다.

'한국의 공업화 발전론'(1972), '우리나라 중화학공업정책'(1973), '한국 경제의 도전'(1980), '아우토반에 뿌린 눈물'(1997), '한국 자본주의 제3의 혁명'(2001), '대한민국에 고함'(2005), '경제, 4만불 시대의 로드맵'(2008), '위대한 한국 시대는 온다'(2015) 등 저서를 남겼다.

유족은 부인 방한진씨와 백신영·백훈(중앙대 교수)·백신미·백지희씨 등 1남3녀 , 사위 강택수(재단법인 벤처캐피털타운 대표)씨 등이 있다. 빈소는 중앙대병원 장례식장, 발인 19일 오전 5시20분, 장지는 이천 에덴낙원공원이다. 박양수기자 yspark@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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