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도 외면하는 워크아웃법 일몰...법조계 “법원·도산전문가 개입 필요”
IMF 이후 제정된 한시법...5번 연장
국회서도 “국내 도산제도 안착 돼” 연장 신중론
기업 신청 건수도 감소세... “제3자 견제 필요”
부도 위기에 처한 기업이 채권단 중심으로 채무조정을 받을 수 있게 한 ‘워크아웃’ 제도가 15일로 종료됐다. 워크아웃은 1997년 대기업의 연쇄 부도를 경험한 뒤 금융당국이 고안한 일종의 구조조정 패스트트랙 제도다. 4년짜리 한시법으로 제정됐으나 5차례 기한 연장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이번에도 기한이 연장될 가능성이 높지만 국회와 법조계에선 ‘이번에야말로 상시법화(化)할 지, 아예 종료할 지 끝장토론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워크아웃을 존속하더라도 현행 제도가 금융당국과 은행 중심으로 폐쇄적으로 이뤄지는 만큼 법원과 도산 전문가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2001년 제정된 기업구조조정촉진법(기촉법)의 적용기한이 15일부로 끝났다. 기촉법은 워크아웃 도입을 골자로 한다. 신용등급 C 등급 이하를 받아 당국이 ‘부실징후기업’이라고 분류한 기업이 대상이다. 채권단 75% 이상이 동의하면 만기 연장, 채무 기한 연장, 신규 자금 지원 등을 해준다.
금융위는 기촉법 재입법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금융권 자율협약을 통해 구조조정을 하겠다고 밝혔다. 애초 기촉법도 채권단끼리의 자율협약이 모태였다. 다만 자율협약은 그야말로 ‘협약’인 만큼 법적 강제력, 구속력이 부여되지 않아 구조조정 속도가 워크아웃보다 늦을 수 밖에 없다는 우려가 나온다.
◇ 워크아웃 신청건수 감소세...국회서도 “연장 필요한가” 신중론 나와
기촉법은 ‘부실기업의 빠른 구조조정’ 필요성을 강조하는 금융위의 주장이 받아들여지면서 20년 넘게 생명력이 유지돼왔다. 그런데 지난 6월 27일 기촉법 일몰 연장 법안이 상정된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는 다른 기류가 감지됐다. 법조인 출신 오기형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IMF(국제통화기금) 직후와 달리 지금은 대한민국에 화해, 파산, 회사정리 절차가 안착됐다”며 “23년이 지난 지금 여전히 기촉법 시스템을 중심축으로 가져가는 게 맞는지 법원과의 논의 절차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검찰 출신 조응천 민주당 의원도 “시장 기능에 의한 기업 구조조정이 제대로 가능할 때까지 임시방편으로 만들어진 한시법을 ‘이번에는 호랑이가 나타나 안 되겠다. 이번에는 또 사자가 나왔다’며 연장하고 있다”며 “사적 자치의 원칙에 정면에 반하지 않나 하는 의문이 들고 재산권 행사 자유도 과다하게 침해하는 문제가 아직도 해소하지 않았다”고 했다.
국회와 금융위에 따르면 신용등급 C등급 이하 기업 수는 2020년 66개, 2021년 79개, 2022년 84개로 증가한 반면 워크아웃 신규 신청 기업은 2020년 8개, 2021년 8개, 2022년 3개에 불과했다. 법인 회생사건 접수 건수도 2020년 1552건, 2021년 1191건, 2022년 1047건으로 감소했다.
금융위는 부실징후기업이 느는데도 워크아웃 신청 기업 수가 감소하는 것은 정부의 정책 금융 지원 조치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정부가 기업 줄도산을 막기 위해 워크아웃을 통해 채권단이 지원하는 것과 같은 종류의 채무조정 조치를 선제적으로 해주면서, 워크아웃을 신청하지 않아도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법인 회생사건도 함께 감소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있다.
그러나 코로나 이전부터 워크아웃 신청건수는 감소세였다. 2017년 32건, 2018년 25건, 2019년 20건 등이다. 이 기간 법원 회생사건 수는 2017년 1451건, 2018년 1663건, 2019년 1722건으로 증가세였다.
워크아웃 신청 기업이 감소하는 이유는 기업이 제도를 통해 누리는 장점이 퇴색됐기 때문이다. 과거 기업이 자금을 주로 은행에서 공급 받았다면 이젠 주식, 출자지분, 기업어음, 회사채 등 조달 창구를 다양화 하면서 채권자가 늘었다. 이에 금융당국은 기촉법을 개정해 워크아웃 개시 여부를 결정하는 채권자를 은행 중심의 채권금융기관에서 모든 금융 채권자로 확대했다. 이에 채권단 간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며 워크아웃 개시 자체가 어려워졌다.
법정관리와 차별화 되는 워크아웃의 장점인 기업에 대한 신규 자금 지원도 은행의 소극적인 태도로 활발하게 이뤄지지 않았다.
◇ “워크아웃, 존재 가치 있어... 법원·도산 전문가 견제 필요”
법조계와 금융권에선 전세계적으로 법원 밖 구조조정을 다양화 하는 추세라는 점을 고려할 때 워크아웃의 존재 가치는 있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현재의 워크아웃은 채권단 75%가 나머지 채권자의 권리를 제한할 수 있어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음에도 법원의 사전 인가가 필요하거나 독립적인 외부 전문가의 감독을 받지 않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전우정 변호사는 2020년 한국비교사법학회에 기고한 논문에서 “영국, 호주의 구조조정 절차에선 독립적인 제3자 도산실무가가 관여하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 법원의 사전 인가를 받을 것을 요건으로 한다”며 “현행 기촉법상 관리 절차에선 도덕적 해이와 대리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영국, 호주의 경우 변호사나 회계사를 도산 전문가로 육성한다.
한국은행 역시 작년 공개한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자율협약에 의한 채무조정이나 기촉법상 워크아웃은 채권자 주도로 이뤄지는 경향이 있으므로 법원 외에서 공정하고 중립적인 제3자 역할을 하는 도산 실무가의 육성, 활용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채권자는 기업의 성장보다 원리금 보전에 관심이 있어 기업과 다른 방향으로 판단할 수 있는 만큼 채무자와 채권자의 입장을 공정하게 고려할 수 있는 제3자가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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