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날리겠다? 권력은 유한하고 언론은 영원하다"

2023. 10. 17.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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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펴낸 박성제 전 MBC 사장

[이명선 기자(overview@pressian.com)]
<MBC를 날리면>. 박성제 전 MBC 사장의 신간 제목이다. 이는 그의 사장 재임 시기 MBC가 윤석열 정부와 가장 대립각을 세웠던 보도 중 하나를 패러디한 제목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이 일었던 해당 발언에 대해 현장 기자들과 대다수의 국민들이 "바이든"이라고 들었지만 홍보수석은 한참 뒤에 "날리면"이라고 이를 부인했다. 윤석열 정부는 이어 모든 언론이 해당 발언을 보도했는데 유튜브를 통해 최초 보도했다는 이유로 MBC를 정조준하고 나섰다. 이는 그 다음 대통령 해외 순방에 MBC 기자들을 대통령 전용기에 태우지 않는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의 방송 장악 시도로 해직됐던 그가 3년 사장 임기(2020년 2월 24일~2023년 2월 23일)를 마치고 '공영방송 수난사'가 부제목인 이 책을 낸 시기는 '방송 장악 기술자'라고 불리는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이 복귀한 직후다. 그가 복귀한 뒤 방송 경험이 전무한 박민 전 <문화일보> 논설위원이 KBS 사장 후보로 내정되는 등 '공영방송 죽이기 시즌 2'가 본격화된 모양새다.

박 전 사장은 16일 <프레시안>과 인터뷰에서 책을 쓴 이유에 대해 후배 언론인들에게 "잘 싸워야 한다"는 격려와 응원의 차원이라고 말했다. 당분간 "책을 홍보하면서 북 콘서트도 하는 등 해직 언론인으로서 삶을 좀 이어가겠다"고 밝힌 것도 '공영방송 민영화' 욕심을 숨기지 않고 있는 윤석열 정부의 움직임을 염두에 둔 행보로 풀이된다.

다음은 전홍기혜 프레시안 이사장이 진행한 인터뷰의 주요 내용이다.

▲ 박성제 전 MBC 사장이 '언론인 박성제가 기록한 공영방송 수난사'라는 부제가 달린 책 <MBC를 날리면>(창비 펴냄)을 냈다. 그는 '책머리에'에서 "이 책은 내가 해직 언론인에서 보도국장이 되어 뉴스를 재건하고, 그리고 사장이 되어 회사를 살리기 위해, 지키기 위해 싸웠던 5년의 상세한 기록"이라고 했다. ⓒ프레시안(이명선)

"'방송장악 기술자' 이동관, 총사령관이 되어 돌아오다"

프레시안 : MB 정부의 '방송장악 기술자' 이동관이 윤석열 정부의 방송통신위원장으로 복귀한 시점에 책이 나왔다.

박성제 : 대한민국에서 방통위원장이 되면 안 되는 사람을 딱 한 명 뽑으라고 하면, 바로 이동관이다. 그런데 방통위원장이 됐다. 이동관 위원장은 이명박 정부의 'MBC 방송장악' 연루 의혹을 끊임없이 받아온 사람이다.

2017년 국가정보원 불법사찰 사건을 수사한 검찰은 이명박 정부 당시 '청와대 홍보수석실이 MBC 방송 장악 계획을 세운 것으로 판단된다'는 내용의 수사보고서(MBC 방송장악 관련 청와대 홍보수석실 관련성 검토)를 작성했으며, 당시 김재철 사장에게 국정원 작성 문건을 전달했을 유력한 인물로 이동관 홍보수석을 지목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이동관 위원장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 김재철 전 MBC 사장 등과 같이 기소가 되고도 검찰 조사를 받지 않았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서울중앙지검장으로 국정원 불법사찰 수사를 지휘했고,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3차장검사로 수사의 책임자였다.

윤석열 정부가 왜 이런 사람을 방통위원장으로 내세웠겠는가. 윤석열 대선캠프 시절부터 형성된 뿌리 깊은 공영방송에 대한 적대감 때문이다. 이동관 위원장은 윤석열 대선캠프 미디어소통위원장과 제20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특별고문, 그리고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별보좌관을 지냈다.

