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확대 外 의전원 신설 가능성… 필수의료 수가 인상도 검토
수도권 인력 쏠림·민간 유출 해소 기대
세종·전남엔 의대 단 1곳도 없어
1000명 증원 땐 의대 신설도 가능
카이스트·포항공대에 의전 신설
‘의사과학자’ 양성 관측도 나와
공공의대 설립방안은 제외된 듯
의협, 17일 긴급회의서 대응 논의
정부가 17년째 동결 중인 의과대학 정원(3058명)을 1000명 이상 확대하는 파격적인 방안을 검토 중인 가운데 의사 증원과 관련한 의사단체의 ‘파업 불사’ 예봉을 피하기 위해서는 지역 국립대병원 인력·임금 규제부터 풀어줘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역 국립대병원들이 ‘기타 공공기관’으로 묶여 있어 정원 규모 및 총액 인건비 관련 재량권을 부여해야 민간병원과 경쟁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의협 강력 반발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 방침에 의사단체 등이 반발하는 가운데, 이필수 대한의사협회장이 16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건물에서 나오고 있다. 대한의사협회 등은 정부가 의대 정원 증원을 단독 발표할 경우 의료계와의 신뢰를 깨는 일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뉴스1 |
대통령실 등은 ‘필수의료 공백 사태’ 등에 대응하기 위해 2025학년도 대학입시부터 40개 의대 정원을 1000명 이상 획기적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대통령실은 의대 입학정원 확대가 윤석열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라며 임기 내 추진을 현실화하겠다는 방침이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날 통화에서 “의대 정원 확대 문제는 우리가 국정과제 중 하나로 당위성과 절박함을 갖고 추진하고 있다”면서도 “아직 구체적인 안이 마련되거나 발표 시점이 정해지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전날 열린 고위 당정협의회에서도 의대 정원 확대가 불가피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방기선 국무조정실장은 이날 통화에서 “기본적인 방향에 대해서만 얘기했고 증원 규모라든가 구체적인 얘기는 없었다”고 전했다.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 등 필수의료 인력 확보의 필요성과 당위성에 대해 조만간 방침을 밝힐 전망이다. 정확한 증원 규모와 확대 방식 등 구체적인 안은 향후 조사와 여론 수렴 절차를 거쳐 확정할 계획이다.
2024학년도까지 전국 40개 의대·의전원 모집정원은 3058명. 하지만 이들의 3분의 1가량(13개교, 1035명)은 서울·경기·인천에 몰려 있는 게 문제다. 세종, 전남에는 의대가 1곳도 없다. 이런 까닭에 의사과학자 양성을 강조해온 정부가 이공계특성화대학인 카이스트(KAIST)와 포항공대(POSTECH)에 연구중심 의전원 신설안을 내주는 쪽으로 중장기적 의사 증원에 나설 수도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의대 신설 방안도 검토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원 증원 규모가 300명 정도이면 의대 신설 없이 기존 의대 정원을 확대하면 되지만 1000명 이상일 경우에는 의대를 신설할 가능성도 높다. 일각에서 정부가 기존 의대 정원 확대뿐 아니라 연구중심 의학전문대학원 신설 쪽으로 장기적 의사 증원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하는 배경이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3월 “카이스트, 포스텍과 같은 대학에 의대를 신설해 의사과학자를 양성하는 방안 등을 포함해 여러 가지를 강구하겠다”고 밝혔다.다만 문재인정부가 추진했던 공공의대 설립 방안은 제외될 것으로 보인다. 의대 입학 후 일정 기간 공공의사로 근무하는 것을 전제로 하는 공공의대 설립안은 정치권과 시민단체 일부에서 요구하고 있는 사안이다. 조 장관은 최근 “공공의대 신설도 검토는 하겠으나 개인적으로는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
이르면 2025학년도부터 서울대·고려대·연세대급 의대 입학정원이 늘어날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대학 입시에도 지각변동이 예상된다. ‘N수생 폭증’, ‘이공계열 이탈’ 등 의대 쏠림현상의 부작용을 양산하지 않기 위해서는 정원 배분 단계에서부터 이를 방지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의료파업에 번번이 증원 ‘백기’… “의정협의체 거쳐야” vs “尹 국정과제”
정부가 의료계 반발에도 의대 정원 확대라는 강수를 두고 있는 가운데 일각에서는 자칫하면 ‘의료계 파업→정책 백지화’라는 과거 전철을 밟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의사 단체는 정부의 발표를 일단 지켜보자는 분위기이지만, 구체화된다면 파업 등 ‘강경 모드’로 전환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16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정부 의대 증원 계획은 2차례 무산됐다. 복지부는 2000년 의약분업 사태 당시 의대 정원이 10%를 줄어든 지 12년 만인 2012년 약 500명 수준으로 의대 정원 확대를 추진했다. 그러나 복지부는 당시 “의사가 부족하다는 데 대해 의사·병원 단체와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했다”며 계획을 백지화한 바 있다.
김이연 의협 대변인은 이날 세계일보와 통화에서 “지금까지 필수·지역의료에 대한 부분을 주로 논의했다”며 “지난달 14차 회의에서 복지부가 의대 정원에 대해서도 논의하고 싶다고 요청을 해왔기 때문에 다음 달 초 예정인 15차 회의 때부터 이 문제를 논의하는 거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 이후부터 현재까지 복지부로부터 의대 증원 관련 자료나 제안은 전혀 없었다”며 “중간 과정을 다 건너뛰고 갑자기 ‘1000명 증원’ 이런 식으로 발표를 한다면 정상적인 국가의 정책 결정 과정이 맞나 하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의협은 의대 증원에 대해 9·4의정합의에 따라 진행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의협 대의원회는 이날 성명을 내고 “의대 정원 확대가 사실일 경우 가용한 모든 수단으로 총력 대응에 나서야 한다는 데 뜻을 모았다”며 “복지부와 의협이 의대 정원 증원에 관한 불신 해결을 위해 절차에 따라 적극적으로 협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정부는 의료계의 눈치를 보면서도 의대 정원 확대가 국정과제였다는 점과 증원 찬성 여론 등을 업고 강행하는 분위기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전날 의협이 반대 투쟁을 하더라도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또다른 정부 관계자는 최근 “(9·4의정합의가) 구속력이 있는 합의는 아니다”며 “의사들이 반대한다고 의대 증원을 할 수 없는 건 아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대체로 강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정형선 연세대 교수(보건행정학)는 “의대 증원 이슈는 당사자인 의사와 합의해서 정책을 결정할 수 없는 사안”이라며 “압도적인 다수의 국민이 피부로 느끼면서 원하고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늦출 수 없다”고 강조했다.
한국보건의료포럼 부대표를 맡고 있는 장성인 연세대 교수(예방의학)는 “이번 방안에 공공의대 공정성 논란 등이 없다면 의대생들은 크게 개의치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의사가 늘면) 건강보험 의료비뿐만 아니라 비급여 진료비가 많이 증가할 수 있기 때문에 국민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설득하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송민섭·이현미·박지원 기자 이정우·이정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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