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버스 50%·화물차 20%가 중국산···"느슨한 보조금 규정 손봐야" [biz-플러스]
전기버스 공급가격 1억 이상 낮아
보조금 다 못받아도 수요 이어져
모델Y 등 승용차 부문도 잠식 우려
"국내산업 기여도 따져 보조금 줘야"
중국산 전기버스의 점유율이 50%를 돌파한 가운데 전기화물차의 국내 시장점유율도 20%를 넘어섰다. 이 같은 비중은 사상 최고다. 국산 전기차 판매를 유도하기 위해 정부가 보조금 정책을 손봤지만 낮은 가격을 앞세운 중국산 전기차의 공세는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17일 서울경제신문이 국토교통부와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의 자료를 분석한 결과 올해 들어 9월까지 국내에서 팔린 전기버스 1514대 중 675대가 중국산으로 나타났다. 전기버스 시장의 44.6%를 중국산이 채운 것이다. 지난달에는 중국산 전기버스의 시장점유율이 52.3%로 절반을 넘어 역대 최고를 기록하기도 했다.
트럭과 밴을 포함한 전기화물차 시장에서도 중국산 제품의 존재감은 커지고 있다. 올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중국산 제품의 전기화물차 시장점유율은 한 자릿수에 머물렀지만 8월부터 두 달 연속 20%일 정도로 급성장했다. 국내에서 팔린 전기화물차 5대 중 1대가 중국산인 셈이다.
중국산 전기버스와 전기 화물차는 왜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점유율이 치솟을까. 전문가와 업계는 우리나라의 전기차 보조금 지급 기준이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등 경쟁국과 비교할 때 다소 느슨하다는 데서 이유를 찾는다. 미국이나 EU는 값싼 중국산 전기차가 전기차 보조금을 휩쓸어 시장을 잠식할 우려가 제기되자 자국산 부품을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하도록 하는 규정을 도입하거나 고용 창출을 유도하는 방식으로 전기차 보조금 제도를 개편해 운영하고 있다. 한국 정부도 이런 흐름을 반영해 국산 전기차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가도록 보조금 정책을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부터 에너지밀도가 높은 배터리를 장착한 전기버스에 보조금을 더 많이 주기 시작했다. 에너지밀도가 높은 삼원계 리튬 이온 배터리(NCM)를 사용하는 국산 전기버스를 밀어주는 차원이다. 여기에 안전 기준과 관련한 규정까지 추가해 국산 전기버스가 최대 7000만 원의 보조금을 받을 때 중국산 버스는 절반 가까이 줄어든 보조금만 받도록 했다.
정책이 발표된 직후인 2분기 중국산 전기버스의 시장점유율은 37%로 소폭 낮아졌지만 효과는 오래가지 못했다. 3분기 들어 다시 점유율이 50%에 육박하게 높아졌다. 단가가 낮은 리튬인산철(LFP) 배터리를 탑재해 가격을 대폭 낮춘 중국산 전기버스가 시장의 선택을 받은 결과다. 국산 전기버스의 대당 가격이 약 3억 5000만 원 수준인 반면 중국산 전기버스는 이보다 1억 원 이상 저렴하다. 보조금을 100% 받지 못한다 해도 공급 가격 자체가 낮은 만큼 운수 업체의 수요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운수 업계의 한 관계자는 “버스 회사 입장에서는 가격도 저렴하고 성능도 비슷한 중국산 전기버스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전기 화물차에도 AS센터 유무에 따라 보조금을 최대 20% 삭감하는 등 일부 견제 장치를 뒀지만 조건 충족이 어렵지 않아 중국산 전기 화물차는 거침없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다. 현재 1톤 전기트럭은 1회 충전 시 최대 주행거리가 250㎞만 넘으면 보조금을 100% 주는 탓에 중국산 1톤 전기 트럭은 일부 지역에서 1000만 원대에도 구매가 가능하다. 중국 지리자동차가 출시한 전기 밴 쎄아는 공급 가격이 3980만 원에 불과해 보조금을 가장 많이 주는 경남 거창군에서는 1270만 원에 구매할 수 있다.
문제는 승용차 부문에도 유사한 양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미 테슬라는 중국에서 생산해 기존 대비 가격을 2000만 원 가까이 낮춘 모델Y를 국내에 선보여 돌풍을 일으켰다. 테슬라 모델Y는 지난달에만 국내에서 4206대가 팔리며 현대차(005380)·기아·한국GM 등 국내 완성차 제조사의 승용 전기차 판매량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은 판매 실적을 거뒀다. 향후 비야디(BYD) 등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인정받은 중국 제조사들이 전기차를 저렴한 가격에 국내에 내놓기 시작하면 보조금을 일부만 받더라도 모델Y처럼 소비자의 선택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업계의 우려다.
전문가들은 전기차 보조금 지급 기준을 국산 전기차에 유리한 방향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단순히 가격만 아니라 국산 부품 사용 여부, 국내 최종 조립 여부, 일자리 창출 규모 등을 종합적으로 살펴 보조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주요국이 자국 산업에 유리하게 전기차 보조금 정책을 설정한 만큼 우리가 유사한 정책을 펴도 통상 마찰이 일어날 가능성이 낮다는 관측도 있다.
정인교 전략물자관리원장은 “많은 국가가 경제안보 논리를 근거로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어 이미 세계무역기구(WTO) 등 자유무역 체제 협정이 무력화된 상황”이라며 “무역 분쟁을 우려해 다른 국가들이 하고 있는 정책을 우리가 피해야 할 이유는 없다”고 제언했다.
다만 수출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황을 고려해 전기차 보조금을 국산 제조사에 유리하게 개편하더라도 명분을 내세울 수 있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한국은 수출 시장이 크기 때문에 미국처럼 자국 산업을 보호하는 정책을 대놓고 쓰기는 어렵다”며 “에너지밀도 기준을 더 깐깐하게 적용해 국산 전기차를 보호하거나 충전기 설치 기여도를 따져 보조금을 차등 지급하는 방식으로 국내 완성차 업계를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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