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아토피에 걸린 원자력
자가면역 질환이라는 병이 있다. 우리 몸은 우리 몸에 해를 끼치는 것들로부터 건강을 지켜주는 면역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대표적인 면역체가 림프구다. 림프구는 처음 감염원을 접하게 되면 감염원을 제거할 뿐 아니라 다시 공격해 올 것에 대비해 기억장치(수용체)를 만들어 둔다. 그래서 같은 물질이 다시 침입하게 되면 더 쉽고 빠르게 제거할 수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인지 수용체 정보가 잘못돼 건강한 세포를 공격하는 질병이 자가면역 질환이다. 대표적으로 류머티즘 관절염, 크론병, 건선 등이 있다.
범위를 좀 더 넓히면 아토피도 해당한다. 아토피의 원인은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았지만, 꽃가루, 집먼지진드기, 특정 음식 등 다양한 알러지 유발 물질에 노출된 후 면역기관이 예민하게 반응하여 피부세포에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이 유력한 가설이다. 예전보다 요즘 아이들이 아토피에 많이 걸리는 이유로 예전보다 환경이 깨끗해져서 면역세포가 감염원을 만날 기회가 줄다 보니, 알러지 반응을 감염반응이라 착각해서라는 가설도 있다. 아토피에 걸린 아이는 삶의 질이 떨어지고, 수면 부족으로 인해 성장을 방해받는 경우가 많다. 결국 건강을 지켜야 할 면역체계가 성장을 방해하는 것이다.
원자력도 아토피에 걸려있는 듯하다. 원자력 규제는 원자력에너지를 사고 없이 안전하게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원자력 규제가 우리 몸의 면역 기능과 같은 역할이라고 볼 수 있다. 몇 번의 원전 사고를 겪으면서 규제체계는 더 단단해졌다. 사람으로 치면 면역력이 더 강해진 것이다. 그 덕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같은 중대사고에도 방사선에 의한 사망자가 없이 안전하게 원전을 이용할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요즘은 그 면역력이 지나친 느낌이다. 원자력 규제의 기본 원칙은 입증된 기술만 인정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규제의 눈으로 보면 신기술들은 알러지와 같은 존재다. 그동안 써본 적이 없으니 안전한지 위험한지를 판단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 가동 중인 원전을 기준으로 새로운 원전 기술이 안전한지 위험한지를 판단하고, 되도록 사용 허가를 내주지 않았다.
강력한 규제 활동이 반복되자 기술 개발자들은 규제 틀 안에서만 기술을 개발하려는 현상이 발생했다. 대표적으로 우리나라 대표 소형원자로인 'SMART'를 들 수 있다. SMART의 초기 개념은 무붕산 제어 등 혁신적인 기술을 적용하게 돼 있었다. 그러나 여러 번의 검토를 거치면서 인허가를 위해서는 가동 중 원전 기술을 최대한 사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반영하여 혁신 개념들을 대부분 덜어내고 기술 개발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 덕에 세계 최초로 표준설계 인가를 받는 성과를 낼 수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최근에 개발되는 소형원자로 개념이 초기의 SMART와 유사한 부분이 많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처음부터 혁신 개념의 SMART가 개발됐다면 지금쯤 세계 1등 소형원자로가 됐을 것이라는 진한 아쉬움이 남는다.
예전에는 사고 원인에 대한 정보도 부족하고, 작업자들의 안전의식도 낮았기 때문에 강력한 규제로 일일이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당연했다. 하지만 이제는 원자로를 설계하고 운영하는 경험이 많이 쌓였고, 원자력이 다른 어떤 에너지원보다 깨끗하고 안전하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됐다. 원자력 신기술이 우리 사회를 위험하게 하는 감염원이 아니라 건강한 세포라는 것은 충분히 구별할 수 있다는 뜻이다.
대표적인 원자력 신기술이 소형원전이다. 선진국들은 소형원전이 이산화탄소 발생도 없고, 경제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점을 주목하여 경쟁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만약 규제에 발목 잡혀 소형원전을 제때 개발하지 못한다면 우리나라의 성장이 더뎌질지도 모른다. 아토피에 걸린 대한민국의 원자력을 치료해 주기 위해서는 지금 개발하고 있는 소형원전들에 대한 규제체계를 서둘러 갖춰 개발된 기술을 실증할 수 있는 길을 터주어야 할 것이다. 이영준 한국원자력연구원 정책연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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