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찾아 상경진료 年 71만명...병원 옆엔 ‘환자촌’이 생겼다
부산에 사는 이모(30)씨는 매주 토요일 자궁내막암 진단을 받은 어머니와 KTX를 타고 올라와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찾는다. 병원 인근 ‘환자방’이라 불리는 환자용 고시텔을 알아봤더니 최고 월 150만원에 이를 정도로 비싼 데다 예약마저 꽉 차서 포기했다.
서울 아산병원을 비롯해 ‘빅5′로 불리는 서울 대형 종합병원 등의 인근에는 이른바 ‘환자촌’이 형성됐다. 지방 의료 공백이 낳은 ‘의료 상경’ 현상이다. 더불어민주당 김원이 의원이 분석한 결과 지난해 이른바 ‘빅5′ 병원에서 상경 치료받은 비수도권 환자만 71만여 명, 이들이 쓴 치료비도 2조1800여 억원에 달했다. 또 암 환자의 경우 2018~2022년 5년간 103만여 명이 원정 치료를 받았다는 통계도 있다.
경북 김천에 사는 정모(82)씨는 뇌경색 후 재활을 위해 4년째 서울살이 중이다. 서울·경기에서 옮겨 다닌 병원만 10곳이 넘는다. 아내(82)도 짐을 싸서 올라와 병원 근처 원룸을 전전하고 있다. 정씨 아들은 “아버지가 새벽에 쓰러졌는데 김천·구미·칠곡 등을 다 뒤져도 응급 조치가 가능한 병원이 없었다”고 했다.
강원도 원주시에 사는 김규리(26)씨는 작년 6월 안구 통증 때문에 동네 안과를 찾았다. 처방받은 약을 일주일간 복용했지만 차도는 없었고, 안과에서 “원인을 모르겠으니 서울의 대형 병원을 가보라”고 권유했다고 한다. 작년 7월 삼성서울병원을 찾은 김씨는 세균 감염으로 안구에 염증이 생긴 ‘포도막염’ 진단을 받았고, 이후 2~3개월에 한 번씩 치료를 위해 서울로 오고 있다. 김씨는 “매번 시간을 내기가 여간 번거로운 게 아니다”고 했다. 경북 상주에 사는 신모(58)씨도 지난 10년간 눈에 이물감 등 불편함을 느꼈지만, 지역 안과에서 염증 완화약 처방만 받아 왔다. 그러다 작년 5월 “서울 병원에 가보라”는 추천을 받아 서울 명지병원을 찾았고, 눈 흰자에 문제가 생긴 ‘검열반’ 진단을 받은 뒤 수술했다.
이 같은 상경 치료의 근본 원인은 의사 수 부족 때문이란 설명이다. 작년 기준 우리나라 인구 1000명당 임상 의사 수는 2.1명(한의사 포함 2.5명)으로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평균 3.7명을 밑돈다. 그나마 서울의 경우 1000명당 의사가 3.37명이지만, 경북·경남·전남 등은 1명대이다.
이런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와 국민의힘이 2006년부터 3058명으로 묶여 있던 의대 정원을 2025학년도 대입부터 순차적으로 증원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본지 인터뷰에서 “의사 숫자를 늘려야 한다는 국민적 요구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도 모처럼 정부·여당 방침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친명계’ 중진 정성호 의원은 “역대 정권이 겁먹고 손도 못 댔던 엄청난 일”이라고 했고, 정책위 핵심 관계자는 “증원된 의사가 취약 지역에서 활동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제대로 설계한다면 찬성”이라고 했다.
그러나 대한의사협회는 이날 “의사 확대 부작용을 최소화하기 위한 법 정비와 재정 투입을 생략하는 정치적 발상은 의료를 망가뜨리는 것”이라며 총력 대응을 예고했다. 정부 관계자는 “의협 우려를 반영해 제도를 설계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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