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응준의 포스트잇] [13] 인간과 시간

이응준 시인·소설가 2023. 10. 1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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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조선디자인랩·Midjourney

방황하는 내게 아버지는 말씀하셨다. “겸손해라. 사람이 하는 일이 많지가 않다. 대부분 ‘시간’이 해결한다. 시간의 힘을 믿어야 제대로 된 인간이다.”

옛날 인도에 한 젊은 부부가 있었다. 착한 마음은 착한 세상을 만든다고 느낄 즈음 사내 아기를 낳았다. 어느 날 몽구스 하나가 덫에 걸려 죽어가고 있었다. 부부는 몽구스를 구해 집으로 데려가 치료해 주었다. 부부는 잠시 밭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가 죽어 있는 방에서 몽구스가 이빨 사이로 피를 뚝뚝 떨어뜨리며 부부를 반겼다. 순간, 부부의 세상은 지옥이 되었다. 착한 마음은 분노와 증오로 일그러져 가시덤불로 변해버렸다. 남편이 몽둥이로 몽구스를 때려죽였다. 울부짖는 아내가 아이의 시신을 안았을 때, 아이는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부부는 그제야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 몽둥이에 머리가 부서져 널브러진 몽구스의 왼편 방구석에는 코브라 한 마리가 몽구스의 이빨에 뜯긴 채 죽어 있었다. 부부가 없는 사이, 몽구스는 갑자기 나타난 코브라와 싸워 아기를 지킨 뒤 부부를 반겼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섣부른 판단에 대한 경고로 읽을 수 있다. 한 개인에게도 이런 일은 있을 수 있지만, 특히 한국인이 역사를 대할 적의 어리석음을 비유한다. 가령 6·25 전쟁이라는 비극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은 그저 건국만 되었을 뿐 올바른 방향으로 형성될 수 없었을 것이고, 지난 75년 사이 어느 시점에서 사라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아시아 여러 나라가 영원히 골머리를 앓고 있는 중세적 신분제가 남한에서 ‘실질적으로’ 폐지된 것은 6·25 전쟁의 ‘리셋 효과’ 때문이다. 6·25 전쟁 하나만을 두고서도 이런 예는 끝이 없다. 6·25 전쟁은 비극이었지만, 축복이 되어간 비극이었다.

지금 우리의 모든 문제를 ‘분단’ 탓으로만 몰고 가는 단순함은 무지 이전에 ‘사악’하다. 해방 공간(1945~1948년)과 6·25 전쟁 때 북한으로 올라간 사람은 최대 30만명, 실제로는 10만명으로 추정되며 아무리 적게 잡아도 150만명이 남한으로 내려왔다. 소위 민중주의자들은 민중이 남한을 선택하여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인증했다는 사실 앞에 제 입술과 펜을 참회해야 한다. 지금도 목숨을 걸고 북에서 남으로 탈출하는 사람은 부지기수지만 주사파조차도 제 자식을 북으로 보내지는 않는다.

우리의 손은 은혜 갚은 ‘역사의 몽구스’를 때려죽인 어리석음의 피로 흥건하다. 대한민국의 역사를 부정하도록 교육하고 세뇌시켜 저 몽구스에게 그러듯 대한민국을 파괴해버리려는 세력들을 마주할 적마다, 나는 방황하는 나를 안타깝게 바라보던 돌아가신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른다. 시간의 힘을 믿는 겸손한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세상을 역사로 만들어나간다. 우리는 우리의 어둠과 빛 모두를 저버리지 않을 것이다. 어둠은 어둠일 뿐이지만, 빛과 어둠은 아름다운 무늬이기 때문이다. 이제는 분단의 비극을 축복으로 완성시킬 ‘자유통일’을 준비할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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