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간 6만명 홀린 ‘소리 장인’ 김동률...“더 멋있게 나이 들어 만나자”
‘요즘 콘서트에선 참 쉽게 보기 어려운 광경의 연속’. 지난 15일, 서울 송파구 KSPO돔(옛 올림픽체조경기장)에서 6회째 공연의 막을 내린 가수 김동률(49)의 무대에 든 생각이었다. 그는 이곳에서 지난 7일~15일 4년 만의 단독공연 ‘멜로디(Melody)’를 열었다. 스스로를 “월드컵형 가수”로 칭할 만큼 공연도 신곡도 대중 앞에 내보이는 속도가 더디기로 유명한 이 가수는 지난 5월 선보인 신곡 ‘황금가면’도 4년만의 결과물이다. 그만큼 그의 귀환을 학수고대했던 팬들이 몰리면서 총 6회차, 6만석 규모의 이번 공연 티켓은 이미 지난 8월 예매 시작 1분 만에 매진됐다.
15일 오후 6시부터 빽빽하게 1만여 객석이 들어찬 김동률의 마지막 공연에서 가장 먼저 볼 수 없던 건 바로 ‘휴대폰 불빛’. 주최측 당부에 따라 관객들이 철저히 사진과 동영상 촬영을 자제했기 때문이다. 김동률의 히트곡은 다수가 잔잔한 곡들이다. 그가 무대가 지나치게 밋밋해지는 걸 막기 위해 ‘빛의 향연’으로 호평 받을 만큼 매 공연마다 조명을 다채롭게 써온 이유이다. 이날도 첫 곡 ‘사랑한다는 말’을 시작으로 총 22곡을 열창하는 동안, 150bpm(통상 댄스 곡은 120bpm 이상) 수준의 ‘황금가면’ 딱 1곡만이 안무 팀을 동원해 춤을 선보일 만큼 경쾌한 무대였다. 그만큼 여타 공연에 비해 휴대폰 불빛 방해를 받기 쉬워 이를 막기 위한 특단의 조치가 내려진 것이었다. 사실 1만석에 가까운 대중가요 객석에선 자주 어겨지는 조치이기도 했다. 그런데 이날 공연 객석들은 일사불란하게 흑색을 띄었다. 마치 어렵게 얻은 티켓으로 김동률의 목소리를 최대한 잘 듣고 가고야 말겠다는 집념이 느껴지는 것만 같았다.
‘떼창’도 거의 전무했다. 김동률 특유의 감미로운 중저음 음색에 집중하고자 관객들은 공연 내내 자발적으로 소리를 줄였다. 이날 김동률은 “평소 공연 대비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곡을 선곡했다”고 했다. ‘이방인(1996)’ ‘취중진담(1996)’ ‘기억의 습작(1994)’… . 1990년대 청춘 시절을 자극하는 그의 히트곡이 줄줄이 이어졌고, 개중 애창곡을 만난 일부 관객은 입만 뻥끗하며 따라불렀다. 공연 중 유일하게 객석이 떠들썩했던 순간은 ‘다시 사랑한다 말할까’를 부르던 김동률이 귓가에 손을 갖다 대며 떼창을 유도했던 10초간, 공연 막바지 팬들이 직접 김동률의 곡 ‘멜로디’ 1절을 부르며 앙코르를 요청하던 순간, 그리고 박수를 칠 때 뿐이었다. 장내가 어찌나 고요한지 인근 올림픽공원 88잔디마당에서 열린 팝페라 그룹 ‘포레스텔라’의 야외 공연 소리가 김동률의 노래가 잠시 멈출 때는 또렷하게 들려왔다.
‘컴퓨터 전자음’도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김동률은 이날 “노트북 한대로 음악을 뚝딱 만들 수 있는 세상이 되어 좋은 점도 있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저는 사람의 숨결과 손으로 빚어진 소리가 좋다”고 했다. 평소 ‘소리의 완벽주의’를 표방하는 그답게 무대 위에는 막이 오르는 순간부터 온갖 ‘수제 소리’들로 중무장시킨 그만의 ‘음악 부대’가 등장했다. 7인조 풀 세션 밴드에 코러스 8명, 브라스 6명, 특히 지휘자가 딸린 22인조 오케스트라가 아름다운 현악 스트링 선율을 즐겨 쓰는 김동률표 곡들을 완벽히 무대 위로 옮겨 냈다.
김동률은 이 자신만의 음악 부대를 통해 탱고 버전 ‘망각’, 라틴음악 풍 ‘아이처럼’ 등 이 공연에서만 들을 수 있는 다채로운 편곡들로 펼쳐 냈다. ‘이방인’ ‘리플레이’ 등 일부 곡은 “직접 연주하면 밴드와 오케스트라에 소속된 느낌이 좋다”며 피아노를 치며 불렀고, 곡이 끝나기도 전 일부 관객은 눈가를 훔쳤다. 탱고버전으로 편곡한 ‘연극’은 마치 영화 ‘위대한 쇼맨’의 주인공처럼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불렀는데, 그의 열창이 끝난 순간 객석에서 박수와 함께 “(너무 잘해) 미쳤나봐”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날 무대는 올해 같은 공연장에서 열린 단독 무대 중 가장 긴 편인 ‘150분’으로 진행됐다. 대중가요 공연으로는 드물게 화장실 다녀올 중간 시간이 10분 가량 주어졌지만, 이 완벽주의 가수는 이마저도 제대로 허용하지 않았다. 이 사이 순간조차 반도네오니스트 ‘고상지’와 바이올린, 피아노, 콘트라베이스가 자신의 히트곡 ‘쇼’ 등을 협주하게 했고, “화장실이 정 급하면 다녀오셔도 되지만 아쉬울 거다”며 짓궂게 웃었다.
이날 선곡 중 가장 눈길을 끈 건 김동률의 데뷔곡 ‘꿈속에서’. 그가 서동욱과 듀오 ‘전람회’로 1993년 문화방송(MBC) 대학가요제에 나가 대상을 받은 노래다. 재즈풍 발라드인 원곡 느낌을 충실히 선보인 김동률은 데뷔 당시 일화도 들려줬다. “원래 대학가요제에 ‘쇼(가수 김원준에게 1996년 준 댄스곡)’로 나가려 했는데 참가 직전 드러머가 팀을 탈퇴했다. 그래서 급조한 게 ‘꿈속에서’. 만일 ‘쇼’로 나갔다면 지금의 저는 없지 않았을까”라며 순식간에 관객들을 30년 전으로 데려갔다.
공연 막바지에는 “다음달 신곡을 낼 계획”이란 깜짝 발표를 했다. “이 나이에 히트곡을 바라진 않지만 그래도 반응을 남겨주면 큰 힘이 된다”며 “오래 음악을 하는 사람으로서 가끔 ‘옛날의 나’를 이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역시 가장 큰 라이벌의 과거의 저인 것 같다”고 해 환호를 자아냈다. 이어 그가 웃으며 건넨 마지막 인사에 관객들은 모든 공연이 끝나고, 막이 내린 후에도 수분 동안 박수를 쏟아내며 자리를 지켰다. “우리, 조금 더 멋있게 나이 들어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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