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보다 통화량에 주목하라”… 인플레시대, 고개드는 통화주의[Global Economy]
인플레이션 없던 시절에는 통화량 늘려도 물가급등 안해
Fed,‘이자율 관리’에만 집중하며 양적완화 정책 이어가
美, 금리 5.5%까지 올렸지만 고물가 계속… 추가긴축 고민
프리드먼파 “인플레는 통화량과 밀접… 더 줄면 침체” 경고
워싱턴=김남석 특파원 namdol@munhwa.com
“인플레이션(물가 상승)은 생산량보다 통화량이 더 빠르게 증가해야만 발생하고 또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언제 어디서나 통화 현상이다.”(1970년 밀턴 프리드먼)
미국을 비롯한 주요국들이 경쟁적으로 통화공급을 늘린 후폭풍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하면서 30년 전 폐기됐던 ‘통화주의’(monetarism)가 부활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과 세계 각국의 전례 없는 유동성 공급으로 대폭 늘어났던 통화공급이 18개월 뒤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지면서 통화가 인플레이션에 직접 영향을 주며 인플레이션 예측력을 갖고 있다는 통화주의자들, 일명 프리드먼 제자들의 주장이 다시 활기를 띠게 됐다. 실제 12일(현지시간) 미국 노동부가 발표한 9월 소비자물가지수(CPI)가 전년 동월 대비 3.7% 상승한 가운데 18개월 전인 2022년 3월 미국 내 총통화 지표인 M2(현금+저축성예금+소액 정기예금 및 단기자금예금계좌) 역시 21조8000억 달러(약 2경9474조 원)로 전년 동월보다 8.5% 증가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최근 연방준비제도(Fed)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이 앞다퉈 긴축기조를 채택하면서 통화공급이 줄어들자 통화주의자들은 18개월 시차를 두고 경기침체를 불러올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그린스펀은 옳고 프리드먼은 틀렸다? = 16일 월스트리트저널(WSJ)·블룸버그통신 등에 따르면 최근 높은 인플레이션이 지속되면서 30년 전 Fed 정책지침에서 사라졌던 통화주의가 다시 작동한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통화주의는 정책 당국이 경제활동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 중 통화정책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는 주장을 뜻한다. 1976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프리드먼을 비롯해 시카고학파를 중심으로 관련 이론이 발전했다. 이와 배치되는 견해로는 재정정책이 경제활동 수준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하는 재정주의(fiscalism)가 있다.
Fed는 1979년부터 폴 볼커 당시 의장의 지휘 아래 통화공급량을 제어하는 데 주력했지만 점차 통화비용, 즉 이자율 관리에 집중하는 방향으로 돌아섰다. 경제를 움직이는 개인·기업의 의사결정에서 통화량보다는 이자율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993년에는 앨런 그린스펀 의장이 의회에 출석해 “통화공급과 인플레이션 간 장기적 관계가 무너진 것 같다”고 밝히면서 Fed는 통화공급을 목표로 삼는 것을 완전히 중단했다. 이후 25년 동안 그린스펀의 주장은 옳고 프리드먼은 틀린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1990년대부터 2010년대에 이르기까지 통화공급과 인플레이션에 대한 다양한 측정치에서 본질적으로 아무런 연관성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특히 Fed가 2010년부터 양적완화를 통해 통화공급을 크게 늘렸을 때 많은 경제학자·투자자들의 우려에도 인플레이션이 급등하지 않았다.
하지만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고물가가 이어지면서 통화주의는 다시 주목받고 있다. 올해 국제결제은행(BIS)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이 낮을 때는 통화량과 인플레이션 사이에 연관성이 없다는 결론이 나온 반면 높은 인플레이션 상황에서는 통화공급이 거의 완벽한 지표로 작용했다. 통화공급량을 살펴보는 것은 개별 국가뿐 아니라 각국의 인플레이션을 비교할 때도 경제 예측에 도움이 됐다. M&G 인베스트먼트의 리처드 울노프 펀드매니저는 WSJ에 “돈을 찍어낸 국가는 인플레이션이 있었지만 돈을 찍어내지 않았거나 찍어낼 수 없었던 국가는 그렇지 않았다”고 말했다.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각국이 앞다퉈 늘린 통화공급이 현재 인플레이션을 가져왔다는 통화주의자들의 주장은 코로나19 셧다운(일시 업무정지) 이후 경제가 재개되면서 공급망 충격·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는 주류 경제학계의 의견과 상반된다.
◇통화공급 감소세, 과연 경기침체로 이어질까 = 코로나19 이후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Fed가 금리를 계속 인상하면서 미국 내 통화량은 가파르게 감소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지난 3월 기준 미국 내 M2는 21조1000억 달러로 지난해 3월(21조8000억 달러)보다 1년 만에 3.21% 감소했다. 유로존(유로화 사용 20개국)과 영국에서도 각각 총통화 지표로 사용하는 M3와 M4 등 광의통화 유동성은 감소세다. 통화주의자들은 통화공급 감소가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에 대한 경고이자 Fed를 비롯해 유럽중앙은행(ECB), 영국은행 등 각국 중앙은행이 금리를 너무 많이 올렸다는 신호라며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퍼스트 이글 인베스트먼트의 글로벌가치부문 공동책임자인 매슈 맥레넌은 “통화축소를 무시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라며 “통화정책이 상당히 긴축적으로 보이기 시작했다”고 경고했다.
시장금리가 고공행진하고 통화량이 감축하는 가운데 통화주의자들의 우려대로 경제 긴축 효과가 강해지면서 물가가 잡힐 때까지 고금리를 유지하겠다는 견해였던 Fed도 고민에 빠졌다. 국채 시장금리 등을 고려할 때 현재 5.25∼5.50%에 달하는 기준금리 인상을 멈춰야 하는 것 아니냐는 Fed 인사들의 발언도 속속 등장했다. Fed 2인자인 필립 제퍼슨 부의장은 9일 “향후 채권 수익률 상승을 통한 금융여건 긴축을 계속 인식하고 향후 정책 방향을 평가할 때 염두에 둘 것”이라고 밝혔다.
높은 인플레이션 속에 통화주의가 다시 돌아왔지만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도 만만치 않다. 인플레이션이 낮을 때는 통화량과의 연관성이 뚝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사벨 슈나벨 ECB 집행위원은 “2020년 급증한 통화공급이 향후 인플레이션에 대한 유용한 지표가 될 수도 있지만 통화공급 규모와 경기침체 사이에는 거의 연관성이 없다”며 “현재 통화량 축소가 사상 최대 규모지만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는 이유”라고 말했다. WSJ는 “현재 통화주의가 (인플레이션에 대한) 간단한 답을 제시하고 있지만 정답이 되기까지 오랫동안 오답이었다. 다시 틀릴 수도 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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