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값도 팔릴까 말까”… ‘유령건물’ 전락한 지식산업센터[올앳부동산]
※투기와 투자는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집값이 오르긴 오른 걸까. 우리가 살게될 집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통계로 점철된 부동산 기사의 행간을 읽어내고 판단을 내리려면 나만의 질문과 관점이 필요합니다. 경향신문만의 질문과 관점으로 부동산의 모든 것을 짚어드리는 ‘올앳부동산’은 경향신문 칸업(KHANUP) 콘텐츠입니다. 더 많은 내용을 읽고 싶으면 로그인 해주세요!
지난 6일 경기도 평택시 고덕면 해창리의 지식산업센터(이하 지산) ‘아이타워’. 평일 업무시간임이 무색하게 주차장이 텅 비어있었다. 이달 4일로 입점지정기간이 끝났지만 302개 호실 중 실제 입주가 된 곳은 10곳 미만으로 입주율은 3%대에 그쳤다. 관리업체 관계자는 “그마저도 직접 분양받은 사람들이거나 분양자들의 지인이 들어온 것”이라고 전했다.
준공 7개월이 지난 바로 옆 ‘STV 지식산업센터’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10층에 있는 88개 호실 중 실제로 영업을 하고 있는 곳은 소규모 건설사 단 한 곳뿐. 나머지 호실엔 인적 대신 임대·매매문의 스티커만 나부꼈다. 아예 문을 열어둔 곳도 많았다. 바로 옆건물에서는 또다른 지식산업센터가 한창 건설중이었다.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로부터 차로 15분 거리에 있는 평택 고덕면 해창리에는 이러한 지산이 9곳에 달한다. 평택캠퍼스가 증설하면 삼성전자 협력업체 등이 입주할 것이라는 기대심리에 기대 2020~2021년 우후죽순 공급됐던 곳들이다. 하지만 공급 과잉에 금리 인상이 겹치며 수익률이 급감한 지금은 아무도 찾지 않는 ‘유령 건물’이 되어버렸다.
부동산 호황기 주택 규제를 피할수 있는 ‘마지막 투자처’로 각광받았던 지산이 ‘투자자들의 무덤’으로 전락했다. 평택 뿐 아니라 화성·남양주·하남·고양 등 다른 수도권 지산도 공실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어서다. 전문가들은 공급 과잉으로 촉발된 공실 문제가 당분간 해소되긴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지산 투자 광풍’의 결말
2021년 9월, A씨는 은퇴 자금 1억원 정도에 은행 대출을 받아 평택 고덕의 지산 5개 호실을 분양받았다. ‘중도금 무이자’ 조건을 내건 분양 대행사는 “계약금 10%정도의 초기 자본만 있으면 호당 60~70만원의 임대료로 ‘현금흐름’을 만들수 있다”며 계약을 권했다.
그런데 지난해 미국발 금리인상으로 당시 2~3%대였던 대출 금리가 6~7%대로 치솟았다. 수출감소로 반도체 생산이 급감하며 부동산 수요도 줄었다. 부동산 경기가 빠르게 얼어붙자 인근 임대료 시세는 반토막이 났다. 그마저도 임차인을 찾지 못한 A씨는 당장 다음달부터 이자만 360만원을 내야할 처지다. A씨는 “이대로 가면 이자를 내지 못해 압류에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날 기자가 찾은 해창리 인근의 B부동산에는 자신과 가족 명의로 분양받은 6개 호실을 한꺼번에 내놓겠다는 30대 여성, 은퇴 후라 고정소득이 없다며 급매를 부탁하는 60대 부부가 연이어 찾아왔다. 공인중개사는 “분양가의 50% 매물도 매수자를 찾기 어려울 수 있다”며 난색을 표했다.
