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춘추] 사라지는 여성들

경기일보 2023. 10. 17.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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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아 경기여성단체연합 대표

윤석열 정부 들어 벌어지고 있는 현상 가운데 ‘여성’을 ‘여성’으로 부르지 못하고 있는 장면을 자주 목격하는 점이다. 가해자가 드러나는 ‘성폭력 또는 가정폭력’조차 ‘폭력’으로 일반화하거나 심지어 ‘관계성 폭력’이라는 희한한 용어로 대체돼 여성을 삭제하기에 이른다.

지역 언론에서조차 호명돼서는 안되는 금기어가 돼 가고 있는 것일까? 일례로 ‘수원·화성지역에서 이틀 동안 10대 여성 3명을 성폭행하려 한 고등학생 A군(16)에 대해 구속영장을 발부했다’는 내용의 성폭력 사건을 전하는 기사의 제목은 ‘10대 여성 3명 연쇄 폭행, 고교생 구속’이다.

비단 이 기사만 그렇다는 얘기가 아니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여성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양상과 양태 가운데 ‘죽거나, 죽을 만큼’ 극단의 상황이 아니고서는 언론보도에서 사라지거나 그나마 보도된다 하더라도 이처럼 에둘러 표현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양성평등 기조를 유지하고 확산함으로써 성평등사회 실현을 이루고자 한 주요 정책적 접근은 일부분 진전을 보여 왔다. 그 과정에서 ‘여성’, ‘성평등’, ‘젠더’ 등은 오랜시간 정책적 용어였다. 현재에 이르러 그 무엇도 나아졌다는 객관적 지표가 나타나지 않고 있음에도 마치 성불평등 사회구조는 개선해 나가야 할 정책목표가 아니라는 저급한 인식을 그대로 드러냄에 다름 아니다.

그렇다면 ‘여성’은 어디에 있으며 어떻게 소환, 호명되고 있는 걸까?

올해 상반기 경기여성단체연합이 회원단체들과 경기지역 성평등정책 추진체계 현황과 이에 따른 예산 및 그 성격 등에 관해 31개 시·군 가운데 경기도 본청을 포함해 16개 지자체를 모니터링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기존 여성정책사업 전체를 총괄하는 ‘국’ 명칭에 ‘여성’이 포함된 지역은 경기도와 수원시가 유일하며 전담부서명에 ‘여성정책’(과)을 정확히 유지하고 있는 곳은 경기도, 부천시, 수원시 정도다.

안산시의 여성가족과 내에 ‘인구 출산팀’, 의정부시는 ‘여성가족과’와 ‘보육과’를 ‘여성보육과’와 ‘아동돌봄과’로, 고양시는 복지여성국이 사회복지국으로 변경되고 ‘출산지원팀‘이 등장한다. 의왕시는 가족여성과의 업무를 ‘가족여성팀’으로 격하시켰다. 새로운 사업이랍시고 온통 인구-출생-가족-보육으로 여성정책사업을 채우고 있는 지자체들, 더욱이 평택시의 ‘여성 역량강화지원’사업에는 ‘예절교육관 운영 지원’과 ‘예절교육관 이전 신축’사업을 포함하고 있다. ‘여성+예절바른=양육에 힘쓰는 엄마’를 양성하는 것으로밖에 해석되지 않는 이 공식은 70년대 어느 언저리에 와 있다는 착각이 비단 나만이 아닐거라는 점에서 쌀쌀해지는 날씨만큼 심란하다. ‘저출산 극복, 출산 장려 추진사업’을 엉뚱하게 여성의 역량 강화와 연결 짓고 인구정책 운운하고 있는 사이 ’사라진 여성들‘은 오늘을 살아갈 방법을 찾아, 폭력으로부터 안전한 공간을 찾아 스스로 고군분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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