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애뜰’ 시위 가능한데 ‘허가’받아야
‘허가’ 조항은 판단 안 해 아쉬움 남아
시민에 개방된 광장에서 집회·시위를 원천 금지한 조례는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나왔다. 헌재는 해당 조례가 집회·시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헌재는 광장에서 집회·시위를 개최하기 전에 지방자치단체의 ‘허가’를 받아야 한다는 조항을 두고는 위헌 여부를 판단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다소 아쉬운 결정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간 이런 내용의 조례가 집회의 허가제를 금지한 헌법과 배치돼 위헌성이 짙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된 터다.
“집회 장소로 상징성 큰 곳”
헌법재판소는 지난 9월 27일 인천시의 ‘인천애(愛)뜰의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 가운데 제7조 제1항 제5호 가목은 위헌이라고 밝혔다. 재판관 9명 전원 일치 의견으로 이같이 결정했다. 해당 조항은 인천애뜰 내 잔디마당에서 집회·시위를 아예 금지하는 내용이다.
인천시는 2019년 11월 청사 담장을 허물고 그 앞에 인천애뜰을 조성해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인천애뜰은 잔디마당, 바닥분수광장, 음악분수광장 등 3곳으로 나뉜다. 인천시는 해당 조례도 함께 제정했다. 조례는 기본적으로 인천애뜰을 사용하려면 시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또 시청사 바로 앞에 조성된 잔디마당에서는 집회·시위를 무조건 금지토록 했다. 잔디마당은 시의 청사부지(행정재산)라는 점 등이 근거였다. 청사에서 조금 떨어진 바닥분수광장과 음악분수광장에서는 허가를 받으면 집회를 할 수 있다. 인천차별금지법제정연대 준비위원회 등 시민사회단체가 그해 12월 잔디마당에서 집회를 열겠다고 신청서를 제출했으나 인천시는 조례를 근거로 불허했다. 그러자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인천지부 등은 해당 조례가 위헌이라며 헌재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헌재는 집회 금지 조항이 ‘침해의 최소성’과 ‘법익의 균형성’을 갖추지 못했다며 위헌이라고 판단했다. 헌재는 우선 “집회 장소는 집회의 목적·효과와 관련해 중요한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집회 장소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어야 집회의 자유가 비로소 효과적으로 보장된다”고 전제했다. 이는 그간 헌재가 일관되게 견지해온 견해다.
헌재는 잔디마당 또한 주변에 인천시, 시의회, 시교육청 등이 들어서 있는 점을 거론하며 “상징성이 큰 곳”이라고 했다. 이어 “이런 장소적 특성을 고려하면 집회의 장소로 잔디마당을 선택할 자유는 원칙적으로 보장돼야 한다”고 밝혔다.
인천시는 잔디마당이 시청사 부지에 속한다는 점을 집회 금지 이유로 들었다. 또 바닥분수광장 등 다른 공간에서는 집회를 개최할 수 있기 때문에 집회의 자유를 위축시키지 않는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헌재는 그러나 이런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헌재는 “바닥분수광장은 시청사에서 상대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집회·시위의 효율적인 목적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라며 “바닥분수광장에서 집회를 개최할 수 있다는 점이 잔디마당에서 집회를 금지하는 것에 대한 대안이 될 수는 없다”고 일축했다.
헌재는 인천시가 집회를 전면 제한하지 않더라도 방호인력 확충 등을 통해 시청사의 안전과 기능을 확보할 수 있다고 봤다. 또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이 적용되기 때문에 폭행 등 직접적인 위협이 발생할 수 있는 집회는 경찰의 금지·제한 통고 등을 통해 대응하는 방법도 존재한다고 했다.
헌재의 위헌 결정으로 해당 조항은 즉시 효력을 상실했다. 잔디마당에서도 집회 개최가 가능하게 됐다는 뜻이다. 인천시는 헌재 결정의 내용과 취지를 반영해 조례를 개정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인천시 관계자는 “잔디마당에서 집회를 개최하겠다는 신청이 들어오면 시가 허가하는 내용으로 조례가 개정될 것 같다”라며 “다만 현재까지 바닥분수광장 등에서의 집회 개최 신청이 들어오면 반려한 적이 없어 사실상 신고제로 운영해왔기 때문에 잔디마당도 같은 방식으로 운영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지자체의 ‘집회 허가 권한’ 논란 지속
애초 헌법소원 청구인 측은 집회를 개최하기 위해서는 인천시의 허가를 받도록 하는 내용의 조항을 두고도 위헌 여부를 판단해 달라고 했다. 헌법은 집회의 허가제를 금지한다. 이 때문에 광장에서 집회를 개최할 때 인천시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건 헌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다른 여러 지자체에서도 집회 개최 전에 허가를 받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조례를 운영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서울시의 ‘광화문광장 사용 및 관리에 관한 조례’다. 광화문광장을 사용하려면 기본적으로 허가를 받아야 하고, 더불어 ‘건전한 여가선용과 문화활동’이라는 사용 목적에 부합하지 않으면 사용을 제한할 수 있도록 한다. 서울시는 지난해 10월 시민사회단체가 집회를 열겠다며 제출한 사용신청을 반려한 바 있다. 인천, 부산, 대전 등의 도시공원 관련 조례에도 집회를 위해 공원을 사용하려면 허가를 받도록 한다. 지자체 측은 공유재산법에 따라 행정재산의 사용허가 권한을 보유하고 있기 때문에 집회 또한 허가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처럼 지자체의 집회 허용 권한을 두고 ‘헌법 위배’와 ‘정당한 권한’이라는 견해가 대립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따라 헌재가 이번 헌법소원심판에서 이 부분을 명확하게 판가름하면 논란이 정리되리란 기대가 있었다.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린다면 다른 지자체의 조례에도 영향을 끼치는 등 파급력이 상당히 클 것으로 전망됐다.
그러나 헌재는 이 조항들을 이번 심판 대상에 넣지 않았다. 헌재는 결정문에서 “(집회·시위를 금지한 조항을) 제외한 나머지 조항들에 대해서는 해당 조항 고유의 위헌성에 대한 구체적인 주장을 하고 있지 않으므로 심판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한다”고 밝혔다.
청구인 측을 대리한 박한희 변호사(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는 “헌법소원을 낼 때 집회 허가제를 금지한 헌법을 위반했다는 점을 충분히 주장했는데 아쉬움이 있다”라며 “이런 조례들에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집회·시위를 ‘공공질서 문란행위’라고 표현하고 제한 사유로 규정하거나 종교·노동·정치집회 등 특정 종류의 집회만 금지 대상으로 둔 조례들도 위헌 소지가 크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인천차별금지법제정연대와 민변 등은 헌재 결정 직후 성명을 내고 “인천시를 비롯해 전국 지자체는 공공청사 부지와 광장 등 시민들에게 열려 있어야 할 공간에서의 집회·시위를 통제하는 조례들은 폐지해야 한다”고 밝혔다.
정희완 기자 ros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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