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마스와 전쟁 선언한 이스라엘…둘로 갈라선 세계
[비즈니스 포커스]
젊음과 음악이 흘러 넘치던 축제가 한순간 비극의 현장으로 변했다. 이에 대한 보복 공격은 세계에서 가장 큰 감옥인 가자지구를 초토화시키며 지옥으로 만들고 있다. 수십 년간 이어진 분쟁이 전면전으로 치닫자, 세계는 둘로 갈라졌다.
10월 7일 이스라엘 남부 사막지대에서 열린 슈퍼 노바 페스티벌 현장. 새벽 동틀 무렵 멀리서 폭발음이 들려오기 시작하더니 총으로 무장한 사내들이 들이닥쳤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였다.
축제를 즐기던 젊은이들은 패닉이 된 채 현장을 빠져나가려 애썼다. 대다수는 현장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하마스의 무차별 사격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살아남았다 해도 무장단체에 납치돼 실종됐다.
이스라엘 민간인들에 무차별 살상을 가한 하마스에 이스라엘 정부 또한 무차별 공격으로 응수했다. 하마스의 공격 다음 날인 10월 8일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하마스와의 전쟁’을 공식화했다.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를 완전 봉쇄한 후 가자지구 주요 도시 칸유니스 등의 민간인 주택에 며칠째 폭격을 이어가는 중이다.
양측의 사상자 수 또한 늘고 있다. 이스라엘 당국의 발표에 의하면 하마스의 공격으로 인해 약 900명이 숨지고 2400명 넘게 다쳤다. 이스라엘의 보복 공습이 이어지고 있는 가자지구에서도 사망자가 700명을 넘어섰다. 아동과 청소년, 여성 등이 다수 포함된 숫자다.
이스라엘은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의 군사 통치 역량을 파괴한다는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 중단 없이 공세를 지속할 것이란 방침이다. 이스라엘의 지속되는 공격에 하마스 또한 이스라엘의 공격이 있을 때마다 인질을 처형하겠다고 맞서 갈등은 더욱 격화되는 중이다.
이미 세계 질서는 변환점을 맞이하고 있다. 중국의 초강대국 부상에 미국과의 갈등은 더욱 깊어지고 있으며, 우크라이나를 침략한 러시아의 전쟁은 길어지고 있다. 이 와중에 또 다른 ‘화약고’인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무력 충돌로 전 세계가 긴장하고 있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오랜 악연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악연은 100년이 넘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중동 지역을 지배하던 오스만 제국의 패배 후 팔레스타인 지역을 장악한다. 당시 이곳에 거주하던 이들의 대다수는 아랍인이었지만, 영국은 이곳에 유대인을 위한 ‘국가’를 건설하고자 했다.
1920년대부터 1940년대까지 두 번의 세계 전쟁을 거치면서 유럽의 박해를 피해 이곳으로 이주해오는 유대인의 숫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1948년 유대인 지도자들은 이 지역에 이스라엘 국가 수립을 선언한다. 갈등의 씨앗이 심어진 것이다.
팔레스타인은 이에 강하게 반발했다. 전쟁이 벌어졌고 이웃 아랍 국가들 또한 이 전쟁에 뛰어들었다. 이 전쟁의 결과 이스라엘이 대부분의 영토를 장악했고, 수십만 명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집을 떠나 강제로 쫓겨났다.
이듬해 ‘휴전’으로 끝난 전쟁의 결과 예루살렘은 서쪽의 이스라엘 군과 동쪽의 요르단 군으로 나뉘었다. 하지만 이후에도 전쟁은 이어졌다. 이스라엘은 동예루살렘과 서안지구는 물론 시리아 골란고원, 가자지구, 이집트 시나이반도 대부분을 점령했다.
이스라엘은 예루살렘 전체를 수도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팔레스타인은 동예루살렘을 미래 팔레스타인 국가의 수도라고 반박한다. 현재 대부분의 팔레스타인 난민과 그 후손은 가자지구와 서안지구, 그리고 이웃 국가들인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에 거주 중이다.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난민과 그 후손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 유대 국가로서의 정체성을 위협할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원래 이집트 땅이었던 가자지구는 1967년 중동전쟁 이후 이스라엘이 점령하게 됐다. 팔레스타인은 불법 점령이라며 강하게 반발했고, 이후 무력 충돌이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2005년 평화협정을 맺기로 하면서 가자지구에서 철수했다.
