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훔볼트포럼 한국유물특별전서 日머리장식 한국비녀로 소개
"훔볼트포럼 소속기관 소장품 식민지 관련 맥락 몰두 주제"
(베를린=연합뉴스) 이율 특파원 = 한해 300만명이 찾는 독일 베를린의 훔볼트포럼이 연 한국유물 특별전에서 일본의 머리 장식으로 추정되는 유물을 한국 비녀로 소개하는 등 전시설명이 오류투성이인 것으로 드러났다.
일본인이 찍은 것으로 추정되고 이후 일본인이 발행한 사진집에 수록된 젖가슴을 드러낸 조선 여인의 사진에 대해 독일인이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아들을 낳은 것을 자랑하기 위해 가슴을 드러낸 것이라는 서구인들의 속설도 검증 없이 소개했다.
'식민주의 반성'을 기치로 내건 훔볼트포럼이 맥락 없이 19세기 독일 외교관이나 상인들이 사 온 조선시대 유물을 양반, 군복, 여성용품, 모자, 탈 등으로 분류, 단순 소개해 19세기 타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조선을 여과 없이 보여주면서 식민주의적 시각을 답습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17일 연합뉴스가 국내 박물관 전문가들에게 훔볼트 포럼 아시아예술·민속학 박물관의 한국유물특별전 전시유물과 관련해 자문한 결과, 훔볼트 포럼은 조선 여성들이 사용한 용품을 소개하면서 일본 여성의 머리 장식인 칸자시(簪)로 추정되는 유물을 20세기 전반 한국 비녀로 소개했다.
복수의 복식사·민속품 전문가들은 이 머리장식이 한국산이 아닌 것은 확실하다고 밝혔다.
일본 머리장식 옆에 전시된 출처 미상의 조선시대 일반 비녀는 용잠으로 소개돼 있다. 용잠은 끝부분에 용처럼 보이는 장식이 있어야 하는데 해당 비녀에는 그런 장식이 없다.
또 조선의 군복 관련 유물 중 갑옷 어깨 위 용 장식을 용잠이라고 칭하면서 실제로 여성용 머리장식으로 비녀의 일종인 용잠을 전시했다. 역시 출처는 미상이다.
양반 관련 유물 중에는 코담배통을 노리개라는 이름 아래 전시했는데, 이는 향을 넣는 통인 향낭으로 추정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특별전에서는 훗날 독일 쾰른의 동아시아예술박물관을 설립한 아돌프 피셔가 1905년 직접 찍은 것으로 추정된다며 젖가슴을 드러내고 항아리를 든 조선의 여성 사진이 전시됐다.
하지만, 이 사진은 1880년대 중반 일본인이 찍은 것으로 추정되며, 일본인이 운영하는 경성사진관이 발행한 한국풍속풍경사진첩에 수록돼 있다.
역사학자 석지훈(연세대 박사과정)씨는 "이 사진은 1890년대 중반부터 유통됐고 1880년대부터 한국에서 활동한 일본인 상업사진사 히구치 사이조에 의해 촬영된게 아닌가 보고 있다"면서 "당시에는 저작권개념이 없어 외국 여행자 중 원판을 사 와서 자기가 찍은 사진이라고 주장하는 경우가 허다했다"고 말했다.
'자랑스러운 어머니들'이라는 제목의 사진 설명에는 조선시대 중기부터는 아들만 유산상속을 받을 수 있고 가문을 이을 수 있어 여성들이 아들을 낳으면 매우 자랑스러워했다며 하류계층 여성들은 항아리를 든 이 여성처럼 수유하는 젖가슴을 드러내면서 자신이 아들을 낳았음을 보여줬다고 기재됐다.
2008년 발표된 '조선 여성의 젖가슴 사진을 둘러싼 기억의 정치' 논문에 따르면 조선 여인이 젖가슴을 노출하고 있는 이유를 조선 사회에서 아들을 낳은 것에 대한 자랑의 표식이라고 최초로 기록해 공식화를 시작한 것은 서구인들이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 일본인과 서구인들에 의해 제작된 '젖가슴 사진'은 일본인에게는 피식민지의, 서구인에게는 동양의 열등한 풍속을 암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특별전에서는 또 한국은 '모자의 나라'라며 갓과 흑립, 금관, 초립, 탑건 등 조선시대 쓰인 모자들을 전시하면서 가장 중앙에는 베를린 모자장인 피오나 베네트가 협업 차원에서 제작한 K-팝, 전통, 지식 오트쿠튀르 모자를 구분 없이 전시했다.
이와 함께 탈 21개도 전시했는데 1891년 독일 외교관 막스 폰 브란트가 기증한 방상시탈을 제외하면 거의 모두 1970년대 탈로 추정돼 조선시대 것이 아니었다.
훔볼트 포럼은 한국유물특별전 '아리아리랑-폐쇄된 왕국에 대한 매혹'에서 프로이센문화유산재단 민속학박물관에 소장된,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조선시대(1392~1910) 등의 한국 유물 1천800여점 중 120점을 선별해 내년 4월 20일까지 선보이고 있다.
지난해 10월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관 전담 큐레이터를 뽑은 뒤 기획한 첫 전시로, 훔볼트포럼 민속학박물관 한국 소장품에 대한 연구프로젝트가 전시의 학술적 기초를 제공했다고 훔볼트 포럼측은 소개했다.
헤르만 파칭어 독일 프로이센 문화유산재단 이사장은 지난 12일(현지시간) 열린 전시 개막식 축사에서 "훔볼트포럼 소속기관으로서 우리 소장품의 식민지와 관련한 맥락은 소장품 책임자로서 우리가 항상 몰두하는 주제"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은 서구박물관에서 소장품 규모상 상대적으로 열세인데, 이번과 같은 전시를 통해 한국에 여력을 더 주는 게 중요하다고 본다. 지금 한국은 이곳에서 존재감이 있다"면서 "한국관에 다시 생기를 불어넣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진 독일 정치+문화연구소장은 "식민주의에 대한 성찰은 유물 수집의 불법성을 따지는 기술적 측면에 국한되지 않는다"며 "19세기 서구 제국주의가 일본 제국주의로 모방되는 과정에서 진행된 조선 유물 수집의 역사적 맥락을 밝히고, 새로운 기획으로는 기존 전시에 담겼던 한반도 문화 및 미의식에 대한 식민주의적 시선을 드러낼 수 있어야 훔볼트 포럼의 원 취지에 부합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독일의 21세기 최대 문화 프로젝트로 꼽히는 훔볼트 포럼은 과거 제국주의를 상징하던 프로이센 왕궁을 재건한 건물에 들어선 복합공간으로, 식민주의 역사에 대한 반성을 담아 아시아와 남미, 아프리카 등 비유럽권 문화·예술을 전시하며 역사와 과학, 사회에 대한 토론장을 지향한다.
yulsid@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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