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지탐사] 꼬질꼬질해진 모습으로 이별의 악수…대원들은 훌쩍 커있었다
라일라 북봉 등정
딱 10년 전인 2013년, 난 한국청소년 오지탐사대 대원이었다. 그때 처음 아웃도어를 접했다. 그리고 10년이 흐른 지금, 나는 지도위원으로 다시 오지를 찾게 됐다.
오지탐사대는 두 달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은 활동을 한다. 단순하게 산 한 개 등정하는 걸 목적으로 탐사를 다녀오는 것이 아니기에 다양한 무기들을 가지고 있는 대원 하나하나가 정말 귀하고 필요하다. 그리고 이런 대원들이 모여 팀의 색깔이 정해진다.
우리 팀 대장님은 설악산에서 오랫동안 구조 활동을 하신 안명득 대장님이셨다. 그래서 종합 훈련을 제외하곤 주로 설악산에서 훈련했고, 훈련 2주차부터 25kg 되는 배낭을 메고 설악산 곳곳을 파란 고어재킷과 빨간 배낭으로 물들이곤 했다. 그렇게 우리는 두 달간 설악산의 모든 코스 종주를 마치고 조지아 카프카스 탐사를 시작하게 되었다.
사이의 나라, 조지아
카프카스. 러시아말로 캅카즈라 부르는데 영어식 표현은 코카커스Caucasus라고 한다. 코카커스는 산맥을 의미하는데 위로는 바로 러시아가 있고, 밑으로는 코카서스 국가라 불리는 터키,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이 있다. 그리고 그 사이에 조지아가 있다. 그래서 '사이의 나라Lands Between'다.
우리는 카자흐스탄 알마티 공항을 경유해서 조지아 트빌리시로 입국했다. 도착 후 늦은 저녁이었기 때문에 간단히 석식을 하고, 와인 한잔으로 탐사 일정을 시작했다. 조지아는 8,000년에 이르는 생산 기록이 있는 와인의 탄생지다. 조지아어로 와인은 그비노Ghvino인데, 이것이 이탈리아로 가서 비노Vino, 프랑스에서 뱅Vin, 독일어 바인Wein, 영어로 와인Wine으로 변화했다. 편의점에서 쉽게 살 수 있는 10~20라리, 한화로 5,000원에서 1만 원 정도의 와인에서 우리나라 시중에 있는 10만 원 이상대의 맛이 났다. 그 정도로 퀄리티와 맛이 너무나 훌륭했다.
트빌리시에서 저렴하게 구할 수 있는 가스, 식품들을 구매했고 곧바로 메스티아로 이동했다. 메스티아는 조지아의 알프스라 불리는 곳이다. 해발 1,500m에 위치한 마을인데 높은 설산 봉우리들이 좌우로 펼쳐져 있어 분위기에 압도를 당하게 된다. 마을 옆으로는 넓게 빙하물이 흐르고 있고, 오래된 건축물들도 많았다.
탑 형태의 '코시키Koshiki'라는 가옥이 특히 눈길을 사로잡았다. 방어용 탑으로 1층에는 가축들이 살고, 2층은 주거, 3층은 폭설시 대피장소이자 침략자를 관찰 및 방어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마을의 첫 느낌은 프랑스 샤모니와 비슷했다. 우리는 이곳을 베이스캠프로 삼고 본격적인 탐사에 나섰다. 가장 먼저 할 것은 시차 및 고소 적응이었다. 이를 위해 메스티아에서 차로 1시간가량 떨어진 우쉬굴리로 향했다. 작은 마을 4개가 합쳐져 있으며 해발 2,100m로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마을이라고 한다.
마을 정면의 '쉬카라Shkhara(5,068m)'는 조지아에서 가장 높고, 유럽에서는 네 번째로 높은 산이다. 높은 설산을 바라보며 초원을 걷는 이 코스가 우리의 첫 번째 발걸음이었다.
국내에서 크램폰과 피켈 다루는 법을 익힐 환경이 부족했기 때문에 오늘 훈련이 아주 중요했다. 편도 10km 정도 갔을 때 흙이 섞여 있는 빙하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쉬카라 빙하다. 우리는 배낭에서 피켈과 크램폰을 꺼내 착용하고, 최대한 빙하를 밟아봤다.
다들 설산 경험이 없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경사에 기대려고 하다 보니 크램폰 발톱의 안쪽만 사용해 계속 미끄러지기 일쑤였다. 최대한 전체 발톱을 설면에 밟을 수 있는 포지션을 유지하는 훈련을 하고 기본적인 설산 이동 기술을 터득했다.