"과거처럼 각종 계획이 담긴 문건은 만들어지지 않으리라고 생각한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의 머릿속에 모든 시나리오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수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동관에게 방통위원장을 맡긴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방송장악의 기술자이자 행동대장이었던 이동관은 이제 총사령관이 되어 돌아온 것이다."(<MBC를 날리면> 210쪽)

"윤석열 정부, '공영방송 민영화' 무조건 시도한다"

프레시안 : 이동관 위원장이 방통위를 맡은 이후 실제로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KBS 사장에, 방송 경험이 전무한 박민 전 <문화일보> 논설위원이 내정됐다.

박성제 : 박민 KBS 사장 내정자가 보수 신문의 논설위원 출신이냐 아니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대통령실에서 어떤 임무를 받았는지가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는 'KBS가 편향됐다'는 생각에 '정상화시키겠다'는 명분으로 외부 사람을 사장으로 내정한 것 같은데, 편향성이 문제라면 KBS 내부에 신망이 있는 사람을 뽑으면 된다. 그런데 KBS와 인연도 애정도 없는 사람을 사장으로 내정했다. 윤석열 대통령이나 정부의 계획을 잘 수행할 인사를 내정한 것이다.

박민 내정자도 KBS 편파성에 대한 대국민 사과, 수신료 분리고지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 제작비 축소, 지역국 통폐합 등을 공약했다. 그중에서도 인력 구조조정 의사를 강하게 밝혀 KBS가 난리가 났다고 하던데, 바로 이런 걸 노리는 것이다. KBS가 분열되고 쪼개져 제 기능을 못 하게 하려는 의도다.

KBS 사장이 바뀌고 민영화 얘기가 나오면, 내부는 분열될 것이다. '아니, 윤석열 대통령과 잘 통하는 사장 받아서 수신료 문제 해결하고 경영 정상화 시키면 좋은 것 아닌가'라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 내부 분열이 가열되면서 내년 총선까지 KBS의 시사 기능은 마비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다수석을 확보하면, 방송법을 개정해 KBS를 해체하는 수순으로 갈 것이다. KBS의 힘을 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대한민국 제1공영방송으로 권력을 견제하고 국민이 주인인 KBS가 어떻게 되겠는가.

프레시안 : 이동관 위원장이 최근 국정감사에서 "공영방송은 건드릴 수 없는 금자탑인가"라며 공영방송 민영화 가능성에 대해 "필요하다면 있을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라고 말했다.(10월 10일) 책에서도 윤석열 정부가 민영화를 시도할 수 있지만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는데, 이런 무모한 시도를 정말 할까?

박성제 : 무조건 한다. 윤석열 정부의 최종 목표는 KBS 2TV 민영화겠지만, 윤석열 정부는 공영방송 민영화를 무조건 한다고 봐야 한다. 예능이나 드라마 영역에서 볼 때 민영화는 큰 위협이 아닐 수 있지만, 뉴스나 시사보도 같은 저널리즘에서는 치명적이다. 한 마디로, MBC와 KBS가 TV조선이나 채널A와 같은 종합편성채널(종편)이 되는 것이다.

SBS는 민영방송이지만, 그래도 저널리즘을 추구하고 있는 이유는 KBS, MBC와 같이 지상파 체제에 묶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편이 등장한 뒤로 SBS 내부에서도 '종편처럼 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고 한다.

정치적인 걸 떠나서 공영방송 언론인들은 항상 '우리 주인은 누구인가'를 생각한다. 그래서 상업적·선정적으로 못 한다. 종편과 같은 실소유주, 오너가 없기 때문에 정파적으로 크게 흔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오너가 생기는 순간, 오너는 이익을 생각해서 권력과 잘 지내고 싶어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그래서 MBC나 KBS 민영화는 큰 문제일 수밖에 없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뒷편 왼쪽)과 이동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앞)이 10월 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해 국무위원들과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한동훈 장관은 MB 정부 당시 제3차장 검사로 국정원 불법사찰 사건의 수사를 담당했다. ⓒ연합뉴스

"MBC가 어떻게 국민의 신뢰를 되찾았는지 잊지 말자"

프레시안 : 감사원이 지난 8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권태선 이사장과 관련한 '수사참고자료'를 검찰에 넘기면서 윤석열 정부의 '방송 장악'이 본격화됐다는 얘기가 나왔지만, 법원이 권태선 이사장에 대한 해임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이면서 제동이 걸린 상황이다. 지금 MBC는 어떤가.

