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닥치겠다…어, 어" 급발진 의심 사망 도현이의 마지막 음성

유영규 기자 2023. 10. 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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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12월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 당시 모습

지난해 12월 강릉에서 이도현(사망 당시 12세) 군이 숨진 차량 급발진 의심 사고의 책임 소재를 둘러싼 민사소송이 진행 중인 가운데 사고기록장치(EDR) 감정에 이어 블랙박스 영상 음향분석 감정에서도 국립과학수사연구원(국과수)과 상반되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처음 급가속 현상이 나타나면서 모닝 승용차를 추돌했을 당시를 두고 국과수는 '운전자가 변속레버를 굉음 발생 직전 주행(D)→중립(N), 추돌 직전 N→D로 조작했다'는 결론을 내린 반면 법원에서 선정한 감정기관은 '변속레버 조작은 없었다'는 결론을 내놨습니다.

그동안 급발진 의심 사고와 관련된 민·형사 소송에서 전문 증거로 활용된 국과수의 감식 결과에 배치되는 사설 전문기관의 결과가 잇따라 나오면서 국과수 분석 결과의 신뢰성에 대한 법원의 판단에 변화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번 감정을 통해 그동안 확인되지 않았던 도현 군의 마지막 음성도 관찰됐습니다.

운전자 A 씨(원고) 측이 제조사를 상대로 낸 약 7억 6천만 원 규모 손해배상 소송을 심리하고 있는 춘천지법 강릉지원 민사2부(박재형 부장판사)에서 진행한 음향분석 감정 결과가 최근 나왔습니다.

감정인은 엔진에서 '웽'하는 굉음이 나기 시작한 뒤 모닝 승용차를 추돌하기 전에 변속레버를 D에서 N으로, 또 N에서 D로 변경하는 소리가 들리는지 분석했습니다.

이를 위해 같은 연식의 차량에서 변속 시 나는 소리를 채취해 이번 사건 사고 차량의 블랙박스에 녹음된 소리와 비교·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감정인은 "이번 사건의 사고 당시 상황을 일부 재연한 조건에서 변속레버를 D→N, N→D로 반복 조작하며 채취한 음향 데이터와 동일성을 보유한 음향정보는 사고 차량에서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이는 '운전자가 사고 직전 기어를 D에서 N으로 바꿔 가속페달을 깊게 밟았고, 이후 D로 전환하면서 모닝 차량을 추돌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국과수 감정 결과와 어긋나는 결론입니다.

줄곧 '가속페달을 밟지 않았다'고 주장한 원고 측의 주장을 강화할 수 있는 결과이기도 합니다.

원고 측 소송대리를 맡은 법률사무소 나루 하종선 변호사는 "국과수는 감정인이 한 음향분석과 동일한 분석을 할 수 있다"며 "음향분석만 제대로 해도 기어를 조작한 사실이 없다는 점이 확인됨에도 불구하고 국과수가 운전자에게 과실이 있었다는 누명을 씌웠다"고 꼬집었습니다.

기어를 조작하지 않았다는 감정 결과는 '자동 긴급 제동장치(AEB) 미작동' 문제와도 연결됩니다.

원고 측은 줄곧 사고 전 '전방 추돌 경고'가 울렸음에도 AEB가 작동하지 않은 점을 문제 삼았습니다.

하지만 제조사 측은 'AEB는 가속페달 변위량이 60% 이상이면 해제된다', 즉 60% 이상의 힘으로 가속페달을 밟았다면 AEB가 작동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결함을 부정했습니다.

가속페달 변위량은 가속 정도를 퍼센트(%)로 변환해 나타내는 기록으로, 99%부터 '풀 액셀'로 평가됩니다.

사고 차량의 EDR은 A 씨가 사고 전 마지막 5초 동안 '풀 액셀'을 밟았다고 기록했습니다.

그러나 5초 동안 속도는 시속 110㎞에서 116㎞밖에 증가하지 않았다고 기록했습니다.

