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진짜 신인, 가짜 신인

강필희 기자 2023. 10. 17.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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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때 물갈이 명분 내세우곤 시의원 보좌관 등 중고로 대체
부산 망신시킨 지난 국힘 공천, 내년 총선 재연땐 손절이 정답

‘10·11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결과가 국민의힘에 이런저런 나비효과를 낳고 있다. 선거 직후 제기된 당 지도부 책임론에 “원래 험지였다”며 버티다, 뒤늦게 임명직 일괄 사퇴와 2기 지도부 구성이라는 쇄신 모양새를 취한 건 심상찮은 수도권 민심을 알기 때문일 것이다. 함께 불거진 게 중진 차출론이다. 지명도 있는 인물이 서울 경기권에 출마해 내년 총선 승리를 이끌어야 한다는 논리다. 수도권 의석수가 제일 많으니 전략적 가치가 높긴 하겠지만, 전통적 지지 기반인 PK(부산 울산 경남)라고 마냥 안심할 처지인지는 미지수다.

총선이 다가오면 으레 등장하는 게 ‘물갈이론’이다. 기존 의원의 무능함 심판, 참신함 기대, 지역 정치력 강화를 바라는 민심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22대 총선을 5개월 여 앞둔 현재 부산에서 불출마나 지역구 양보를 선언한 사람은 하태경 의원과 황보승희 의원 뿐이다. 두 의원의 정치적 처지와는 상관없이 국힘만으로 한정하면 부산 15석 가운데 2곳은 빈 자리가 된 셈이다.

보통 물갈이 필요성을 언급할 땐 그 대상은 3선 이상 중진에 집중되기 마련이다. 지역에서 국회의원을 10년 이상 지내면서 도대체 한 일이 뭐냐는 불만이 쌓이고 쌓여서다. 일부 부산 중진들을 향한 시선도 다르지 않다. 그러나 지금 부산에선 무능한 중진 못지 않게 초선들에게 비판이 쏟아진다. 물갈이라는 명분에만 치우치면 어떤 결과를 낳는지, 사상 처음으로 시의원 출신 국회의원을 5명이나 배출한 21대 총선이 너무나 잘 보여줬기 때문이다.

부산 초선의원 문제는 단순히 의정활동 과정에서 나올 법한 실수나 미숙함과는 차원이 다르다. 황보 의원은 오거돈 전 시장에 이어 부산 시민이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을 정도로 전국적인 망신살을 뻗치게 만든 인물이다. 삼류소설에나 나올 법한 개인사가 지금도 유튜브에 낱낱이 까발려져 있다. 고위공직자 재산 1위를 달리는 전봉민 의원은 한때 편법 증여 의혹의 한가운데 섰다. 경찰 수사에서 비록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고는 하나 부친의 기자 매수 시도 장면이 TV 전파를 타고 전국으로 퍼졌다. 부동산 관련 논란으로 내상을 입은 의원들도 있다.

사실 이들은 국회의원 선수만 초선일 뿐 정치권에서 이미 닳을 만큼 닳은 ‘선수’들이다. 신인의 패기가 있을 리 없다. 정치적 생존본능만은 탁월해 대통령과 당 지도부에 쓴소리 한번 한 적 없고, 당대표 선거에 나선 반윤석열계 후보를 주저앉히려고 연판장을 돌린 게 그들이다. 4년 내내 존재감이라고는 없다가 선거가 가까워지자 플래카드를 덕지덕지 붙이고 눈도장 찍으려 서울의 구청장 보궐선거에까지 부랴부랴 얼굴을 내민다. 오죽하면 지난 총선의 최대 수혜자가 함량 미달의 ‘가짜 신인’들을 무더기 공천한 공천관리위원장일 것이라는 말이 나오겠는가.

초선이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는 건 부질없는 변명이다. 1988년 5공 청문회 때 신랄한 질문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국회의원은 초선 노무현이었다. 15대 총선 전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계파와 정치 노선을 초월해 발탁한 신인들은 이후 한국 정치의 중추가 됐고, 요즘도 활약하는 이들이 있다. ‘윤핵관’이니 ‘검핵관’이니 하는 하향식보다 밑에서 후보를 추천하는 상향식 공천이 얼핏 민주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상향식 또한 하향식 만큼이나 기득권에 낙찰되기 십상이다. 국힘 전신인 미래통합당은 상향식을 고집한 20대 총선에서 부산 물갈이 비율이 사실상 ‘0’로 수렴했다. 그 결과 민주당에 5석이나 내주는 대패를 안았다. 별도 공천위를 꾸려 무려 60%를 물갈이한 21대 총선도 공석을 정치 주변인들이 차지하면서 사실상 실패한 공천으로 평가받는다. 구의원이나 시의원, 정치 보좌관이 진짜 신인은 아니다.

사실 상향식이니 하향식이니 하는 말이 나온다는 자체가 지역을 가두리양식장쯤으로 여기는 오만한 발상이다. 누구를 공천해도 될 것이라는, 가당찮지만 현실적으로 먹히는 표 계산이 서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경쟁력 있는 좋은 사람을 찾기보다 어떤 식으로 공천할 지가 항상 우선적인 관심사가 된다. 그 결과가 자신을 뽑아준 유권자 얼굴에 먹칠하는 저질 의원의 탄생이다.


PK에서 최소한 19대 총선까지 보수와 진보 계열 정당의 지지율 격차가 20~30%포인트는 됐다. 그러나 최근엔 이 수치가 대폭 줄어들었다. 내일 당장 총선이 열린다고 가정한 어떤 여론조사에선 국힘과 더불어민주당 차이가 10%포인트 안팎이었다. 질문이 국정안정론과 정권심판론으로 바뀌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보수 정당은 아직 정신을 못 차린다. 지역 유권자들의 실망은 쌓여가고 있다. 잘못된 공천은 임박한 총선의 패배이겠지만 그 다음은 대선이고 최종적으론 지역 정치 역량의 후퇴이다.

강필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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