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501] 모세의 고뇌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2023. 10. 1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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렘브란트, 십계명을 깨뜨리는 모세, 1659년, 캔버스에 유채, 169 x 137 cm, 베를린 국립미술관 소장.

렘브란트(Rembrandt van Rijn·1606~1669)가 그린 모세다. 모세는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하던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넌 뒤 시나이산에서 하느님으로부터 두 개의 돌판에 새겨진 율법, 즉 십계명을 전해 받았다. 그러나 산에서 내려온 모세는 그가 자리를 비운 사이 믿음을 잃은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하는 광경을 보고 화가 나 돌판을 내리쳐 깨부순다. 바로 렘브란트가 그린 장면이다.

산에서 내려온 모세는 하느님을 직접 대면하고 난 터라 그 얼굴에서 놀랍도록 밝은 빛이 났다고 한다. 이 그림이 ‘빛의 화가’ 렘브란트의 걸작 중 걸작이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처럼 모세의 내면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신성한 빛이 실제로 화면 아래의 깊숙한 곳에서부터 뿜어져 나오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드럽고도 신비로운 빛을 발산하는 모세의 표정에는 분노보다는 좌절과 고뇌, 불안과 연민이 섞여 있다. 그는 이때 이미 자기가 이토록 나약하고 우매한 백성들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분노한 하느님이 이들을 벌하려 할 때에 온 힘을 다해 용서를 구하고 막아낼 것이며, 다시 율법을 받아 지켜내리라는 걸, 그 험난한 길을 가리라는 걸 알았을 것이다.

이 그림은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시청에서 주문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교도였던 네덜란드인들은 에스파냐 왕실이 종교를 탄압하고 독재를 휘두르자 이에 반발해 독립전쟁을 치르고 1581년 마침내 공화국을 세웠다. 이후 세계 제일의 부유한 무역국가로 성장한 네덜란드 공화국이 배출한 화가가 렘브란트였다. 네덜란드인들에게 모세는 자유와 독립, 신에 대한 믿음과 법치를 상징하는 특별한 선지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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