박성제 : 법원이 권태선 이사장의 손을 들어준 것인데, 방통위가 이에 대해서도 항고했기 때문에 법원이 또 어떤 판단을 내릴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이와 별도로 권태선 이사장에 대한 수사가 이뤄지고 있어, 윤석열 정부는 어떻게든 MBC를 날리려고 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내년 총선 전, 연말연시에 사장이 교체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 고비를 넘기면 현 이사들 임기인 내년 8월까지는 이대로 갈 것이다.

사실 책은 방문진과 사장 교체 등의 위기 상황이 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썼다. 'MBC가 어떻게 국민의 신뢰를 되찾았는지 잊지 말자. 버틸 수 있고 이길 수 있다'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그렇게 후배들과 동료들에게는 힘을 실어주고, MBC를 '만나면 좋은 친구'로 생각하는 국민들에게는 현 상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기 위해 썼다.

프레시안 : 이명박 정부 때는 노조도 국민도 정권의 방송 장악 시도에 굉장히 반대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KBS와 MBC 내부에 동력이 떨어졌고, 국민들도 상대적으로 냉담하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박성제 : KBS 이사회가 김의철 사장 해임 제청안을 의결하자 윤석열 대통령은 그날 당일 재가했다. 이렇게 KBS 사장 해임이 속전속결로 진행됐지만, 내부에서 반대 목소리가 지배적이지 못했다. MBC는 KBS와 조금 다르다. MBC는 잘 싸워야 하고, 잘 싸울 것이라고 믿는다.

권력은 유한하지만, 언론은 영원하다. 조금 어려운 시기가 오면 영리하게 버티면 된다. 과거처럼 길거리 나가서 전단지 돌리며 파업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달라진 상황에 맞게 싸우면 된다. 국민들이 공영방송에 원하는 게 무엇인가. 보도를 똑바로, 제대로 해 달라는 것 아닌가. 상황에 맞게 우리가 뉴스를 똑바로, 제대로 보도하면 된다.

"JTBC, 손석희 내보내고 정권과 코드 맞추기에 들어간 것 아닌가"

프레시안 : 손석희 사장이 JTBC를 떠났다. 계약 기간이 만료돼 자연스럽게 그만둔 것이지만, 윤석열 정부의 언론 길들이기와 관련된 일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박성제 : '손석희'라는 인물은 여전히 가장 영향력이 높은 언론인 중 한 명이다. 그런 그가 JTBC <뉴스룸> 앵커 자리에서 내려온 뒤 해외순회특파원을 하는 등 지난 2~3년간 모양새를 갖춰 사장직에서 물러나는 과정을 밟았다.

<중앙일보>와 JTBC 등을 거느린 중앙그룹과 정권과의 코드 맞추기 일환 아닐까? 홍정도 중앙그룹 사장 등 오너 일가가 손석희란 사람에게 더 이상 큰 역할을 맡길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JTBC 손석희 앵커가 피신 중인 철도노조 위원장과 단독 전화 인터뷰를 했다. 뉴스의 중심 인물이라면 그 누구든 라이브로 인터뷰한다. 그야말로 성역 없는 보도 아닌가? 예전 김대중, 노무현 정권 때 MBC도 못하던 거다. 리더 한 명이 조직을 얼마나 바꿔놓을 수 있는지 증명하는 생생한 사례다."(<MBC를 날리면> 31쪽)

▲ 언론인 '손석희'는 자신의 책 <장면들>(창비 펴냄)에서 JTBC <뉴스룸> 마지막 방송일이던 2020년 1월 2일을 "앵커가 뉴스의 편집권과 인사권, 예산권까지 갖고 최종 책임을 지던, JTBC만의 유례없는 실험이 끝나는 날"이라고 썼다. ⓒJTBC

"MBC는 지상파 채널을 소유한 '글로벌 콘텐츠 그룹'이다"

프레시안 : 책에 MBC가 MB 정부에서 망가진 이야기 외에도 해직 언론인에서 현업으로 복귀한 뒤 보도국장이 된 이야기, 그리고 임원을 건너뛰고 사장으로 직행한 이야기 등을 담았다.

