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14조 순익 낸 은행들…역대 최대 이익에도 ‘앓는 소리’
해마다 “경영 여건 나빠졌다”
[주간경향] 국내 은행은 매년 실적을 경신하고 있다. 올 상반기에만 14조1000억원의 순이익을 거뒀다. 전년 동기(9조8000억원) 대비 44% 증가한 수준이다. 은행 실적은 고금리 대출이 늘면서 이자이익이 크게 증가한 데 따른 것이다. 이자이익은 29조4000억원으로 전년 동기(26조2000억원)보다 3조2000억원(12.2%) 늘었다. 은행 실적을 등에 업은 KB·신한·하나·우리 등 주요 4대 금융지주는 올 상반기 9조1824억원을 벌었다. 전년 동기(8조9662억원) 대비 2162억원(2.4%) 늘었다.
고금리가 꺾이지 않고 장기화할 조짐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의 통화 긴축이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고, 한국은행의 추가 금리 인상 압박은 커지고 있다. 한은은 앞서 2021년 8월 기존 연 0.50%였던 기준금리를 현재 3.50%까지 끌어올린 상태다. 금리가 가파르게 오를 동안 대출도 크게 불어났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유동성 팽창과 부동산시장 과열 등 영향으로 불어난 가계대출이 최근 더욱 가파른 상승세를 타고 있다. 주요 5대 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의 9월 말 가계대출 잔액은 682조3294억원으로, 8월(680조8120억원)보다 1조5174억원 증가했다.
“적정한 수익 확보해야 금융 안정”
국내 은행이 상반기 실적을 발표한 지난 8월 29일, 은행연합회는 “지나치게 많은 이익을 남긴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손쉽게 이자장사로 돈 번다’는 일각의 비판 여론을 의식한 항변이었다.
은행연합회는 이날 내놓은 ‘은행 산업 역할과 수익성’ 보고서에서 은행 산업의 본질적 역할은 자금 중개와 지급 결제, 자원의 효율적 배분, 금융시장 안정이라고 강조했다. 이 역할을 수행하려면 외부 충격에 대비한 충분한 자금과 자본을 안정적으로 확보·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은행이 적정한 수익을 확보하지 못해 금융 안전성이 훼손된 대표적인 사례로 미국 실리콘밸리뱅크(SVB) 사태와 같은 뱅크런(대규모 예금 인출)을 꼽았다.
박창옥 은행연합회 상무는 “금리가 오르고 대출이 늘면 은행 수익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 다만 그보다 중요한 은행의 역할은 금융시스템 안정성을 유지하고 사회공헌을 확대하는 일이다. 손실에 대비해 대손충당금을 쌓아두고 소상공인 지원을 늘리는 일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이유에서 자금과 자본을 꾸준히 확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은행연합회는 또 과거 글로벌 금융위기 이전, 미국 등 주요국과 비교해 은행 산업의 수익성이 높지 않다고 강조했다. 2007년과 비교해 2022년 은행 대출자산(989조원→2541조원)과 자기자본(96조8000억원→256조9000억원)은 각 2.5배, 2.6배로 늘었으나, 당기순이익(15조원→18조6000억원)은 2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이는 ROE(자기자본이익률, 당기순이익/자기자본)나 ROA(총자산이익률, 당기순이익/자산)와 같은 은행 수익성을 보여주는 주요 지표에서도 확인된다고 보고서는 적었다. 국내 은행 산업의 2013~2022년 평균 ROE는 5.2로, 미국(10.2)과 캐나다(16.8) 등에 비해 한참 낮다. 같은 기간 0.4인 ROA도 미국(1.5), 캐나다(1.1), 싱가포르(0.9)보다 낮았다. 보고서는 “국내 은행의 ROE가 2000년대 중반 미국 은행보다 높았으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엔 수익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고 적었다.