이를 분석한 국과수는 'AEB는 운전자에 의해 해제되어 작동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며 제조사 측 주장과 궤를 같이했습니다.

그러나 원고 측은 '운전자는 풀 액셀을 밟았다'고 말하는 사고 차량의 EDR 기록과 모순되는, 풀 액셀 상태에서는 발생하기 힘든 '속도 증가 결여'와 'RPM 저하' 현상을 들어 EDR의 신뢰성과 국과수 결과를 부정해왔습니다.

음향분석 감정보다 먼저 결과가 나온 EDR 전문감정 결과 '충돌 5초 전 가속 페달을 최대로 작동시켰다면 최소 시속 125㎞ 이상은 됐을 것이며, 변속장치에 손상이 없었다면 시속 140㎞가 넘었을 것'이라는 분석은 원고 측의 이 같은 주장에 더욱 무게를 실었습니다.

음향분석 결과대로 변속레버의 작동이 없었고 EDR 감정 결과대로 풀 액셀을 밟았다는 보기 어렵다면, 결국 제조사의 주장과 국과수의 분석처럼 'A 씨가 60% 이상의 힘으로 가속페달을 밟았다'고 보기 어렵습니다.

또 이는 곧 AEB 미작동 원인이 A 씨에게 있지 않다고 볼 수 있습니다.

사고 차량의 엔진구동음 주파수(왼쪽)와 정상 차량의 주파수


사고 차량에서 발생한 엔진음 역시 같은 연식의 차량에서 나는 엔진음과 달랐습니다.

감정인은 사고 차량에서 발생한 엔진음의 변화와 비교 차량에서 제로백(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까지 걸리는 시간) 가속 시 발생하는 엔진음의 음향학적 특성을 비교·분석했습니다.

그 결과 엔진구동음 주파수는 맨눈으로 봐도 구분될 정도로 차별성이 관찰됐습니다.

즉, 사고 차량의 가속이 '정상 상태에서의 가속'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또 이번 음향분석 감정에서는 충돌 직전 도현 군의 음성도 확인됐습니다.

감정인이 녹취록 전체를 미세 구간별로 반복하며 정밀 분석한 결과 도현 군은 모닝 차량과 부딪치기 전 비교적 차분하고 침착한 말투로 "부닥치겠다"라고 말했습니다.

불과 5초 뒤 A 씨가 "이게 왜 안 돼", "도현아"라고 소리 높여 불렀을 때는 공포에 질린 듯한 어조로 "어, 어"라고 말한 것으로 분석됐습니다.

고(故) 이도현 군의 아버지이자 운전자인 60대 A 씨의 아들인 이 모 씨는 "운전자 과실로 결론 낸 국과수와 달리 음향학적 분석을 통해 어머니에게 과실이 없다는 사실이 명명백백히 밝혀졌다"고 말했습니다.

이 씨는 "제조사에서 어떤 주장으로 진실을 왜곡할지 모르겠으나 아들을 떠나보내야 했던 급발진 사고의 진실을 밝히고, 어머니가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할 마음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고자 '자동차의 결함으로 급발진이 발생했다'는 사실을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인정받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강릉 급발진 의심 사고 선처 탄원서


지난해 12월 6일 강릉시 홍제동에서 60대 A 씨가 손자를 태우고 운전한 스포츠유틸리티차(SUV)의 급발진 의심 사고가 발생해 12살 손자가 숨졌습니다.

이 사고로 A씨가 교통사고처리 특례법상 치사 혐의로 입건돼 지난 3월 경찰조사를 받았습니다.

또 A씨 가족이 지난 2월 국회 국민동의 청원에 올린 '급발진 의심 사고 발생 시 결함 원인 입증 책임 전환 청원' 글에 5만 명이 동의하면서 관련법 개정 논의를 위한 발판이 마련됐습니다.

(사진=강릉소방서 제공, 감정서 갈무리, 연합뉴스)

유영규 기자 sbsnewmedia@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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