박성제 : 보도국장이 되면서 국장실을 없앴었는데, 젊은 기자들이나 작가들이 지나가면서 말을 걸기도 하는 등 효과는 있었다. 하지만 외부 손님이 오거나 중요한 일 처리를 해야 할 때도 있어 불편했다. 그래서 차기 국장에게는 국장실을 다시 만들라고 했다.(웃음)

보도국장으로 있으면서 <뉴스데스크>의 시간을 늘려 90분짜리 '와이드 뉴스데스크'를 만들었다. 솔직히 기자들을 설득하느라 힘들었다. 당시 최승호 사장도 처음에는 승인했다가 기자들이 반대한다니까 말렸다. 그래서 실패하면 그만둘 각오로, 그 정도 책임은 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추진했다. 뉴스 리포트를 1분 30초씩 10개 하는 것보다 2분~3분씩 5개 하는 게 더 낫다고 봤다.

막상 '와이드 뉴스데스크'가 시작되고 나니 처음에 반발했던 기자들도 좋아했다. 일선 기자들이, 후배들이 국장의 전략을 이해해 줬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제는 시청자들도 'MBC 뉴스는 좀 깊이 있게 설명해 준다'는 느낌을 받는 것 같다.

프레시안 : 보도국장을 하고 사장으로 직행했다. 드문 경우다. '박성제 체제'에서 MBC와 넷플릭스의 연계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굉장히 실험적인 결정이었을 것 같은데….

박성제 : 사장 첫해에는 '빠르고 유연함'을 캐치프레즈로 내세웠다. 그리고 2년 차가 되면서는 무조건 영역을 넓혀야 한다는 생각에 '개방(OPEN)·연결(CONNECT)·확장(EXPAND)'이라는 3가지 키워드를 제시했다. 예능과 드라마뿐 아니라 뉴스도 <뉴스타파>와 협업했다.

예능과 드라마는 방송된 뒤 넷플릭스 같은 OTT(Over-The-Top)에 이미 서비스되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OTT에 프로그램을 선보인 경우는 없었다. MBC 피디들이 만든 <피지컬100>과 <나는 신이다>가 대표적인데, 처음에는 지상파가 OTT에 종속돼 '외주 제작사'로 전락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와 함께 내부 비판도 있었다. 결과적으론 크게 화제를 모았다.

3년 차에 내건 슬로건이 'MBC는 지상파TV가 아니다. 지상파 채널을 소유한 '글로벌 콘텐츠 그룹'이다'였다. 개념을 바꾸니, 어떤 콘텐츠는 유튜브에, 또 어떤 콘텐츠는 OTT에 먼저 방송할 수 있게 됐다.

지난해 MBC 유튜브 이익이 500억 원을 넘었다. 요즘 기자들은 <뉴스데스크>에 자신의 리포트가 몇 번째로 나갔다는 것보다 유튜브에서 별도로 서비스한 리포트 조회 수가 얼마가 나왔느냐를 더 신경 쓴다고 한다.

다만, 넷플릭스의 경우 2차 저작권을 보장해 주지 않는다. 아무리 좋은 콘텐츠를 만들어도 추가 이익이 발생할 수 없는 구조다. 이런 계약 관계는 엄밀히 따지면 하청업체인 것인데, 우리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이에 대해서는 불만이 많다. 이런 문제는 앞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다.

