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법관 156명 중 여성 8명뿐···그마저도 정권따라 오락가락[이토록 XY한 대법원]

이혜리·김희진·김혜리 기자 2023. 10. 17. 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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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여성 대법관 20년, 아직도 여성이 부족하다
1954년 첫 여성 법관 임용, 2000년대 주요보직 배치
2004년 김영란, 사법 역사상 최초의 여성 대법관 임명

156명 중 8명. 1948년 제헌헌법 제정 이후 현재까지 임명된 대법관 중 여성의 수다. 남성들이 지배한 법관 사회에서 여성 법관들은 가는 곳마다 최초이자 소수의 역사를 썼다. 2004년 첫 여성 대법관이 탄생했다. 그러나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법원 문화에서 여성 대법관 수는 정권 성향에 따라 오락가락했다.

“여자가 판사라니! 시기상조요.” 1952년 김병로 대법원장이 이태영 박사를 판사로 임용하자고 건의하자 이승만 대통령이 했다는 말이다. 여성 최초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사법고시에 합격한 이 박사는 ‘여자는 안 된다’는 정권의 반대로 판사가 되지 못하고 변호사가 됐다.

1954년 황윤석 판사가 여성 최초로 법관에 임용되며 여성 법관의 길을 열었다. 1973년 임관한 이영애 판사는 여성 법관으로는 처음으로 1980년 서울형사지법 판사, 1986년 대법원 재판연구관으로 근무했다. 지방법원 부장판사(1988년), 고등법원 부장판사(1995년), 법원장(2004년)에 보임된 첫 여성 법관도 이 판사였다.

2000년대에 들어서야 여성 법관이 형사재판부와 사법행정 주요 보직에 배치되기 시작했다. 형사단독(2001년), 지원장·고등법원 수석부장판사·법원행정처 심의관(2005년), 영장전담(2007년), 형사합의부 재판장(2009년)이다.

2003년은 여성 대법관 탄생의 분기점이 됐다. 이때까지 대법관은 대법원장이 입맛에 맞는 사람을 서열대로 제청하는 게 관행이었다. 제청 과정에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이 반영돼야 한다는 비판이 잇따르자 대법원은 대법관 제청 자문위원회를 만들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최초의 여성 법무부 장관으로 발탁한 강금실 변호사도 자문위 위원이었다.

그러나 최종영 대법원장이 일방적으로 정한 대법관 후보를 자문위에 통보했고 자문위 위원들이 사퇴하는 일이 벌어졌다. 나중에 대법관을 지낸 박시환 당시 서울지법 부장판사(전 대법관)는 최 대법원장의 일방통행에 반발해 사표를 내기도 했다. 전국 법원의 단독판사들은 연판장을 돌렸다. 이른바 ‘4차 사법파동’이다.

사법파동 수습 과정에서 최 대법원장은 대법원장 몫 헌법재판관에 전효숙 판사를 지명했다. 전 판사는 서열을 깨고 최초의 여성 헌법재판관이 됐다. 이어 2004년 7월 김영란 판사를 노 대통령에게 제청했고,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법관으로 김영란 대법관이 임명됐다. 서열을 깬 대법관 인선을 놓고 고위 법관들은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2006년 6월 이용훈 대법원장이 대법관 5명을 제청하면서 여성 1명을 포함시켰다. 2호 여성 대법관인 전수안 판사다. 여성 대법관 2명 시대가 열렸다.

문재인 정부 때 여성 대법관 4명 됐지만 윤석열 정부서 다시 줄어

이명박 정부 들어 분위기는 다시 바뀌었다. 2010년 첫 여성 대법관의 후임이라는 상징성에도 불구하고 김영란 대법관의 후임에 남성을 임명했다. 2012년 11월 양승태 대법원장이 취임 후 처음으로 대법관 2명을 제청하면서 여성인 박보영 판사를 포함시켰다. 전수안 대법관 퇴임 뒤 여성이 줄었다가 2012년 11월 김소영 대법관이 취임하면서 다시 2명 체제가 유지됐다. 박근혜 정부는 5년간 여성 대법관을 한 명도 임명하지 않았다. ‘서오남(서울대·50대·남성 법관)’들로 채워진, 보수화·획일화된 대법원이라는 지적이 나왔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여성 대법관이 늘었다. 문재인 정부 첫 대법관 인선에서 양 대법원장은 2명 중 1명으로 여성인 박정화 판사를 제청했다. 같은 해 9월 김명수 대법원장은 취임 후 첫 대법관 제청에서 여성인 민유숙 판사를, 두 번째 제청에서 역시 여성인 노정희 판사를 지명했다. 이로써 여성 대법관 4명 시대가 열렸다. 2018년 11월 퇴임한 김소영 대법관 후임에 남성이 임명돼 다시 여성 대법관은 3명으로 줄었다. 김 대법원장은 2021년 9월 오경미 판사를 대법관으로 제청해 4명 체제가 회복됐다.

윤석열 정부에선 대법관 구성에 다양성을 고려하지 않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첫 대법관으로 남성인 오석준 판사를 임명한 데 이어 지난 6월 조재연·박정화 대법관 후임 제청 과정에서 ‘여성 대법관 비토(거부)설’이 흘러나왔다. 김 대법원장은 결국 남성 대법관 후보 2명을 제청했고, 최종 후보에 올랐던 여성 판사 3명은 제외됐다. 오는 12월 민유숙 대법관, 내년 8월 노정희 대법관 등 여성 대법관들의 임기가 잇따라 만료된다. 대법원장은 아직 한 번도 여성이 맡은 적이 없다.

경향신문의 기획시리즈 [이토록 XY한 대법원]의 XY는 남성의 성염색체를 말합니다. 헌정 사상 최초의 여성 대법관이 탄생한 지 20년이 됐지만 여전히 대법원은 남성 중심적으로 구성돼있습니다. 대법관 다양화와 관련한 더 많은 기사를 읽고 싶으시면 아래 링크로 들어오세요.
링크: https://m.khan.co.kr/series/articles/as378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김희진 기자 hjin@kyunghyang.com, 김혜리 기자 ha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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