해발 2,000m 이상은 대부분 대원들이 처음이라 무리하지 않고 항상 깊은 호흡과 여유롭게 움직이라고 계속 주의를 줬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는 산소 포화도와 맥박을 수시로 체크해 현재 몸 상태가 어떤지 지속적으로 파악했다. 그렇게 우리는 역대 인생 최고로 높은 곳에서 텐트를 치고 하루를 보냈다.
기상 이변으로 탐사지 긴급 변경
쉬카라 빙하 훈련을 마치고 본격적인 탐사를 시작했다. 먼저 메스티아에서 등반이 가장 어려운 우쉬바Ushba(4,700m)에서 훈련을 하고, 스키리조트에서 출발하는 테트놀디(4,858m) 탐사를 계획했으나 러시아 분쟁 지역 인근인데다 기상 이변으로 산악사고가 최근 빈번하다는 현지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었다. 결국 반대편 산맥으로 급히 일정을 바꿨다. 라일라Laila 북봉 (4,000m)이다.
라일라는 유럽 그리고 현지인들에게는 잘 알려진 곳이다. 하지만 국내엔 정보가 전혀 없었다. 산악가이드들에게 수소문한 끝에 접근 방법에 대해서 들을 수 있었다. 가는 길이 만만치 않았다. 그래도 일정을 세우기 시작했다. 기본 지도 어플은 Maps.me를 활용했고, 유럽인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Gaia GPS와 PeakVisor도 활용해서 운행 및 식량 계획을 수립했다. 특히 Gaia 앱은 식수, 간이로 사용할 수 있는 건축물, 캠핑 사이트 등이 다 표기돼 있어 매우 요긴했다. 이후 날씨 앱들을 통해 이상적인 정상 공격 날짜도 확인했다.
우리는 바삐 움직였다. 우선 각각 해발 1,800m, 2,000m에 있는 오두막을 1캠프, 2캠프로 사용하기로 했다. 다행히 2캠프까지 차량으로 짐 수송이 가능하다고 해 1차 짐 운반을 시작했다. 김형준 대원과 나는 선발대로 출발했다.
그러나 한 달 동안 비가 내려 길이 곳곳이 손상되어 차량으로는 도저히 이동할 수 없다고 했다. 하는 수 없이 중간에 짐을 두고 다른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말을 이용할 수 있다곤 했는데 거리가 길어 비용이 부담이 되기 때문에 일부 구간만 이용하기로 했다. 그러던 찰나 이를 지켜보던 한 농부가 트랙터로 짐을 옮겨주겠다는 솔깃한 제안을 했다. 카고백 10개를 운반하려면 말은 최소 3마리 이상을 써야 한다. 트랙터는 말 1마리 비용으로 전체 짐을 운반할 수 있었다.
우리는 25kg 이상의 배낭을 지고 1캠프로 향했다. 1캠프와 2캠프는 지도상에서 확인한 것처럼 오두막 형태의 건물이었고, 그 옆으로 물줄기가 있었다. 대부분 석회수란 사전정보와는 달리 물이 아주 깨끗해 별도의 필터 없이 마실 수 있을 정도였다. 단 물 주변 이끼가 많이 있어 자연 필터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지점, 주변에 동물들이 대소변을 쉽게 보기 어려운 곳에서만 물을 보충했다.
최대의 변수가 있었는데 바로 물어뜯는 파리의 등장이었다. 원래 소나 말의 두꺼운 피부를 뚫는 놈이라고 했다. 그러니 사람의 피부는 얼마나 부드러울까. 피부가 조금이라도 노출돼 있으면 바로 공격을 받았다. 물어뜯긴 부위는 피가 나고 심하게 부풀어 올랐다.
남자대원들은 매트와 침낭만으로 오두막 안에서 자고, 여자 대원들은 텐트 1동에서, 그리고 대장님과 나는 타프 밑에서 침낭 커버로 잠을 청했다. 그리고 다음날 2캠프까지 이동 후 대부분의 짐들을 두기로 결정했다.
가장 중요한 기본 '텐트, 타프 치고 물 끓이기'
다음날 대원들과 나는 3캠프를 설치할 장소를 살피기로 했다. 올라가며 물 공급이 가능한지, 좀 더 편한 길이 없는지, 남은 노정 등 다방면으로 확인해야 한다. 3캠프는 해발 2,800m이기 때문에 2캠프에서 고도를 생각보다 많이 올려야 했는데, 촬영 담당인 임재민(고등부/드리머) 대원이 두통을 호소하기 시작했다.
