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인민학교 입학 직후 6·25… 4년 만에 南 국민학교서 받은 1학년 성적표
국군, 38선 돌파 때 南에 온 조현상씨
조현상(80)씨는 70여 년 전 초등학교 1학년 과정을 남북한 학교를 오가며 4년 만에 마쳤다. 38선에서 휴전선으로 분단의 경계가 바뀌는 과정에서 접경 지역의 고향 땅이 북한에 속했다가 다시 대한민국의 일부가 됐기 때문이다.
1945년 해방 이후 미군과 소련군이 진주하면서 한반도는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분단됐다. 38선 북쪽 경기 연천군이 고향인 조씨는 1950년 4월 북한 석장인민학교에 입학했다. 두 달 뒤 6·25 전쟁이 발발했다. 낙동강까지 밀렸던 국군과 유엔군이 그해 10월 38선을 탈환할 때 조씨 가족은 남쪽으로 내려와 대한민국 국민이 됐다.
피란 생활을 이어가다 고향 가까운 포천에 거처를 정했다. 조씨는 1953년 4월 포천 외북국민학교1학년에 다시 입학했다. 이듬해 3월 1학년 과정을 마쳤다. 북한에서 처음 학교에 들어간 지 4년 만이었다. 그때 받은 성적통지표는 조씨의 보물이다. “제1학년의 각 과정을 수료하였음을 증함.” 이 한 줄이 그에겐 예사로운 문구가 아니다. 통지표에는 수우미양가 같은 평어(評語) 없이 과목별로 1·2학기의 점수만 적혔다. 여섯 과목 모두 2학기에 점수가 오른 조씨는 우등상과 개근상도 받았다.
북한 학교에서는 미군 비행기가 나타날 때마다 교무실에서 종을 쳤다. “방공호로 달려갔다가 폭격이 끝나면 다시 교실로 돌아가기를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했다. 공부는 뒷전이고 방공호 대피, 야간 소등, 삐라 신고 요령과 북한 노래 배우기가 대부분이었다.”
“외북국민학교에선 폭격이 없어 학교 생활에 어려움이 없었다”는 기억은 유엔군이 항공 전력에서 압도적 우위에 있었음을 보여준다. 숟가락과 빈 도시락만 들고 등교했다. 원조받은 식량으로 만든 ‘우유 죽’, ‘우유 개떡’으로 배를 채웠다. 그래도 학교에서 나눠주는 교과서와 학용품은 북한에서 쓰던 것보다 훨씬 질이 좋았다고 한다.
경기도 북부 일대 휴전선이 38선보다 북쪽에 설정되면서 연천은 대한민국 일부가 됐다. 조씨는 지금 연천에 거주하지만 어려서 살던 고향 동네는 아니다. 그는 “옛 동네는 휴전선에 너무 가깝고 농토로 바뀌어 마을의 흔적이 사라졌다”면서 “다시는 이 땅에 6·25 같은 비극은 없어야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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