다른 수도권 지식산업센터들도 사정은 비슷하다. 삼성전자 기흥, 화성, 수원사업장과 인접해 한때 분양가 프리미엄이 1000만원 넘게 붙기도 했던 화성 동탄, 서울 주요 업무지구와의 접근성이 강조됐던 하남 미사와 고양 향동지구 지산에서도 계약금 포기 매물이나 분양가보다 매매가를 낮춘 ‘마피(마이너스)’ 매물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화성 동탄의 C공인중개사는 “중도금을 낼 여력이 없는 분양자들이 계약금을 포기하고 급매물을 계속해서 내놓고 있다”며 “최근 매매거래가 몇건 체결되긴 했지만 동탄 테크노밸리 일대에서 입지가 좋고 신축인 지산을 기준으로 봐도 입주율은 30% 미만”이라고 전했다.
지어도 너무 많이 지었다
지산 ‘붐’이 본격화된 것은 2020~2021년 들어서다. 저금리 기조 속에서 집값이 폭등하고 강도 높은 주택 규제로 투자처가 막히자 개인투자자들의 뭉칫돈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분양가·매매가의 70~80%까지 은행 담보대출이 가능하다보니 초기 투자금이 적게 든다는 점, 양도세와 취득세 규제로부터 자유롭다는 점도 직장인과 자영업자의 ‘영끌 투자처’로 각광받은 요인이었다.
특히 지산은 서울을 제외한 경기·인천 지역에 절반 이상이 몰려있다. 서울은 기존 공장(사무실)이 멸실한 자리에만 지을 수 있어 공급에 한계가 있지만, 수도권이라도 아직 생활 인프라가 갖춰지지 않은 외곽 지역은 상대적으로 땅값이 저렴해 대량 공급도 가능하다. 개발업자들 입장에서는 더 큰 수익을 낼수 있는 셈이다.
지산이 들어오면 일자리가 늘어날 것이라 생각한 지자체들도 도시계획에 대한 큰 고민 없이 인허가를 남발했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새롭게 승인된 지식산업센터는 2014년 36곳에서 꾸준히 증가해 2019년 130곳, 2020년 139곳, 2021년 130곳 등 3년 연속 100곳을 넘어섰다.
문제는 정확한 수요 예측 없이 장밋빛 희망에 기반해 인허가와 착공·분양이 이루어지다보니 너무 많은 물량이 공급됐다는 점이다.
심형석 미IAU 부동산학과 교수(우대빵부동산연구소 소장)은 “(지산은) 공급자 중심으로 공급이 된 측면이 크다”며 “생활 인프라가 깔리지도 않고 전철·철도가 들어오지도 않은 허허벌판에 지산부터 짓다보니 입주사로서는 구인의 부담이 있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산은 언제쯤 살아날까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주택경기가 회복세에 접어들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지산 시장엔 여전히 찬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8월 직방이 한국산업단지공단 자료와 등기정보광장 실거래가 정보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수도권 지식산업센터 거래량은 2021년 상반기 3470건으로 정점을 찍은 뒤 지난해 상반기 2611건, 올해 상반기 989건으로 급감했다.
전문가들은 주택 경기가 살아난다고 해도 지산의 공실 문제가 곧바로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9월말 기준 전국의 지식산업센터는 1517개인데, 이중 미착공 물량이 304개, 건축 중인 물량이 91개다. 앞으로도 공급될 물량이 많다는 얘기다.
경기 침체라는 변수도 고려해야 한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주택은 생애주기에 따라 수요와 공급이 결정되지만 상업용 부동산은 국내는 물론 해외 경제 상황까지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언제 수요가 회복될지 예측하기 어렵다”며 “경기 침체 여파로 서울 강남권도 사무실을 축소하는 분위기라 당분간은 신도시 지산이 수요를 회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심 교수도 “인허가를 내준 지자체도 책임을 완전히 피하긴 어려울 것”이라며 “장기 공실로 인한 슬럼화를 막으려면 기업을 유치하고 주거와 교통·생활인프라를 다지려는 노력이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했다.
심윤지 기자 sharp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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