하지만 2007년 무장단체 하마스가 이곳 가자지구를 장악하면서 다시 갈등이 커졌다. ‘이슬람 저항운동’을 뜻하는 아랍어의 앞글자를 딴 하마스는 1987년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 조직 무슬림형제단 출신 아메드 야신의 주도로 결성됐다.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대화보다는 투쟁을 통해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를 수립한다는 노선이다. 2000년 무렵 이스라엘에 대한 자살폭탄 공격을 주도하며 미국과 영국 등 유럽 국가들로부터 ‘테러단체’로 지정됐다.
하지만 이들은 정치단체이기도 하다.
2006년 치러진 팔레스타인의 마지막 선거에서 압승을 거두며 가자지구를 장악했다. 이스라엘 또한 이집트와 함께 하마스를 고립시키며 가자지구 봉쇄를 유지해 왔다. 한쪽은 지중해, 한쪽은 이스라엘에 막혀 가자지구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감옥으로 불린다.
‘중동 중재자’로 영향력 키워 온 중국, 복잡해진 셈법
최근 들어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갈등이 깊어지고 있다는 징후는 적지 않았다. 서안지구에서 이스라엘 군인 및 정착민들과 팔레스타인인들 사이에 벌어진 폭력 사건은 수개월 동안 증가 추세에 있었다.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양쪽 모두 서로의 거주지를 공격하는 일이 잦아졌고, 팔레스타인 도시에 대한 이스라엘 방위군의 공습이 반복되는 상황이었다.
이번 공격의 직접적인 발단은 지난주 일부 유대인들이 예루살렘 구시가지에 위치한 알아크사 모스크 건물 안에서 기도를 드린 일이었다. 100여 년 전 합의에 따라 유대인은 이곳에서 기도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다. 팔레스타인은 이를 자신들에 대한 모욕으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이는 표면적인 이유일 뿐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공격하고 나선 다른 이유가 숨어 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가자지구는 현재 실업률이 50%에 달할 정도로 경제적인 붕괴를 겪고 있다. 이스라엘이 지난 16년간 가자지구를 봉쇄한 결과다.
서구 세계는 물론 아랍 국가들로부터 들어오는 자금이 부족해지고, 이스라엘에서 일할 수 있는 노동자들에 대한 허가 또한 엄격하게 제한됐다. 가자지구 230만명 가운데 상당수가 구호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마스에 ‘테러 자금’을 지원해 준 국가가 이란이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이스라엘과 척을 져 왔다. 이스라엘에서는 이란이 하마스에 연간 1억 달러가량을 지원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기습 공격의 배후로 이란이 지목되는 이유다.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전쟁이지만 실상은 ‘미국과 이란의 대리전’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는 배경이다. 이에 대해 이란의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하메네이는 10월 10일 “이번 공격의 배후가 이란이라는 소문은 틀렸다”며 공식적으로 부인했다. 하지만 이번 무력 충돌 사태가 ‘이스라엘의 탓’임을 분명히 했다.
미국도 표면적으로는 ‘이란이 개입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밝히고 있다. 탈세계화가 본격화된 이후 중동 지역에서 빠르게 영향력을 넓혀 온 중국은 현재 원칙적으로 ‘중립’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하지만 향후 중동 국가들과의 관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실제 이번 무력 충돌 사태 이후 하마스의 공격에 대해 강력하게 규탄하는 대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를 ‘친구’라고 지칭하며 이스라엘 측으로부터 원망을 받고 있다.
중국은 지난 4월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의 수장들을 베이징으로 초청해 두 국가의 관계 정상화를 중재했다. 이로 인해 얻은 ‘중동의 중재자’라는 이미지가 이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는 데 큰 힘이 됐다는 것을 감안하면, 이번 무력 충돌 사태는 중국 정부의 입장에서도 큰 타격일 수밖에 없다.