▲ 박성제 전 사장 재임 기간이었던 2021년 12월 창사 60주년을 맞이한 MBC는 1990년대부터 사용해 온 슬로건 '만나면 좋은 친구'의 새로운 이미지를 공개했다. ⓒMBC

"윤석열 정부, 팩트를 '가짜뉴스'라고 하며 '가짜뉴스'를 유포하고 있다"

프레시안 : 사장 임기 3년 동안 시청자들의 신뢰도 되찾고 흑자 경영도 했지만, 임기 중 정권이 바뀌었다. 문재인 정부에서 윤석열 정부로 정권이 교체됐는데, MBC에 끼친 영향이 있는지?

박성제 : 정권이 바뀌었지만, '그냥 그런가 보다'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하던 대로 했더니, 정권의 타깃이 됐다.(웃음)

윤석열 대통령의 부인인 김건희 전 코바나컨텐츠 대표와 이명수 <서울의소리> 기자의 녹취록 보도(<스트레이트> 2022년 1월 16일 자 '김건희 씨는 왜?') 석 달 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으로 참석한 '신문의날' 행사에서 만났는데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많이 삐쳐 있구나' 생각했다. 정치인 출신들은 아무리 서운한 게 있어도 티를 내지 않는데, 윤석열 대통령은 그런 게 티가 난다.

프레시안 : 윤석열 대통령의 '바이든-날리면' 발언 영상 공개가 결정적이었던 것 같다. MBC가 유튜브에 제일 먼저 올렸다는 이유만으로….

박성제 : 그 일이 컸다. 2022년 9월 22일 한국시간으로 오전 9시 39분 엠바고가 풀리고 나서 10시 7분에 해당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뉴욕 특파원과 보도국장 등에게서 받은 보고에 따르면, 당시 MBC 기자뿐 아니라 다른 방송사와 매체 기자들도 다 '바이든'이라고 들었고, 대통령실 기자 담당 비서관도 그렇게 듣고는 큰일 날 것 같으니 '보도를 미뤄 달라'는 얘기까지 했다. 그런데 보도가 나가고 논란이 확산되자, 대통령실에서 15시간 만에 내놓은 해명이 "지금 다시 한번 들어봐 주십시오. 국회에서 승인 안 해 주고 '날리면'이라고 되어 있습니다"(김은혜 대통령실 홍보수석)였다.

'바이든'이냐 '날리면'이냐로 '대국민 청력 테스트'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왔지만, 이건 청력의 문제가 아니다. 누가 들어도 '바이든'이지만, 대통령실의 해명 후 '날리면'으로 들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날리면'으로 강제 주입한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말을 믿는 사람들은 '날리면'으로 생각할 것이다. 이것은 심리적인 것, '확증편향'의 문제다.

왜 '날리면'이 아니라 '바이든'인가 하면, 윤석열 대통령이 미국 순방 중 글로벌 펀드 재정기업 회의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과 만난 뒤 행사장을 빠져나오면서 한 말이다. 그러니까 맥락상 '바이든이 의회에서 승인을 받아야 되는 일'이라는 것인데, 거기에서 왜 한국 국회가 나오나.

프레시안 : 윤석열 정부가 언론을 대하는 방식이다. 모든 비판적 보도에 '가짜뉴스'라는 프레임을 씌워서 몰아간다. 이전 정부와 굉장히 다른 모습이다. 팩트 자체를 부정하면서 팩트를 재가공해 덧씌우는 방식이다.

박성제 : 팩트를 '가짜뉴스'라고 하며 '가짜뉴스'를 유포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 결국 천공 취재 과정에서 대통령실에 보낸 질의서가 발단이 돼 MBC 기자들의 대통령 전용기 탑승 불허 조치가 내려졌다. 이에 '헌법소원'이라는 강수를 뒀다.

박성제 : 보통의 방송사 사장이라면 대통령실에서 그렇게까지 나오면 잘 풀어보려고 했을 것이다. 대통령실 관계자를 만나 이야기를 한다든지. 그러나 이렇게 접근하는 것은 굉장히 부적절하다고 봤다.

