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사건’ 검사, 이번에도 넘어갈까?
‘김학의 사건’은 끝나지 않았다. 정치적 구호나 바람이 아니다. 현재 이 사건은 다시 형사사건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대상은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이 아니다. 김학의 사건을 수사했던 검사들이다. 지난 7월 김학의 사건 ‘검찰 1차 수사팀’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고발당했다.
검찰은 세 차례에 걸쳐 김학의 사건을 수사했다(〈그림〉 참조). 1차 수사팀은 2013년 김학의 전 차관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2014년 2차 수사팀도 김 전 차관을 불기소했다. 2019년 3차 수사팀이 꾸려진 다음에야 김 전 차관은 구속 기소됐다. 하지만 공소시효(면소) 등의 이유로 김 전 차관은 지난해 무죄를 최종 선고받았다. 검찰의 1·2차 수사에 비판이 집중되는 이유다.
고발 혐의는 특수직무유기다.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제15조(특수직무유기)는 ‘범죄 수사의 직무에 종사하는 공무원이 이 법에 규정된 죄를 범한 사람을 인지하고 그 직무를 유기한 경우에는 1년 이상의 유기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김학의 전 차관의 범죄 혐의를 알면서도 검찰이 무혐의 처분을 했다면 ‘직무유기’라는 의미다.
검사의 직무유기에 대한 엄정한 잣대는 검찰 출신의 논문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검사나 사법경찰관에게는 기본적으로 수사 의무가 존재하여 중대한 범죄 혐의를 인식하고도 수사하지 않는 경우에는 직무유기죄로 처벌될 여지가 있다. 특히 특정범죄가중처벌법(특가법) 제15조는 특수직무유기라는 제목으로 (중략) 가중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최기식 전 대검 검찰미래기획단 검찰연구관이 쓴 논문 ‘검사의 수사재량권에 대한 고찰(2009)’에 나오는 내용이다.
고발인은 검찰개혁을 강조해온 시민단체나 정당이 아니다. 공무원 신분인 차규근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이 고발장을 제출했다. 그는 변호사 자격증이 있는 법조인이기도 하다. 김학의 사건과도 악연이 있다.
2019년 3월22일 김학의 전 차관이 타이로 출국을 시도했다. 김학의 사건 재수사가 이뤄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던 때였다. 실제로 일주일 후 3차 수사팀이 꾸려졌다. 차 위원은 당시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장으로 김 전 차관의 출국을 제지했다. 검찰은 당시 차규근 본부장의 행위가 직권남용 등의 혐의를 산다며 기소했다(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기각됨). 지난 2월15일 1심에서 무죄를 받았다. 현재 검찰의 항소로 2심이 진행 중이다.
차 위원은 8월8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고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어느 한 공무원의 부패는 개인의 일탈에 불과하지만, 공무원의 부패 행위를 수사해야 할 수사기관의 직무유기는 사법 시스템의 붕괴를 초래한다. 그로 인한 사회적 비용도 막대하다. 10년째 사회적 논란이 되고 있는 김(학의) 전 차관 사건이 이러한 현실을 너무나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실 차규근 위원의 지적은 새로울 것이 없는 내용이다. 2019년 검사·변호사·교수로 이뤄진 대검 산하 과거사 진상조사단은 〈김학의 보고서〉에서 “검찰의 부실 수사는 (김학의) 사건 진상의 암장을 초래하였음”이라는 결론을 내린 바 있다. 2021년 〈시사IN〉은 해당 보고서를 입수해 판사 출신, 검사 출신, 재심 사건, 젠더 사건 변호사에게 김학의 사건에 대한 평가를 받았다. 이들은 모두 2013년 1차 수사 자체가 부실했다는 데 동의하며 김학의 사건을 “피의자가 검사라서 애써 검찰이 수사하지 않은 사건”이라고 지적했다.
공소시효는 11월11일
검찰 3차 수사팀 또한 1·2차 수사의 문제점을 검토했다. 1·2차 수사팀의 전현직 검사 8명을 12차례 조사했다. 2019년 6월4일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여환섭 수사단장(검찰 3차 수사팀)은 “혹시 (1·2차 수사팀이) 외압을 받아서 뇌물죄를 적용하지 않았는지, 소극적으로 수사한 건 아닌지 조사했다. 더 엄격하게 조사를 하려면 (검사들을) 입건해야 한다. 입건하려면 공소시효가 남아 있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공소시효(직무유기 5년)가 지나 수사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1차 수사팀은 2013년, 2차 수사팀은 2014년에 활동했다.
특수직무유기의 공소시효는 10년이다. 1차 수사팀의 불기소(2013년 11월11일)를 기준으로 하면 2023년 11월11일이다. 김학의 전 차관과 건설업자 윤중천씨의 범죄 혐의를 특가법(수뢰·제3자 뇌물·알선수뢰, 알선수재)으로 적용하면 아직 공소시효가 살아 있다는 것이, 고발인의 논리다. 동영상, 차명 휴대전화(대포폰), 전화 통화 기록, 다이어리, 운전기사 증언 등 이미 수사기관이 확보한 증거로도 2013년 당시 검찰이 김학의 전 차관을 수사 및 기소할 이유는 충분하다는 지적이다.
공수처는 7월27일 차규근 위원을 불러 고발인 조사를 했다. 9월5일에는 서울중앙지검을 압수수색했다. 김학의 사건 수사 기록을 확보하기 위한 차원이다. 공수처 관계자는 〈시사IN〉과 전화 통화에서 “현재 기록 검토 중이고,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정도만 말씀드린다”라고 밝혔다.
공소시효 만료를 44일 앞둔 9월27일 차규근 위원은 재정신청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자신의 페이스북에 남겼다. 공수처의 불기소를 대비하고 있다는 뜻이다. 재정신청은 검찰·공수처의 불기소 결정에 불복한 고소·고발인이 마지막으로 한번 더 법원에 기소 여부를 묻는 절차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2021년 1월19일 인사청문회에서 이미 김학의 사건 관련 질문을 받은 바 있다. 김학의 사건 등 검찰의 권한남용에 대한 공수처의 역할을 묻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게 지금 사실관계가 다 맞다면, 또 공소시효가 지나지 않았다면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똑같은 범죄를 저질렀는데 권력기관에 있는 사람은 처벌을 안 받는다, 그것은 법 앞의 평등 원칙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법의 지배 원리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나라 헌법 질서상 허용되지 않는다. 공수처의 의의도 거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김은지 기자 smile@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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