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O리그 역사에, 이런 선수는 없었다… ‘철인’ 노경은, SSG에 은총을 내리다

김태우 기자 2023. 10. 17. 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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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잠실 두산전에서 기념비적인 30홀드 고지를 밟은 노경은 ⓒ곽혜미 기자
▲ 노경은은 마흔의 나이에도 여전한 체력과 구위를 자랑하고 있다 ⓒ곽혜미 기자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2022년 제주 스프링캠프 당시 노경은(39‧SSG)은 “던질 수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그리고 “열심히 던지겠다”고 덧붙였다. 그간 쌓았던 경력, 그간 쌓았던 명성 따위는 깨끗하게 잊었다. 그저 방출의 설움을 딛고 다시 선 마운드가 마냥 소중하기만 했다.

노경은은 초심에서 우러나왔던 약속을 지켰다. 팀이 필요할 때는 묵묵하게 마운드 위에 섰다. 선발이든, 불펜이든 보직을 가리지 않았다. 그리고 누구보다 성실하게 던졌다. 결과도 결과지만,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마운드에서 던지는 게 여전히 설렌다는 노경은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렇게 지난해 팀의 역사적인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의 초석을 놨다.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전천후 활약을 했던 노경은이 있었기에 대업은 시작되고 완성될 수 있었다.

그렇게 성공을 거뒀다. 팀 내 입지도 단단해졌다. 나태해질 법도 했다. 하지만 투구의 소중함을 아는 노경은은 그 ‘특권’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20대 젊은 후배들보다 더 많은 운동량을 가져갔고, 더 오랜 시간 웨이트트레이닝과 싸웠다. 그 결과 올해도 후배들 못지않은 경쟁력을 보여주며 팀 불펜을 이끌어가고 있다. 노경은은 여전히 팀이 가장 중요할 때 믿고 투입할 수 있는 선수다.

지난해는 선발과 불펜을 오갔다. 여기에 시즌 중반에 부상이 있었다. 부상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체력 관리는 그래도 수월하게 이뤄질 수 있었던 측면이 있다. 그래서 올해 성적이 더 대단하다. 노경은은 이제 팀이 정규시즌 한 경기를 남겨둔 16일 현재 벌써 76경기에 나갔다. 그리고 83이닝을 던졌다. 9승5패2세이브30홀드 평균자책점 3.58의 성적은 뜯어보면 뜯어볼수록 가벼이 여길 수 없는 대목이 있다.

83이닝 모두 불펜 출전이다. 지난해와 또 결이 다르다. 올 시즌 리그 전체 구원 투수 중 가장 많은 이닝을 소화했다. 보통 ‘위닝팀’의 필승조가 한 시즌을 치르면서 던지는 이닝은 60~70이닝 수준이다. 그런데 노경은은 80이닝을 넘겼다. 리그에서 구원 80이닝 이상 투구 투수는 노경은과 임기영(KIA‧82이닝)이 전부다. 70이닝을 넘긴 선수도 8명에 불과하다. 대단한 수치다.

게다가 ‘이닝의 질’도 잘 살펴야 한다. 노경은은 6회 이후 마무리 서진용이 나설 때까지 팀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등판했다. 보통 상대의 강한 타순에 걸렸을 때 노경은을 호출하거나, 팀이 박빙 리드를 하고 있을 때 등판하는 경우가 많았다. 같은 이닝, 같은 투구 수를 던져도 더 큰 부담감과 중압감 속에서 싸웠다는 의미다. 올해 팀 마무리 서진용의 멀티이닝이 최소화될 수 있었던 것도 노경은이 앞서 상대의 중요한 타순을 정리해준 덕이 컸다.

▲ 노경은은 만 39세 이상 투수로는 30홀드-80이닝을 동시 달성한 역사상 첫 선수가 됐다 ⓒSSG랜더스
▲ 노경은은 단순히 많은 던진 것뿐만 아니라 위기 상황을 잘 막아내며 SSG 불펜의 붕괴를 막아냈다 ⓒSSG랜더스

나이를 고려하면 이런 업적은 더 대단하게 느껴진다. ‘앞으로 다시 나올 수 있을까’는 의문이 들 정도다. KBO리그 역사상 만 39세 이상 선수가 순수 불펜으로 83이닝 이상을 던진 건 2015년 박정진(한화‧96이닝) 한 명뿐이다. 당시 한화의 불펜 사정과 기용 전략이 맞물린 예외적인 케이스라고 봐야 한다. 다시 나올 수 있을지 의문이었는데 노경은이 이 역사에 이름을 올렸다.

16일 잠실 두산전에는 의미 있는 기록도 썼다. 노경은은 선발 로에니스 엘리아스가 7이닝을 1실점으로 막고 내려간 뒤 3-1로 앞선 8회 마운드에 올랐다. 노경은은 이날 박준영을 삼진으로, 박지훈을 포수 땅볼로, 그리고 조수행을 투수 땅볼로 막아서고 1이닝을 공 7개로 정리하며 홀드를 기록했다. 시즌 30번째 홀드가 올라가는 순간이었다. 홀드왕은 이미 박영현(kt‧32홀드)로 확정된 상황이지만, 올 시즌 두 번째로 30홀드를 기록한 선수가 됐다는 건 주목할 만했다.

만 39세, 예전 기준으로 따지면 우리 나이 마흔이다. 마흔 살의 투수가 76경기에 나가 83이닝을 던진 것도 전례가 없는 일이고, 마흔 살의 투수가 30홀드를 기록한 것도 KBO리그 역사에 전례가 없던 일이었다. 만 35세 이상으로 범위를 넓혀도 역시 첫 30홀드다. 종전 기록은 2021년 우규민(삼성)이 36세 시즌에 기록한 24홀드였다. 넉넉하게 격차를 벌린 채 시즌을 마무리하고 있다.

그간 20홀드 이상을 기록한 30대 중반의 불펜 투수들은 제법 있었다. 그래서 30홀드는 그간 노경은의 헌신을 재조명할 수 있는 근사한 타이틀이다. 기록으로 설명할 수 있고, 또 기록으로는 설명이 어려운 선수. 마운드 앞에서는 아이가 되는 베테랑의 헌신이 SSG 마운드에 ‘은총’을 내렸다.

▲ SSG 불펜의 수호신으로 활약하고 있는 노경은 ⓒSSG랜더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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