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하나둘 사라지는 가게들…인천 세숫대야 냉면거리 쇠락

최은지 2023. 10. 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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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개발 대상 포함·코로나19 여파도…"지역적 의미 큰 곳" 우려도
발길 끊긴 인천 화평동 세숫대야 거리 [촬영 최은지]

(인천=연합뉴스) 최은지 기자 = 동인천역 4번 출구로 나와 200m쯤 걸으면 화평동 냉면 거리라는 표지판이 보인다.

냉면이 세숫대야만 한 지름 26㎝짜리 그릇에 나와 이른바 '세숫대야 냉면 거리'라는 별칭으로 더 유명한 곳이다.

그러나 지난 12일 찾은 동구 화평동 냉면 거리는 여름철 성수기가 지났음을 감안해도 눈에 띄게 썰렁했다.

평일 점심시간인데도 냉면집 앞 주차장은 텅 비었고, 낮 12시 30분이 지나도록 많은 테이블 중 1∼2개만 손님을 받은 가게가 태반이었다.

그마저도 냉면집 사이 사이엔 폐업해 셔터를 내린 가게, 중국집, 한식 뷔페 집 등이 자리 잡아 냉면 거리라는 말을 무색게 했다.

한 냉면집에서 홀로 물냉면을 먹던 손님 박모(31)씨는 "인천 토박이라 오랜만에 생각나서 와 본 건데 손님이 너무 없다"며 "몇 년 전만 해도 점심이면 앉을 데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붐볐는데 기분이 이상하다"고 말했다.

손님 끊긴 인천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집 [촬영 최은지]

점차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이 냉면 거리의 역사는 1970년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인근 공장과 부두 노동자들에게 처음 냉면을 팔기 시작했는데, 먹성 좋은 노동자들은 추가 사리를 요청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를 고려해 아예 처음부터 큰 그릇에 냉면을 푸짐하게 담아 상에 올렸는데 냉면그릇이 세숫대야처럼 크다고 해 '세숫대야 냉면'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곳에선 3천∼4천원밖에 안 되는 저렴한 가격에 열무김치를 곁들인 냉면을 배불리 먹을 수 있어 인기를 끌었다.

1990년대 초 인천역∼주안역의 경인전철 복복선 확장 공사로 골목 한쪽이 헐려 냉면집이 12곳만 남은 뒤에도 한동안 호황은 이어졌다.

특히 이곳은 1997년 동구 특색 음식 거리로 지정되고 방송을 타며 전국적인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같은 해 IMF 외환위기가 닥쳤을 때에도 하루 2천그릇 넘게 냉면을 판 가게가 있을 정도로 거리는 성황을 이뤘다.

인천뿐만이 아닌 전국 각지에서 손님들이 찾아왔고, 좁은 골목에 차량이 줄을 잇는 진풍경이 펼쳐지기도 했다.

2000년대 세숫대야 냉면 먹는 시민들 [인천시 동구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그러나 세월이 흘러 가게가 하나둘 폐업하며 2019년만 해도 9곳이던 냉면집은 이달 현재 5곳으로 절반 가까이 줄었다.

그 배경에는 인천 원도심 재개발과 영업 수지 악화 등 다양한 요인이 겹친 것으로 풀이된다.

현재 화평동 냉면 거리는 지역주택조합 사업이 추진되는 동인천 4구역에 포함돼 있다. 최근 부지 50% 이상의 사용권을 확보해 조합원 모집 신고를 마친 사업 초기 단계다.

동구에 거주 중인 장회숙 도시자원디자인연구소장은 "냉면 거리는 일터가 더운 제철 공장 노동자들이 주로 가던 곳으로 역사적으로도 의미가 큰 곳인데 지주택 사업이 추진되며 4∼5년 전까지만 해도 영업을 잘하던 가게 몇몇이 빠져나갔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 근방은 냉면집뿐 아니라 일본인들이 운영하던 전당포와 오래된 기와집, 한복집들이 많았던 '황금 거리'였다"며 "재개발로 이 같은 역사가 다 사라질 우려가 있어 계속 기록 보관 작업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 등으로 인한 경영난이나 홍보 부족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원가와 인건비 상승에 따라 3천∼4천원에 불과하던 냉면 값을 7천∼8천원으로 올렸지만 여전히 수익성이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그 와중에 특색 거리에 걸맞은 홍보도 주춤하며 하락세가 이어졌다는 것이다.

2011년 인천 화평동 세숫대야 냉면 거리 풍경 [연합뉴스 자료사진]

이곳에서 44년째 냉면집을 운영 중인 김모(75)씨는 "결국 돈이 안 되니까 다들 장사를 접는 것 아니겠느냐"며 "월세랑 인건비가 나가면 남는 게 없어서 지금 남아 있는 가게는 가족끼리 운영하는 곳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코로나19 때는 영업시간 제한으로 저녁 손님이 아예 끊겨 수익 내기가 어려웠다"며 "빚을 많이 져서 개인 회생을 하거나 경매에 넘어간 냉면집도 있다"고 토로했다.

24년째 냉면 거리에서 근무한 요리사 조모씨 역시 "다 함께 힘을 모아 축제를 한다든지 행사를 연다든지 해서 계속 냉면 거리를 제대로 홍보했어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됐다"며 "상인끼리도 단합이 잘 되지 않았던 것이 특히 아쉽다"고 말했다.

동구는 아직 냉면 거리의 별도 홍보나 지원 방침은 정해지지 않았다는 방침이다.

동구 관계자는 "시간이 흐르면서 폐업한 가게 수가 계속 늘고 있는 상황이라며 "특색 음식 거리로 지정되면 앞에 표지판을 세우고 위생 점검을 강화하지만 그 외 별다른 지원책은 없다"고 말했다.

chams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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