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개의 전쟁'에 쪼개지는 세계 경제…최악의 시나리오는?
‘두 개의 전쟁’이 글로벌 경제에 몰고올 파장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20개월 만에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면서 유가상승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등 글로벌 경제가 충격을 받고 있다.
코로나19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공급망이 재편되고 물가가 치솟은 세계 경제에 돌발 변수가 추가된 것이다.
하반기 금리 인상 기조를 종료하려 했던 미국 중앙은행(Fed)의 셈법은 더욱 복잡해졌고, 우리나라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의 불확실성도 커졌다.
이란 개입 시 GDP 1.7% 하락, 유가 150달러
“전쟁은 마침내 연착륙하려는 중앙은행들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제이 방가 세계은행(WB) 총재는 10월 10일 모로코 마라케시에서 진행 중인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WB) 합동 연차총회’에서 취재진과 만나 “세계 경제가 허약한 상태”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직후 때처럼 에너지와 식량 가격이 급등할 경우 각국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을 막기 위해 고금리 기조를 이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지난해 2월 에너지·식량 주요 수출국이었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터지자 세계식량가격지수는 그해 3월 역대 최고치(159.7p)를 찍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은 물가 상승뿐 아니라 세계가 식량과 자원을 무기화하는 극단적인 보호무역주의로 이어졌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러시아·우크라이나와 달리 석유 생산국이나 식량 자원국은 아니다. 하지만 주변국들이 관여할 경우 일이 커진다.
미국은 당초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 간 관계 개선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미국-이스라엘-사우디’의 3각 협력 구도를 만들려고 노력해 왔다. 중동에서의 영향력을 확대하고 중국과 이란을 견제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번 충돌로 이스라엘의 우호국인 ‘미국’과 팔레스타인을 지지하는 ‘아랍’의 대립 구도가 도드라지게 됐다.
이 상황에서 '이란 개입'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현실이 되면 국제 유가가 배럴당 150달러까지 치솟고,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은 1.7%로 떨어질 것이라는 블룸버그의 관측이 나왔다.
블룸버그는 “(GDP 증가율 1%포인트 하락은) 세계 생산이 1조달러(약 1355조원)어치 증발하는 경기 침체”라며 “1973년 아랍-이스라엘 전쟁 때 석유 파동으로 촉발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 속 물가 상승)이 명확한 예”라고 설명했다.
당시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 우방 국가에 원유 수출을 중단하면서 유가는 1년 만에 네 배가량 올랐다.
국제유가는 전쟁 발발 후 10월 9일 4% 이상 오르며 폭등했지만 하루 만에 하락하며 안정세를 찾았다. 하지만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지상군 투입 우려로 지난 13일 국제 유가는 다시 5% 넘게 급등했다.
유럽, 러시아 이어 중동 가스까지 막히나
유럽에도 불똥이 튀었다. 이스라엘 정부가 10월 9일 지중해 동부의 타마르 가스전 생산을 중단시키면서 천연가스 공급에 차질이 생겼다. 타마르 가스전은 총 8개 유정을 통해 연간 약 100억㎥의 가스를 생산한다.
이 생산량은 이스라엘 전체 전력 생산에 필요한 에너지원의 약 70%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스라엘이 가스전을 폐쇄하자 유럽 가스 가격지표인 네덜란드 TTF(Dutch Title Transfer Facility) 가격은 12% 급등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에 기습 공격을 시작하기 직전 거래일인 6일과 비교하면 29% 상승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은 이미 최대 가스 공급국가였던 러시아가 2022년 8월 유럽으로 가는 천연가스관인 노르드스트림 가동을 중단하면서 심각한 에너지 대란을 겪었다. 유럽 가스 가격은 2022년 8월 사상 최고가인 1메가와트시(㎿h)당 343유로까지 올랐다. 이후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그 대안 중 하나가 중동 공급업체였다.
하지만 중동에서마저 가스전이 막히면 에너지 가격 상승 가능성이 커지면서 유럽 전역이 추운 겨울을 맞이할 수 있다. 에너지 공급에 차질이 생기면 유럽의 산업 활동이 영구적으로 위축될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유럽의 경제 상황은 이미 암울하다. 전쟁은 러시아가 하는데, 경제성장률은 유럽이 더 낮다. IMF는 유로존 성장률을 올해 0.7%, 2024년 1.2%로 하향 조정했다. 이는 IMF가 올해 성장률을 2.2%로 예측하고 내년에는 1.1% 성장률로 하락할 것으로 예상하는 러시아 경제보다 낮은 수치다.
워싱턴포스트는 이를 두고 “유럽 경제가 중동 전쟁으로 글로벌 긴장이 고조되는 가장 한복판에 놓였다”고 평가했다.
갈등경제가 세계를 쪼갠다
세계 경제에 놓인 갈등은 무력 충돌뿐만이 아니다.
하이투자증권은 기술패권을 둘러싼 미·중 갈등, 글로벌 패권을 둘러싼 미·러 갈등, 에너지 패권 싸움으로 볼 수 있는 미·사우디 갈등에 속에 대선을 앞두고 있는 미국 내 정치 갈등까지 다양한 ‘갈등 리스크’가 겹쳤다고 평가했다.
이어 예상치 못한 ‘갈등경제’가 글로벌 경기 회복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전망했다.
갈등은 세계 경제를 쪼개놨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세계 경제가 친미와 친러 진영으로 나뉘었고 여기에 또 다른 전쟁이 발발하면서 이를 두고 서방과 러시아, 중국, 아랍이 각각 다른 입장을 취할 수 있다. 분열은 세계 경제 성장의 발목을 잡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에 따르면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 대한 침략 전쟁을 일으킨 이후 미국·유럽연합(EU)과 중국·러시아로 대변되는 두 블록 사이의 무역 규모 확장세는 동맹국 내부의 무역 규모보다 4~6%가량 뒤처졌다.
다른 가치관을 가진 나라끼리의 교역이 둔화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는 세계 무역량에도 불똥을 튀기고 있다.
최근 WTO는 “올해 세계 상품 무역 증가율이 지난해보다 0.8% 증가하는 데 그칠 것”이라고 밝혔다. 올 4월 전망(1.7%)에서 불과 반년 만에 수치를 반으로 낮췄다. 지정학적 긴장이 하향 조정의 이유였다.
김영은 기자 kye0218@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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