바로 우려했던 고소의 시작이었다. 배낭의 짐을 나누고 운행 속도를 조금 늦춰 3캠프까지 이동하기 시작했다. 해발 2,500m가 넘자 멀리서 봤던 빙하들이 곳곳에 펼쳐지기 시작했다. 눈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밟아 봤는데, 오후 4시가 넘어도 단단하게 얼어붙어 있어 큰 어려움이 없을 걸로 예상됐다. 주변에 식수로 사용할 물도 꽤 있기 때문에 충분해 보였다.
다만 텐트 2동을 칠 수 있는 평평한 공간을 찾아야 했는데, 지도상에 봤던 것보다 훨씬 경사가 있어 적절한 위치를 찾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결국 배추처럼 보이는 식물들 주변으로 그나마 평평한 곳을 찾아 텐트를 설치했다.
이제 한 번만 더 캠프를 설치하면 그 다음은 정상 공격이다. 우리 등반 일정상으론 4캠프인데 다른 등반 기록을 살펴 보니 주로 베이스캠프로 삼는 지점이었다. 4캠프는 해발 2,900m라 3캠프와 100m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거리가 상당했다. 지도보다 드론으로 살펴보는 것이 훨씬 거리감을 확인하기 좋았다.
일부 고소가 왔던 대원들은 다행히 2캠프로 내려오자 괜찮아지기 시작했다. 가지고 온 숙성 고기로 에너지를 보충했다. 우리는 다음날 일찍 3캠프로 향했고, 점심쯤에 도착할 수 있었다. 미리 갖다 둔 식량으로 점심을 해결하고, 4캠프로 향할 준비를 했다.
그러나 날이 어두워지더니 빗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 날씨가 심상치 않다. 목이나 손목, 그리고 의류 사이로 들어오는 빗물을 전부 차단할 수 없었다. 아직 거리는 한참 남았다. 대원 한 명은 골반 통증과 함께 고소가 왔다. 그로 인해 운행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대로 운행하기에는 전체 저체온증 우려가 있어 최대한 그의 배낭을 가볍게 만들어 준 뒤 언덕을 넘기 시작했다.
해발 3,000m를 넘자 강한 바람이 몸을 때리기 시작했다. 강한 바람이 체온을 급격한 속도로 뺏기 시작했다. 우리 팀의 뒷모습을 담고 싶어서 카메라를 켠 순간 구름 사이로 보이는 거대한 산줄기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원초적인 자연 그 자체였다.
다행히 서로 격려해 주며 운행속도를 올려 조금 서둘러 4캠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여자 대원 2명과 남자 대원 1명이 저체온증에 시달리고 있었고 눈까지 풀려 있었다. 빠르게 타프를 치고 텐트를 설치해서 안으로 이동시켰다. 마른 옷으로 갈아입히고, 비교적 체온 관리가 잘되어 있던 나는 차와 라면을 먹여 에너지를 보충할 수 있게끔 물을 끓였다.
항상 대원들한테 타프 치고, 텐트 치고, 물 끓이는 습관을 가지라고 했던 것이 바로 이 순간을 위해서였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지만, 어려운 상황 속에선 기본을 유지하는 것이 가장 어렵다. 그래도 국내 훈련 덕분인지 다들 신속하게 텐트나 타프를 설치하는 데 망설임이 없었고, 배낭에 가지고 있던 버너나 코펠, 가스도 신속하게 세팅했다.
다음날 다행히 날씨가 언제 그랬냐는 듯 맑았고, 우리는 하루 휴식일을 가졌다. 젖었던 옷들과 장비들을 말리고 내일 정상 공격에 사용할 등반 장비들을 점검했다.
주봉 대신 북봉 선택, 성공적
그리고 다가온 새벽 2시. 우리는 비몽사몽한 상태로 뜨거운 수프와 한국에서 가져온 호떡 빵들을 가볍게 데워서 먹기 시작했다. 이른 새벽임에도 불구하고 날씨가 너무 좋았고 우리는 보이는 가장 높은 곳, 즉 라일라로 향하기 시작했다.