은행권은 막대한 이익을 거두면서도 매번 경영 여건이 나빠지고 있다고 강변한다. 코로나19 확산 첫해인 2020년에도 그랬다. 은행권은 당시 저성장·저금리 기조 아래 은행 순이자마진(NIM)이 하락하고 코로나19 영향으로 비이자 수익 확대가 어려워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유동성 확대와 집값 상승 영향으로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과 ‘빚투(대출로 투자)’가 늘며 주요 대형은행들은 큰 이익을 봤다. 주요 대형은행들의 2020년 원화대출 실적을 보면, KB국민은행은 295조원의 대출이 실행돼 전년(269조원)보다 9.9% 늘었다. 신한은행은 225조원에서 249조원으로 10.6% 증가했다. 하나은행과 우리은행의 원화대출도 각 9.5%(218조→239조원), 9.8%(220조→241조원) 증가했다. 이에 따라 KB금융, 신한금융, 하나금융 등은 같은 해 각 3조4552억원, 3조4146억원, 2조6372억원의 순이익을 봤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중심으로 대출이 늘고 원리금 상환 부담으로 힘들어할 때 은행권이 ‘돈 잔치’를 벌여 질타를 받기도 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5대 시중은행의 성과급은 모두 1조3823억원으로, 2021년 성과급 총액(1조19억원)보다 약 35%나 늘었다. 주주 배당도 늘었다. 2021년 기준 국내 17개 은행의 배당(현금·주식배당) 합계는 7조2412억원으로, 2020년(5조6707억원)보다 28%나 많았다.
지난 상반기 역대 최대 이익을 내고도 은행권은 여전히 올해도 ‘앓는 소리’를 내고 있다. 최근 경기침체 등의 여파로 연체율이 상승하면서 대손충당금 적립이 늘고 NIM 하락세가 뚜렷하다고 하소연을 한다. 업계에서는 4대 금융지주의 올해 3분기 합산 당기순이익을 역대 최대였던 지난해 3분기(4조8876억원)보다 10%가량 줄어든 4조4000억원 정도로 전망한다.
금융권 관계자는 “당장 은행권 경영을 위협할 만한 요인은 눈에 띄지 않는 반면 고금리 장기화로 이자이익은 지속적으로 커질 가능성이 높다. ‘경영 여건이 나빠졌다’는 은행권의 우려는 ‘이자장사로 돈 번다’는 비판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엄살’에 가깝다”고 말했다.
“여전히 고수익, ESG 경영 중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수익성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는 은행연합회 주장에 대한 반론도 나온다. 금융경제연구소가 지난 9월 18일 펴낸 ‘국내 은행의 수익성 추이와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2005~2007년은 기준금리(3.25~5%)가 2020~2022년의 기준금리(0.5~3.25%)보다 높은 수준이어서 자산 및 대출의 크기에 비해 당기순이익이 높았다. 이로 인해 예외적으로 ROA가 높았던 시기였다. 근래 들어서는 기준금리를 5% 가까이 높게 책정하기가 쉽지 않고, (분모격인) 자산도 당시와 비교해 크게 증가한 상황이다. 보고서는 “ROA가 높았던 당시는 현재와 다른 경제 여건으로 인한 예외적인 시기였다. 현재의 ROA와 단순비교해 수익성을 더 높여야 한다는 주장은 적절치 않다”고 했다.
은행 수익성 지표에서도 은행연합회와 상반된 결과를 내놨다. 보고서가 세계은행 데이터베이스를 인용해 정리한 해외 주요국의 은행 수익성 지표를 보면, 2021년 기준 국내 은행의 ROA는 0.5%로 프랑스(0.27%), 일본(0.15%), 독일(0.05%) 등과 비교해 높은 수준이었다. ROE(7.2%)도 영국(7.0%), 프랑스(6.7%), 일본(3.6%), 독일(1.0%) 등에 비해 높았다. 이에 대해 박창옥 은행연합회 상무는 “당시 일본과 유럽 등은 경기침체와 디플레이션(물가 하락)을 극복하기 위해 제로금리를 넘어 일부에선 마이너스 금리 정책까지 시행 중이었다. 단순 비교는 무리가 있다”고 했다.
은행권은 비이자이익 비중 확대와 금융의 디지털화 대응, 글로벌 경쟁력 강화 등을 위해 금산분리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요구한다. 당국도 금융사의 비금융업 진출 허용 등을 골자로 하는 금산분리 완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나 실물경제 침체가 길어지는 상황에서 금융사가 비금융 영역으로 무분별하게 사업을 확장할 경우 골목상권을 침해한다는 우려와 맞닥뜨릴 수 있다.
이강원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원은 “비이자이익을 끌어올린다고 해서 이자이익이 줄어들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규제 완화가 필요한지 의문스럽다”고 했다. 그보다는 다양한 이해관계자의 참여와 소통에 기반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주문이다. 이강원 연구원은 “은행권이 강조하는 ESG 경영은 벌어들인 이익금으로 기후위기 대응을 하고, 사회공헌활동을 확대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 과정에서 환경단체나 기업, 노조 등 이해관계자들과 협업하고 소통해야 한다. 이런 노력은 정부의 입김이나 방침과는 별개로 은행권이 선도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관치금융 논란에서도 자유로울 수 있다”고 말했다.
안광호 기자 ahn7874@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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