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에세이] 과학기술혁신정책, 어디로 가고 있나
최근 과학기술계의 최대 화두는 정부 연구개발 예산 축소다. 지난 8월 22일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내년 연구개발 예산을 올해에 비해 13.9% 삭감한다는 안을 심의했다. 그 어렵다던 IMF 때도 기업 연구개발 투자는 줄었지만 정부의 연구개발 예산은 증가했다. 세월이 흘러 어떤 역사학자가 이 장면을 두고 “도대체 2023년에 무슨 일이 있었지?”라고 할 것이다.
연구개발 예산이 축소되면 직격탄을 맞는 곳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이다. 정부출연연구기관의 경비는 인건비 경상비 사업비 등으로 구성된다. 그중에서 가장 많은 삭감이 예고된 것은 사업비다. 사업비는 프로젝트를 수행하는 데 드는 경비로 상당 부분이 비정규직 일자리와 관련되어 있다. 정부 연구개발 예산이 축소되면 그동안 계속 이어져 온 정책 기조인 청년 일자리 확대가 무색해지는 셈이다.
현 정부는 연구개발 예산 삭감의 논리로 ‘선택과 집중’을 들었다. 물적·인적 자원이 한정되어 있으므로 불필요한 요소를 제거하고 특정한 부분을 선택하여 거기에 집중하자는 뜻이다. 사실상 선택과 집중은 정책 일반의 기본적 성격이지 특정 정책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기는 어렵다. 연구개발 예산 축소를 통해 어떤 효과를 얻을 것인지, 그리고 어떤 문제점이 발생할 것이며 이에 대처하는 방안은 무엇인지 등이 설명되어야 하는 것이다.
분명한 사실은 연구개발 예산의 전체 규모가 늘어나지 않는 상황에서는 특정 분야에 집중하게 되면 다른 분야의 예산이 더욱 줄어든다는 점이다. 특히 기초연구는 가시적인 성과를 내기 어렵다는 이유로 투자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나게 된다. 선진국이 될수록 기초연구에 대한 투자가 늘어나는 것이 순리인데, 우리는 선진국을 포기한 모양새다. 지난 8월 19일에 기초과학 학회협의체가 “편견과 졸속으로 마련된 정책으로 담대한 미래를 견인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한 까닭도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현 정부가 선택과 집중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2022년 10월에 발표된 12대 국가전략기술이라 할 수 있다. 국가전략기술의 경우에는 연구개발 예산이 줄더라도 그 정도가 작을 것으로 보인다. 국가전략기술의 대표주자는 반도체다. 반도체가 중요하다는 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문제는 현재의 반도체 육성 정책이 다른 정책과 엇박자를 내고 있다는 점이다.
반도체 특성화대학 지원 사업을 보자. 이 사업은 대학별 강점 분야를 중심으로 산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학사급 인재를 공급한다는 취지를 내걸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과학기술 인력 수급 구조를 보면, 학사급은 공급 과잉이고 기능인력과 석박사급이 모자란다. 대학의 관계자들도 반도체 전공은 여러 기초학문을 바탕으로 석박사급에서 조직되어야 할 분야라고 입을 모은다. ‘산업계의 필요’라는 단서를 감안하더라도 4년 후에 배출되는 학사급 인력이 제대로 활동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최근 반도체 산업의 동향을 살펴보면 ‘RE(Renewable Electricity)100’이란 용어를 만나게 된다. RE100은 기업이 사용하는 전력 100%를 재생에너지로 충당하겠다는 캠페인에 해당한다. 2050년이 되면 세계 유수의 기업들은 RE100을 충족시키지 않은 반도체를 수입하지 않을 계획이다. 우리나라의 반도체 산업은 제조업 전체의 에너지 중 10%를 넘게 사용하고 있다. RE100이 한꺼번에 이룰 수 없는 만큼 재생에너지 비중을 지속적으로 높여야 한다. 그것은 현 정부가 추진 중인 원전 확대 중심의 에너지정책과 상충된다.
정권이 교체되면 새 정부는 과거 정부와 차별화하는 작업을 벌인다. 그것은 더욱 좋은 정책으로 더욱 살기 좋은 나라를 만들기 위함이다. 그렇지 않은 차별화는 정책의 혼선이나 부재를 가져온다. 정책 결정권자들은 과학기술을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떤 취지로 연구개발 예산의 삭감을 추진하고 있는가? 상충하는 정책들은 어떻게 조율할 것인가? 이러한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과학기술계의 밑바닥 정서임을 알아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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