걷다 보니 어느덧 시야가 밝아졌고, 그 시점부터 경사는 점점 가팔라졌다. 아직 크램폰이 어색한 대원들이 많이 있었기에 최대한 Z자 형태의 동선을 그리며 올라갔다. 2개 그룹, 10m 간격의 안자일렌이었다. 나는 체중을 실어 길을 다져 다음 사람들이 경사면에서도 비교적 쉽게 따라올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피켈은 경사면 아래쪽이 아닌 높은 쪽에 지탱했다. 이래야 자일에 걸리지 않고, 위기 시 체중을 빠르게 실어 바로 대응할 수 있다.
설면과 너덜지대가 반복적으로 나타났는데, 너덜지대 또한 경험이 없는 대원들은 밟기만 하면 미끄러지는 돌이 무서워서 조마조마했다. 이들은 쓸려나가는 작은 돌들을 두려워했다. 앞사람과 간격을 유지해 낙석이 발생하더라도 즉각 반응할 수 있는 대형으로 너덜지대를 통과했다.
그렇게 4시간이 지나자 능선이다. 반대편 모습은 우리 입에서 어떠한 말 한마디를 할 수 없게 만들었다. 구름바다 위에 솟아난 수많은 봉우리들 중 특히 유럽 최고봉 엘부르스Elbrus (5,642m)가 눈에 띄었다.
우리는 바위 뒤에서 바람을 피하며, 행동식을 먹으며 잠시 휴식을 가졌다. 드론을 능선 위로 띄우는데, 촬영하는 내내 황홀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찍을 때마다 아쉬움 담긴 한숨이 터져 나왔다. 풍경을 다 담아내기에 사각형의 프레임은 너무 작았다.
촬영하면서 갈 길에 방해요소나 크레바스가 없는지 확인했다. 바로 앞 급경사와 일부 너덜지대가 돌파하기 어려워 다시 하산해 가로질러 오르는 걸 선택했다. 이제 해는 바로 위에서 내려 쬐기 시작했다. 단단했던 눈이 이제는 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녹았다. 운행속도가 더 늦어졌다.
결국 라일라 주봉 대신 능선으로 연결된 북봉(4,000m)에 오르게 됐다. 주봉까지는 왕복 4시간 거리라 현재 우리 팀 능력으로 욕심을 내기에는 부족했다. 애초에 최초 계획 단계에서도 주봉이 아니라 가까운 북봉을 선택했었다. 이것이 성공적인 탐사를 만든 주 이유다.
각자 목표한 곳에 도착하자 준비해 온 말들이 잘 나오지도 않았다. 바람이 세게 불고 있어 개인 사진을 찍기도 여유롭지 않았다. 빠르게 필요한 사진만 찍고 바로 하산했다.
라일라는 정말 멋있고, 매력적인 산임에 틀림없었다. 다만 접근이 수월하지 않았고, 말을 수배할 예산도 필요하다. 그래서 원정을 진행하기에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곳을 성공적으로 돌아본 것은 최고의 임기응변이 아니었나 싶다.
인생의 찬바람 이겨낼 힘 얻었길
하산 후 남은 미션들을 수행하기 시작했다. 메스티아에 사는 아이들과 축구 경기를 통해 친해질 수 있었고, 한국에서 미리 준비한 과자 와 나무젓가락과 숟가락을 그들에게 선물해 주었다.
또한 탐사 전 찾아뵀던 주한 조지아 대사님의 소개로 카즈베기 산장 중 하나인 알티 헛Alti hut을 방문했다. 카즈베기(5,047m)는 조지아 말로 '얼음 산'을 의미한다고 한다. 조지아와 러시아가 유일하게 도로로 연결된 곳이라 많은 차량이 오고 가며, 대표적인 관광지기도 한다.
우리 팀은 당일 일정으로 알티 헛을 찾았다. 그곳에서 대한산악연맹, 오지탐사대 깃발 그리고 태극기에 우리의 이름을 적어 전달했다. 다시 트빌리시로 복귀 후 전원 무사히 귀국할 수 있었다.
인천공항에서 헤어지는 대원들의 뒷모습은 처음 만났을 때와 많이 달라져 있었다. 꼬질꼬질하고 냄새나는 옷, 손상된 배낭과 물품들. 그 모습을 보면서 이들이 앞으로 다시 일상에 복귀했을 때 이 오지 탐사가 그들에게 어떤 변화를 일으킬까 너무나 궁금하다. 배낭과 침낭만 있으면 된다는 자신감으로 몸을 던지고, 인생의 찬바람을 맞아도 라일라의 빙하바람을 생각하며 웃어넘기는 그런 강한 젊은이가 되지 않을까.
월간산 10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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