왜냐하면, 대통령이 공적으로 결정해 공영방송의 취재를 제한한 일이기 때문에 역시 공적으로 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법적으로, 공개적으로, 당당하고 투명하게 하기 위해 헌법소원을 택했다. 현재 사전심의를 마치고 본안심의 중이다.

▲ MBC는 윤석열 대통령 비속어 논란을 일으킨 '바이든-날리면' 영상을 유튜브를 통해 제일 먼저 공개했다. MBC 유튜브 채널 갈무리.

"저널리즘에는 '진심'이 담겨야 한다"

프레시안 : 언론인의 한 사람으로, 윤석열 정부가 언론을 대하는 방식은 '무도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박성제 :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의 한자어로 서로 돕는 사이인 둘 중 하나가 망하거나 불행해지면 다른 한쪽도 그렇게 된다는 뜻)'이라는 말이 있다. 'MBC나 공영방송이 무너지는 게 나와 무슨 상관이야? 뉴스도 재미있는 프로그램도 유튜브나 포털 사이트(네이버와 다음 등)에 다 나오는데…' 하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가짜뉴스를 근절하겠다며 유튜브와 포털에 대한 제재 방침을 밝힌 이상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최근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를 만든 이유가 유튜브와 포털도 자신들이 컨트롤하겠다는 것 아닌가.

구글의 콘텐츠 호스팅 웹사이트인 유튜브나 네이버·다음 모두 기업이지 언론사가 아니다. 콘텐츠 하나를 꼭 찍어서 블라인드하거나 내리는 것은 일도 아니다. <프레시안> 기사도 언제든지 네이버나 다음에 반영 안 될 수 있다. 그냥 안 보이게 해버리면 된다. 지금 정부가 이런 마수(魔手)를 뻗치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노림수가 너무 뻔하니까, 투명하게 보이니까 저항은 당연히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이 가만히 있겠는가.

프레시안 : 당장 1차적인 과제가 '살아남는 일'이 된 지금, MBC도 <프레시안>도 어려운 시기를 맞았다. 2차적인 과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제 기능을 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언론 환경이 많이 바뀌었지만, 현 시점에서 '좋은 언론은 이런 것이다'라고 조언해 준다면?

박성제 : 좋은 언론은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인 언론이 아니라 분석과 검증을 통해 사람들에게 판단의 근거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과거 권력을 비판하고 약자를 옹호하는 걸 언론의 역할이라고 했지만, 이런 것은 이제 기본이다. 권력에 대한 비판도, 권력이 하는 말을 검증하면 된다. 검증하고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말하면, 바로 비판이 되는 것이다. 권력자들이 하는, 힘센 사람들이 하는 말과 행동을 검증하고 취재해서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리는 일, 그게 바로 언론의 역할이다.

그리고 '진심'이 담겨 있어야 한다. 언론인 '손석희'가 JTBC를 떠나며 한 <미디어오늘>과의 인터뷰(10월 13일 자)에서 "평소에 진심을 가지고 취재하고 방송하면 그 진심을 세상이 알아주고, 우리가 더 잘 할 수 있게 도와준다고 믿는다"고 했는데, 저널리즘에는 '진심'이 담겨야 한다.

언론은 흔히 '50대 50'으로 받아쓰면서 이를 객관적인 보도라고 한다. 정치 기사에서 많이 나오는 '공방'이라는 제목, 문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검찰의 말을 그대로 받아쓰는 것, 여기에서 탈피해야 한다. 받아쓰는 일은, AI가 더 잘할 것이다.(웃음)

앞으로 저널리스트들에게는 검증과 분석을 통해 진실을 찾아내는 훈련, 이런 시스템이 중요해질 것이다.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공영방송이고, 또 <프레시안>이나 <뉴스타파>와 같은 독립언론이다. 이런 언론을 지키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힘과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언론에 '중립'이나 '객관성'을 강조할 때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려는 의도 말이다. '고통 앞에 중립은 없다'고 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은 언론인들에게도 유효하다. '진실 앞에 중립은 없다.'"(<MBC를 날리면> 197쪽)

▲ <MBC를 날리면> (박성제 지음, 창비 펴냄) ⓒ창비

[이명선 기자(overview@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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