중국은 최근 들어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평화 해법으로 ‘두 국가 전략’을 제시하며 팔레스타인 국가의 설립을 지원해 왔다. 이를 위해 지난 6월 가자지구를 통치하고 있는 하마스 외에 팔레스타인 내 마무드 아바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을 국빈 자격으로 초청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중국은 팔레스타인 관계를 ‘전략적 동반자 관계’로 격상하고, 시진핑 중국 주석이 평화회담 중재를 제안했다.
실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10월 말 중국을 방문할 계획이었다. 이스라엘과 중국의 관계 강화와 함께 사우디와의 관계 정상화를 위해 중국의 도움을 받기 위한 목적이었다. 하지만 이번 무력 충돌로 인해 네타냐후 총리의 방문 여부가 불투명해진 상황이다.
멈춰선 중동 평화 프로세스에 고민 깊어진 유럽
미국은 이번 무력 충돌 사태 이후 곧바로 하마스를 강력히 규탄하며, 이스라엘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을 표명했다. 세계 최대 항공모함인 제럴드포드호를 포함한 항모전단을 전진 배치하는가 하면 역내 전투기 편대를 증강하는 등 ‘철통 방어’를 약속하고 있다.
캐나다와 유럽 국가들도 미국과 같은 입장을 보이고 있다. 유럽연합은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의 이스라엘 공격 행위를 명백히 비난한다”며 “이는 가장 비열한 형태의 테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프랑스·영국·캐나다 등은 이번 공격을 강력히 비난하는 성명을 내놓았다. 독일과 유럽연합은 팔레스타인에 대한 재정 지원 중단을 검토 중이다.
미국은 물론 유럽 국가들 또한 한목소리로 하마스를 규탄하며 나서고 있지만 그 속내가 편하지는 않다. 미국은 중동 지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는 중국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 중동 국가들과의 관계 개선에 외교적 역량을 집중해 왔다.
그 핵심에 자리한 전략이 미국의 강력한 우방인 이스라엘과 그 주변국들의 관계 개선이었다. 2020년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 당시 이스라엘과 아랍권 국가인 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모로코 등이 정식 외교관계를 수립하는 ‘아브라함 협정’을 체결한 데 이어 조 바이든 대통령 역시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의 국교 정상화에 박차를 가해왔다.
하지만 이번 무력 충돌 사태로 인해 ‘중동 지역에서의 외교 안정화’를 꾀하던 미국의 전략에 상당한 차질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중동 지역 평화를 위한 ‘중재자’ 역할을 자처하고 나섰던 유럽 국가들 또한 셈법이 더욱 복잡해졌다. 유럽연합은 오랜 시간 지속되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해결을 위해 지난 9월 사우디·요르단·이집트·아랍연맹과 함께 ‘평화를 위한 노력(Peace Day Effort)’이라는 중동 평화 프로세스를 시작한 터였다.
향후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이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평화 배당금을 극대화할 수 있는 ‘평화 지원 패키지’를 마련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그런데 이번 무력 충돌 사태로 인해 유럽연합이 주도하는 중동 지역 평화 프로세스를 시작한 지 한 달도 안 돼 멈춰 서게 됐다.
조셉 보렐 유럽연합 수석 외교관은 “우선순위는 즉시 폭력을 중단하고 하마스가 붙잡고 있는 이스라엘 민간인 인질들을 석방하는 것이다”며 “전례 없는 사상자가 발생한 이번 침략의 규모에 국제 사회가 놀라고 있지만, 평화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할 브랜즈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 석좌교수는 “이번 전쟁은 이스라엘이 승리하더라도 ‘모두가 지는’ 싸움이 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1991년 이후 세계는 미국과 그 동맹국들이 결정적인 우위를 점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정학적, 이념적 경쟁이 역사적으로도 매우 낮은 수준을 보였다.
하지만 더 이상은 아니다. 중국을 중심으로 러시아·이란 등의 국가들이 미국의 힘을 되돌리고 자신들의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시도하고 있으며, 이와 같은 시도는 이들 국가 간의 연대를 바탕으로 더욱 잦아질 가능성이 높다.
브랜즈 교수는 “이미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유럽 내 전쟁으로 안보 불안이 극대화된 상황에서 이번 무력 충돌 사태로 전 세계 국가들마다 계산이 달라지고 있다”며 “미국의 ‘팍스 아메리카나’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런던=이정흔 객원기자 luna.jhle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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