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 벼랑 모는 손배 가압류…국회는 아직 이 굴레를 못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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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주익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2003년 10월 이후 스무번의 가을을 채우는 동안 김주익의 죽음이 수면 위로 끌어올린 비극은 반복됐다.
대화(교섭) 기회를 얻지 못한 노동자가 파업과 점거에 나서고, 불법 쟁의행위가 되고, 막대한 손해배상 책임과 가압류로 곤궁을 겪고, 무너지는 동료·가족 관계를 감당하다가, 목숨을 끊는 일이다.
한진중공업의 18억원 손배가압류에 묶인 김주익이 스스로 목숨을 거둔 데 이어, 약 보름 뒤 동료 곽재규도 김주익을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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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주익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2003년 10월 이후 스무번의 가을을 채우는 동안 김주익의 죽음이 수면 위로 끌어올린 비극은 반복됐다. 대화(교섭) 기회를 얻지 못한 노동자가 파업과 점거에 나서고, 불법 쟁의행위가 되고, 막대한 손해배상 책임과 가압류로 곤궁을 겪고, 무너지는 동료·가족 관계를 감당하다가, 목숨을 끊는 일이다. 노동 조건에 실질적인 결정 권한을 지닌 자(원청)로 교섭에 나서야 할 사용자 범위를 넓히고, 노조 활동으로 인한 손배 범위를 다소나마 규율하는 노란봉투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2·3조 개정안)이 만들어진 배경이다.
손배가압류가 노조 활동을 무력화하는 데 본격적으로 쓰인 것은 1994년부터다. 대구 동산의료원 노조에 회사가 청구한 손해배상액 5천만원이 대법원에서 인정되며 판례가 생겼다. 2003년엔 김주익에 앞서 1월 배달호가 두산중공업의 78억원 손배가압류에 항의해 분신했다. 한진중공업의 18억원 손배가압류에 묶인 김주익이 스스로 목숨을 거둔 데 이어, 약 보름 뒤 동료 곽재규도 김주익을 따랐다. 시민단체 ‘손잡고’(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가 확보한 판결 자료를 보면, 1989∼2022년 회사 쪽이 노조 활동으로 손해를 봤다며 배상을 청구한 액수는 모두 3160억원에 이른다.
2000년대 들어 급격히 불어난 간접고용 비정규직은 가장 막대한 손배 청구의 대상이 됐다. 원청의 단체교섭 대상이 되지 못해, 노동 조건에 ‘실질적’인 결정 권한이 있는 원청을 향한 교섭 요구와 단체행동이 손쉽게 불법 쟁위행위가 되는 탓이다. 현대차 비정규직지회가 도합 366억원으로 가장 많은 손배 청구를 당했는데, 지난해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가 대우조선해양에서 470억원의 손배 청구를 당하며 이 기록을 깼다.
보장되지 않는 노동3권→파업→손배가압류로 이어지는 구조를 깨기 위해 시민들이 나섰다. 2014년 손배가압류 노동자를 지원하기 위한 ‘노란봉투 캠페인’에 이어 2015년 처음 발의된 노란봉투법 제정 운동은 무분별한 손배가압류를 제한(노조법 3조 개정안)하는 내용을 담았다. 2010년 대법원이 현대중공업을 사내하청 노동자의 사용자로 인정한 것을 시작으로, 비슷한 쟁점이 있던 현대차 등 제조 대기업 사건에서 노사 관계의 형식이 아닌 실질을 중심으로 사용자를 판단해야 한다는 법리가 자리잡았다.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노조법 2조 개정안은 이 법리를 따른 것이다.
노란봉투법은 지난 6월30일 야당 주도로 국회 본회의에 부의된 이후 지금까지 본회의에 상정되지 못했다. 과반 의석을 가진 더불어민주당은 지난 6일 본회의에서 노란봉투법에 대한 의사일정 변경 동의안을 제출한 뒤 표결을 통해 법안 상정에 나서려 했으나, 민주당 소속인 김영주 국회 부의장이 “여야 추가 논의를 거치라”고 제동을 걸었다. 민주당은 11월엔 노란봉투법 본회의 처리를 반드시 관철할 태도다. 민주당 원내지도부 관계자는 “11월 국회에서 노란봉투법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는 게 기본 입장”이라고 말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노란봉투법이 국회 본회의에 상정되면,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또 노란봉투법이 본회의를 통과하면 윤석열 대통령에게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고,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을 청구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김해정 기자 sea@hani.co.kr 강재구 기자 j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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