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 지천명(知天命)의 대덕연구개발특구, 그 너머에는
일찍이 공자는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 일어섰다. 마흔 살에는 어느 것에도 혹하지 않았으며, 쉰 살에는 천명을 알았다."고 했다. 논어의 위정편에 나오는 이 말을 통해 후세 사람들은 15세를 지학, 30세를 이립, 40세를 불혹, 50세를 지천명으로 부르게 됐다.
올해는 대덕연구개발특구가 50년이 되는 해다. 공자의 말에 따르면 지천명이 된 것이다. 지천명은 하늘의 뜻을 안다는 것으로 이전까지는 주관적인 자기만의 세계에 머물렀다면 쉰이 되면서 자신의 세계를 벗어나 보다 보편적인 경지에 들어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덕특구의 발전과정은 공자의 학문성취 과정과 묘하게 닮아있다. 대덕특구의 지난 50년은 자신의 세계를 구축하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대덕특구의 시작은 우리나라의 부족한 연구환경과 개발역량을 개선하기 위해 대덕연구단지를 조성한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과학입국, 기술자립'으로 그 뜻도 명확히 세웠다.
30여 년이 흐르는 동안 대덕특구의 기술은 우리 사회의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다. 전전자교환기(TDX) 기술은 우리나라가 1가구 1전화 시대를 여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다.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기술은 세계 최초로 상용화되며 ICT 강국의 초석을 다졌다. 핵연료를 국산화하여 에너지 효율도 높였다. 우리나라 최초의 인공위성인 우리별 1호, 최초의 우주발사체 나로호도 대덕특구에서 개발된 기술이 있어 가능했다.
그뿐만 아니라 60-70년대 주요 수출품인 섬유, 가발, 신발 등 저부가가치의 경공업이 80-90년대 고부가가치의 중화학 공업으로 전환할 수 있었던 것도 대덕특구를 중심으로 한 과학기술의 뒷받침이 있어서였다. 대덕특구의 과학기술은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든든한 우군이 되어 이립 할 수 있었다.
기술개발지 중심의 대덕연구단지는 2005년 대덕특구로 재지정됐다. 기존의 연구개발에 사업화 기능도 추가했다. 현재 26개의 정부출연연, 7개 대학, 2300여 개의 기업이 모인 대덕특구는 산·학·연의 교류·협력을 통해 사업화를 추진하는 혁신클러스터의 모습으로 불혹을 맞이하며 지역 성장의 롤 모델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역사적 발전경로를 통해 대덕특구는 공공기술을 기반으로 사업화를 추진하는 현재 자신의 세계를 구축했다. 그러나 나날이 치열해져 가는 국가 간, 클러스터 간의 경쟁과 지방의 쇠퇴, 인구감소와 고령화 등의 리스크 속에서 지천명(知天命) 이후의 대덕특구가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서는 자신의 세계를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 도시경제학자인 플로리다 교수가 주장하는 3T를 중심으로 몇 가지 제언을 하고자 한다.
먼저 기술이다. 그동안 대덕특구에서 진행된 수많은 연구개발을 통해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역량이 진일보되었다는 것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진일보는 부족하다. 스페이스 X에서 개발된 1단 로켓이 다시 착륙하는 모습을 보며 경이롭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얼마 전 뇌신경과학 스타트업인 뉴럴링크는 인간의 뇌에 컴퓨터 칩을 이식하기 위한 임상 시험을 미국식품의약국(FDA)에 승인을 받았다고 한다. 게임의 규칙을 만들 수 있는 혁신적 기술개발이 필요하다.
둘째는 인재다. 대덕특구에는 KAIST나 UST와 같은 이공계 중심의 우수 대학이 있다. 이들 중에는 한국에 남고 싶어 하는 유학생들도 있다. 다행히, 올해 초 법무부에서 과학기술 우수인재에 대한 영주·귀화 패스트 트랙을 시행했다. KAIST, UST와 같은 이공계 특성화 기관에서 석·박사를 취득한 경우 한국에 남을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글로벌 인재를 다른 곳에서 찾지 않아도 된다. 외국인 유학생이 대덕특구에서 창업하거나 연구개발 인력으로 채용되는 것. 이것이 바로 글로벌 인재를 유치하는 것이다.
마지막은 관용이다. 혁신의 문화와 성과를 공유할 수 있는 관용적 태도가 보다 큰 파이를 키운다. 서울에 비해 지역의 기술금융 생태계는 열악하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2006년 제1호 특구펀드가 800억 규모로 출범했다. 특구기업을 대상으로 한 첫 번째 공공펀드였다. 1호 펀드의 성공으로 혁신의 씨앗이 뿌려졌다. 8개의 특구펀드가 추가로 조성됐고 출연연과 대학에서도 투자를 위한 지주회사가 설립됐다. 2010년 중반부터는 대덕특구에 민간 투자기업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공공의 마중물이 민간 시장을 활성화한 것이다. 이러한 사례를 다양한 분야에서 확산시켜야 한다.
지천명을 맞이한 대덕특구 그 너머에는 기술과 인재, 관용의 문화가 가득하기를 대덕특구 구성원의 일원으로 희망해 본다.
박후근 연구개발특구진흥재단 글로벌기술확산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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