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가 되고싶었던 中, 10년간 개도국에 1355조원 퍼부었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신실크로드전략) 포럼을 맞아 해외 정상 29명을 포함한 4000여명의 국빈을 초청한 베이징은 손님 맞이 준비에 분주했다. 개막 전날인 16일부터 화물차들의 시내 진입을 막았고, 유흥업소의 운영도 비공식적으로 금지됐다. 행사장인 국가회의센터 주변은 물론 시내 곳곳엔 특별 배치된 경찰과 군 병력이 눈에 띄었다.
일대일로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핵심 대외전략이다. 올해 10주년을 맞는다. 맞물려 17일 개막하는 3회 일대일로포럼에는 러시아와 아르헨티나 등 140여개국과 30여 국제기구에서 정상급 인사 29명이 참석한다. 그러나 서방 주요국가 정상의 참석 소식은 없다. G7(주요7개국) 중 유일한 회원국 이탈리아는 외려 탈퇴의사를 밝혔다. 한 중국 기업인은 "골목대장 행사를 참 요란하게도 준비한다"고 꼬집었다.
일대일로는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집중 원조해 중국의 영향력을 키우고, 친미진영과 미국의 관계 처럼 강력한 친중 세력권을 형성하기 위한 시도다. 신흥국을 중심으로 일정 효과를 봤다는 해석도 있지만 많은 약소국을 부채의 덫에 빠트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국 국가부채가 급격하게 늘어나는 가운데 이젠 퍼줄 여력이 없다는 내부 비관론도 무성하다.
이번 일대일로 포럼은 정상 38명을 포함, 6000여명이 참석했던 지난 2019년 포럼보다 규모가 확연히 축소됐다. 러시아-우크라이나 간 전쟁, 인도의 친미화 등 외교변수 속에서 위축되고 있는 중국의 영향력에 대한 반증이다.
시 주석은 집권 이듬해인 2013년 카자흐스탄 강연에서 육상실크로드 계획을 발표했다. 일대(하나의 벨트) 계획이다. 한 달여 뒤엔 곧바로 인도네시아 강연에서 해상실크로드 구상을 공개했다. 이게 일로(하나의 길)다. 합쳐서 일대일로다. 육상으로 중국-중앙아시아-튀르키예-러시아-유럽을 잇고, 해상으로 중국-동남아시아-인도-아프리카-유럽을 잇겠다는 실로 원대한 구상이다.
홍콩 SCMP(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는 16일 일대일로에 대해 "시진핑의 국가전략을 넘어 중국의 헌법적 지위를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지난 10년 간 중국은 일대일로에 총력을 기울였다. 무려 1조달러(약 1355조원)를 쏟아부었는데, 전세계서 진행됐거나 진행 중인 3000여개 일대일로 사업비 총액 2조달러(약 2710조원) 중 절반가량을 오롯이 중국이 부담했다.
핵심은 인프라 지원이다. 6월 말 기준 중국과 협약을 맺은 나라만 152개국, 국제기구는 32개다. 주로 아프리카와 동남아, 남미, 중앙아시아에 항구나 댐, 도로 등을 지어준다. 공짜도 상당하다. 시 주석 취임 전인 2012년 이미 2억달러(약 2700억원)를 들여 에티오피아에 AU(아프리카연합) 본부를 지어줬고 브룬디 대통령궁, 짐바브웨 국회의사당·국방대학, 수단 대통령궁, 캄보디아 국립경기장을 연이어 선물했다.
공짜지만 공짜가 아니다. 이후엔 대출이 이어진다. 케냐에서 진행 중인 580km 구간 철도건설,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지부티 간 철도 같은 사업이 중국이 빌려준 돈으로 진행 중이다. 이자율은 5%인데, IMF(국제통화기금)의 두 배다. 또 중국 돈으로 짓다보니 중국 기업들이 사업을 전담하는 경우가 많다. 유명한 영화 대사처럼 '돈은 돌고 돌' 뿐 주인은 중국이다.
구조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서구 기업들이 진출하지 않은 오지에서 당장 돈과 기술력이 없는 개도국에 인프라를 깔아준다. 중국은 염원하는 글로벌 영향력을 확보하는 '윈윈' 구조다. 중국도 일대일로 사업 확대 의지를 숨기지 않는다. 포럼을 앞두고 펴낸 백서에서 "투자규모를 두 배로 늘리겠다"며 "중국은 개도국의 모든 인프라 계획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사업도 벌이고 지배력도 키우겠다는 중국의 의도는 성공했을까. 일단 후자는 효과를 발휘하는 모양새다. 남아공 한 재단이 지난해 조사한 결과 중국은 아프리카 대륙 내 영향력 1위(77%)국가로 꼽혔다. 미국은 2위(67%)였다. 또 미국 퓨리서치센터 조사에선 중국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10~20%에 불과, 미국이나 일본 등에서 70~80%에 달한 것과 대조됐다.
비전은 크지만 문제도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중국 언론과 진행한 인터뷰는 일대일로의 약점을 보여준다. 시진핑의 가장 강력한 우군인 푸틴은 일대일로 포럼 참석을 위해 중국을 찾아 "일대일로는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는다. 식민주의 국가들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약소국들에게 고리의 채무를 강요하고 있다는 외부의 비판을 의식한 두둔이다.
중국은 일대일로가 본격화한 2013~2021년 개도국에 최소 3310억달러(약 448조원) 이상을 대출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8월 이에 대해 "중국이 부채의 올가미를 놓고 있다"고 공격했다. 실제 잠비아와 스리랑카 등 경제위기에 빠진 국가들의 대부분이 50% 이상 외채를 중국에 빚지고 있으며, 정부 세수의 3분의 1을 중국 빚을 갚는 데 쓰고 있다.
중국 입장에선 일대일로가 중국에 큰 돈벌이가 아니라는것도 고민거리다. 디폴트에 빠진 회원국들은 중국 입장에선 밑 빠진 독이다. 호방하게 "투자를 두 배로 늘리겠다"고 주장하지만 현실은 삭막하다. 부동산에서 촉발된 경기부진 족쇄는 중국 GDP(국내총생산) 성장률 전망까지 끌어내리고 있다. 내수와 수출이 모두 엉망인데 아프리카에 퍼줄 돈이 있느냐는 비난이 국내서 거세다.
그래서 슬그머니 투자를 줄인다. SCMP는 미국 보스턴대 연구를 인용, 지난해 중국의 대 아프리카 대출이 9억9450만달러(약 1.3조원)로 일대일로 개시 이래 가장 적은 금액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2016년엔 285억달러(약 39조원)였다. 남아공에선 일대일로 건설프로젝트 규모가 2021년 건당 5억5800만달러(7453억원)에서 지난해 3억2500만달러(4404억원)로 축소됐다는 통계도 나왔다.
한 중국-아프리카 간 경제협력 싱크탱크 애널리스트 오비그웨 에구에구는 현지 언론에 "일대일로에 대한 우려가 있지만 시진핑 치세에선 어떻게든 계속될 것"이라며 "다만 앞으로는 중국에 직접적인 전략적 가치가 있는 프로젝트에 우선순위를 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베이징(중국)=우경희 특파원 cheerup@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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